[미디어펜=나광호 기자]석유화학·정유업계가 원유를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갈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국제유가 상승으로 입은 손실을 회복하고 반등을 기대하는 때에 국제유가 급등이라는 악재가 닥쳤기 때문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각) 기준 6월분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배럴당 6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6월물 브렌트유는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74.6달러에 거래됐으며, 두바이유도 74달러 수준까지 상승했다.
국제유가가 지난해 10월29일 이후 6개월만에 최고치로 오른 것은 미국과 이란의 갈등에 따른 것으로, 미국은 최근 이란산 원유 수출 전면 봉쇄를 천명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2일(현지시각)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은 이란 정부의 돈줄인 원유 수출을 완전하게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1월5일 이란산 원유·석유·석유화학제품 거래 등을 금지할 당시 한국을 비롯한 8개국을 대상으로 5월2일까지 예외를 인정했으나, 이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들면서 국제유가의 추가적인 상승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호르무즈해 해협은 이란과 아랍에미리트(UAE)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전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3분의 1이 이곳을 지나간다.
정유업계는 수입루트 다변화로 공급 차질에 대비해왔으나, 호르무즈해협 관련 우려로 국제유가가 급등할 경우 실적 개선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가 상승시 재고이익이 늘어나지만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할 경우 마진이 감소한다.
특히 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SK이노베이션 등 콘덴세이트정제설비(CFU) 의존도가 높은 업체들의 부담이 예상된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올 1분기 1억1964만배럴의 석유제품을 수출하면서 역대 1분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이는 수출국이 전년 동기 대비 15개국(34.1%)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같은 기간 국제휘발유·국제경유 등 주요 수출품 가격 하락에 따른 수출단가 감소로 수출액은 줄어들었다.
업계는 이를 근거로 국제유가 급등시 실적이 수요 감소가 실적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유가 급등 전망이 나오면서 석유화학·정유업계가 긴장하고 있다./사진=한국석유공사
이란산 콘덴세이트(초경질유) 도입으로 원가경쟁력 개선을 노리던 석유화학업계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이란산 콘덴세이트에는 △플라스틱 △자동차 내장재 △의류 △전자제품 등 석유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납사가 70~80% 가량 들어있으며, 타 원유 대비 가격이 낮다는 것이 강점이다.
다른 원유를 사용할 경우 같은 양의 납사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더 비싼 제품을 더 많이 수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용 부담이 늘어나게 되며, 특히 현대오일뱅크 자회사 현대케미칼과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인천석유화학 및 한화종합화학 자회사 한화토탈의 피해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의 주요 수출대상국인 중국 경기 악화가 현실화되는 가운데 국제유가 상승시 수출 타격 및 내수시장 위축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3일 '이란 제재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수출 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한 지원대책을 재점검했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는 "그간 미측과 다각도로 협의해왔으며, 앞으로도 업계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미국과 협의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