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갈 때, 고객들은 공연장과 전시관의 외형이나 주변 여건을 따질 수밖에 없다. 공연장이나 전시관의 주차장이 협소하다거나 대중교통이 연결되지 않는다면 아예 관람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공연장과 전시관의 내부 시설물이나 조명 같은 것도 결코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된다.
전시관에 조명 하나가 어떻게 설치되어 있느냐에 따라 전시 작품의 느낌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내부 시설에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요인이 빠져있다면 고객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줄 수도 있다. 이처럼 물리적 증거들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대외적인 이미지나 평판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리적 증거는 문화예술의 소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극-유기체–반응(S-O-R) 모델은 물리적 증거의 효과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이 모델은 문화예술의 소비 행동을 비롯해 소비자행동 연구에서 널리 적용되어 왔다.
지난 1974년, 알버트 매러비안(Albert Mehrabian)과 제임스 러셀(James A. Russell)은 자극-유기체–반응 모델을 제시하면서, 유기체의 감정 반응과 감정 상태에 주목했다. 감정 상태에서는 주변의 환경에 따라서 사람들이 갖게 되는 의식적인 무의식적인 느낌이 중요하다.
매러비안과 러셀은 환경 자극과 반응 행동 사이의 중간 과정을 유기체의 감정 상태(emotional states)로 개념화했다. 환경 자극(물리적 증거)에 영향을 받은 유기체(감정 반응)는 다시 어떤 대상에 대한 반응 행동(접근 또는 회피)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이 모델의 요체다.
감정 반응에는 즐거움과 환기라는 두 가지가 있다. 즐거움(pleasure)은 어떤 사람이 환경에 대해 얼마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같은 직접적인 반응이다. 환기(arousal)는 어떤 개인이 얼마나 자극을 느꼈는지를 나타내는 반응이다. 감정 반응에 관한 여러 연구에서는 자극-유기체-반응 모델에 따라 감정이 행동을 유발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 역삼역 근처에 있는 LG아트센터는 교통 여건이 편리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물리적 환경 측면에서 주변 여건도 뛰어나다. 규모 면에서도 모두 3개 층에 1,103석의 좌석을 갖췄고, 모든 예술 장르를 공연할 수 있는 첨단 시설과 음향 설비도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주차장, 물품 보관소, 식음료 바, 장애인용 리프트, 리허설 룸, 전용 휴게 공간, 분장실, 메이크업 같은 편의시설도 뛰어나 관객과 공연자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외부 환경이나 내부 환경 같은 모든 측면에서 소비자와 공연자를 동시에 만족시킨 LG아트센터는 물리적 증거로 의미 있는 사례다.
한국서비스품질지수(KS-SQI)는 한국표준협회와 서울대학교 경영연구소가 2000년에 공동으로 개발한 서비스 품질 평가 모델이다. 해마다 각 분야별 서비스 최우수 기업과 기관을 선정해 왔는데, LG아트센터는 한국서비스품질지수 평가의 '공연장 부문'에서 2007부터 오랫동안 최우수상을 받았다. 공연장 부문은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LG아트센터 같은 4개 공연장을 대상으로 조사한다.
조사대상 중 유일하게 사기업에서 운영하는 LG아트센터가 연속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LG아트센터는 예술가와 관객 모두가 만족하는 건강한 공연 문화를 만들기 위해 초대권 없는 공연장을 지향해왔다. 뛰어난 시설과 장비를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의 기획 공연을 해매다 시도한 LG아트센터는 우리나라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연장으로 발돋움했다.
고객의 편의를 고려한 LG아트센터의 설계도. /자료=김병희 교수 제공
한국서비스품질지수의 평가 기준은 본원적 서비스, 예상 외 부가 서비스, 신뢰성, 친절성, 적극 지원성, 접근 용이성, 물리적 환경 같은 모두 7가지 차원이다. 이 지수에서 LG아트센터가 높은 평가를 받은 데는 세계적 수준의 기획공연인 콤파스(CoMPAS)의 개최, 기획공연 시즌제의 도입, 패키지 제도의 도입, 러시아워 콘서트의 기획 같은 프로그램의 기획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물리적 환경과 기타 유형적 요인 같은 물리적 증거도 뛰어나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고객의 편의를 고려한 물리적 환경을 바탕으로 공연장 운영 시스템을 능수능란하게 가동한 것도 호평을 받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소비자들이 구매의사 결정을 할 때는 시각, 후각, 청각, 촉각을 활용한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를 이용하는 고객들 역시 물리적 증거에 따라서 생리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물리적 증거는 문화예술작품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거나 적은 고객에게 어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를 선택하게 하는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장이나 전시 공간의 색상, 조명, 음향, 실내공기, 온도, 배치, 가구 스타일, 향기 같은 물리적 증거는 고객의 감정 반응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직원들의 서비스에 대해 고객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하게 하려면 물리적 증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나아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물리적 증거는 기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성과와 직업 만족도를 높이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물리적 증거가 뛰어나면 고객이나 직원들의 사회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리적 증거나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는 경쟁 기관과의 차별화에도 성공할 수 있다. 나아가 차별화를 통해 문화예술 시장을 세분화할 수도 있다.
물리적 증거는 고객들이 티켓을 구매할 것인지 구매하지 않을 것인지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물리적 증거에 꼭 맞는 격언이라 하겠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