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대런 애쓰모굴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영국의 성공요인 중 핵심이 바로 '명예혁명'이라고 강조했다.
또 '착취적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실패하고, '포용적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성공했다고 밝혔다.
영국은 1688년의 명예혁명을 통해 세계 최초로 의회민주주의가 확립됐다.
개인이 부당하게 정부 등 공권력에 의해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보장되고,자유롭게 자신의 창의성과 경제적 저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됐고, 이것이 생산성 대약진으로 이어졌다.
명예혁명으로 영국의 공동 왕위에 오른 네덜란드의 오린지 공 부부는 전 세계 네덜란드의 무역망을 고스란히 인수했다. 네덜란드의 효율적 시스템도 함께였다.
제도주의 경제학자 더글러스 노스는 이것이 영국이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을 일군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유럽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영국 이주'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명예혁명 이전 청교도혁명으로 집권한 올리버 크롬웰은 자신의 정권 장악을 도운 유대인들의 이주를 허용했다. 귀족과 교회에서 몰수한 땅을 유대인들에게 분배해줬다.
특히 런던의 구도심 일부를 '경제특구'로 지정, 그들의 금융업 자유를 보장해줬다. 여기가 바로 지금 런던의 세계적 금융가인 '런던시티'다.
여기에 네덜란드 윌리엄 공 부부가 영국 왕이 되자, 네덜란드의 유대인들이 대거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 부부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간 민간인의 절반이 넘는 8000며 명이 유대인들이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옮겨 간 유대인들이 다시 영국으로 간 것.
당연히 영국은 '종교적 관용이 법적으로 보장'됐기 때문이다. 관용법을 통과시켜 비국교도에 대한 신앙의 자유를 인정했고, 이후 200년 이상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또 국민국가 수립으로 지역관세가 철폐돼 '전국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됐고, '도량형과 화폐 등이 가장 먼저 통일'됐다. 이것의 중요성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이라는 가장 경제적인 경제주체의 확산이다.
199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포겔은 서양이 동양을 앞서게 된 이유를 '주식회사와 시장경제 시스템의 발명' 덕분이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완성된 시기는 1830~1840년대인데, 회사법이 개정돼 기업이 대거 생겨난 시점과 일치한다.
18세기 중반 영국이 만든 회사법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것이었지만, 기업 설립을 너무 까다롭게 한 것이 문제였다. 1820년대 들어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1825년 개정된 회사법은 '회사 설립을 자유화'했고, 그 결과 기업들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1856년에는 다시 투자자와 기업가 모두 의회법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규제 마저 제거됐다.
경제사학자들이 보는 '영국의 산업혁명 완성 시기와 기업의 대확산 시점이 일치'한다. 산업혁명의 비결은 기술혁신이 아니라 '기업과 시장경제의 힘'이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