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연안에서 조업 중인 어민의 신고로 발견됐다는 정부 당국의 발표와 달리 삼척항에 정박했다고 KBS가 18일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 어선이 삼척항 내에 정박한 뒤 우리 주민과 대화하는 모습./KBS 화면 캡처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어선이 강원도 삼척항에 정박할 때까지 우리 군경의 다중 감시망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과 관련해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초 군은 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북한어선을 발견했다며 이 선박이 기관 고장으로 높은 파도에서 느리게 표류해서 감시망에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실은 이 선박은 자체 동력을 이용해 정확하게 부두에 정박했다.
또 북한어선이 북방한계선 NLL을 넘어서 삼척항에 도착하기까지 이틀 반이나 걸렸지만 해군과 해경 감시망에 전혀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이 선박이 삼척항 인근에 접근할 때 해상에는 경비함이 있었고, P-3C 초계기가 정상적으로 초계활동을 폈으나 탐지에 실패했다.
북한어선은 북한 해상에서는 위장조업까지 했고, NLL을 넘은 뒤에는 밤에 엔진을 끄고 삼척 인근 먼 바다에 숨는 식으로 삼척항까지 어렵게 도착했지만 어선에 타고 있던 북한주민 4명 중 2명이 북한으로 돌아간 것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함경북도에서 출발한 북한어선은 12일 밤 9시쯤 NLL을 넘었고, 해류를 따라 13일 울릉도까지 항해해서 닻까지 내렸다가 다시 14일에 삼척항 동쪽에서 기관을 끄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군 레이더는 14일 밤에 북한어선을 포착했지만, 부표나 파도라고 판단했다. 15일 아침 6시15분쯤 삼척항 감시카메라에 북한 선박이 포착됐고, 해경 CCTV에도 찍혔지만 우리 어선으로 판단했다.
의문은 먼저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 대북 경계태세가 이완될 수 있다는 군사 전문가들과 예비역 장성들의 비판이 많았지만 우리 해군과 해경의 경계태세가 이처럼 느슨해질 수 있느냐이다.
또 군 당국이 뒤늦게 북한어선인 것을 확인하고도 삼척항에 정박해 있는 선박을 표류 중이었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한 점에서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아울러 작은 목선에 의지해 NLL을 넘으면서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한 북한주민 4명 중 2명이 순순히 북으로 돌아간 것도 의문투성이다.
북한주민과 관련된 목격자들의 증언은 속속 나오고 있다. 어선에서 내려온 북한주민이 부둣가 일대와 인근 어판장까지 활보했고, 한 사람은 우리 주민에게 “북에서 왔다”며 “서울에 사는 이모와 통화할 수 있게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증언에 따르면 “북한주민들이 며칠에 걸쳐 선박을 타고 내려온 복장이 아니었다. 복장 자체가 엄청 깨끗했다. 일한 흔적도 없었다”라고 한다.
지난 15일 동해 삼척항 부두에서 홋줄로 정박해놓은 북한 소형 어선 1척을 우리 민간인이 신고한 뒤에도 군‧경의 대응은 늦었다. 해경 순찰차가 도착한 건 6시 54분쯤으로 북한어민 4명이 30분 동안 서성거린 뒤였다. 해경 함정은 7시14분쯤 왔고, 군은 7시50분쯤 도착했지만 북한어민은 이미 해경 함정을 타고 삼척항을 떠난 뒤였다.
정부의 뒤늦은 조사 결과 북한어선에 타고 있던 4명은 모두 민간인이다. 발견 당시 선장과 북한으로 돌아간 한명이 전투복을 입고 있었지만 국정원은 이들이 군사훈련을 받은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선장과 다른 한명이 귀순했는데 선장은 가정불화 때문에, 나머지 한명은 북한에서 한국영화를 보다가 적발이 돼서 처벌될까 두려워서 귀순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정원은 “나머지 2명은 귀순 의사가 없었던 상황에서 선장에 휩쓸려 내려온 거 같다”며 “북방한계선을 내려온 사람들이 북한으로 가겠다고 하면 특별히 입증할 게 없으면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보고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사건 발생 닷새만인 20일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해상판 ‘노크 귀순’으로 불리는 이번 사건으로 동해가 무방비 상태로 뚫린 점을 확인해준 만큼 문재인정부의 대북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키울 가능성도 높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군은 (이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의 경계 작전 실태를 꼼꼼하게 점검해 책임져야 할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문책하겠다. 군은 이러한 상황이 재발되지 않도록 경계태세를 보완하고 기강을 재확립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