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규형 명지대 교수 |
한국은 건국일이 없는, 그래서 건국을 거의 기념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이다. 왜곡된 한국현대사의 인식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점에서 생겨난다. 2008년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광복절 행사가 있었지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보이콧 등으로 파행을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당의 행동은 김대중 정권 시절인 1998년 “건국 50주년”을 기념한 것을 상기하면 일관성이 결여된 것이었다.
해방 이후 3년간의 대단히 힘든 국내외의 난관을 뚫고 대한민국이 수립됐다. 1948년에 역사적인 5.10선거가 U.N.감시 하에 치러졌다. 이 선거는 당시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더라도 매우 선진적인 것이었다. 여성에게도 동등한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당시 스위스같은 서구의 선진국들에서도 못하는 일이었다. 한반도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자유로운, 그리고 국민이 주인이 된 첫 번째 선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5.10 선거로 구성된 의회에서 헌법이 제정되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8월 15일 대한민국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렇게 탄생한 대한민국은 48년 12월 12일 파리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승인을 얻었기에 국제적인 “출생신고”를 완료했다. 비록 UN감시하의 자유선거가 이뤄진 지역의 관할권만을 갖는 정부였지만, 국제승인을 받은 한반도 내의 유일한 합법정부였다. 주권(sovereignty)을 가진 진정한 독립을 이룬 것이다. 국가의 3대 요소인 주권, 영토, 국민을 다 충족시킨 건국이었다. 그래서 이듬해인 1949년 8월 15일은 제1회 독립기념일이었고 그날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1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했다.
그런데 이러한 중대한 한국현대사의 사실들은 잊혀 지거나 폄훼됐다. 놀랍게도 국사학계가 이러한 과정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제 와선 1948년이 건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대신 대한제국, 또는 1919년을 건국으로 봐야한다고도 주장한다. 물론 대한민국 건국은 여러 단계를 거친 과정을 통해 성립됐다고 볼 수 있다. 청일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조선은 청(淸)으로부터 독립된 대한제국으로 변모했다. 독립문은 일본에 대한 독립이 아니라 중국(청)에 대한 독립을 상징하는 건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또한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정신사적으로 지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왕정이 아닌 공화정을 기본체제로 삼았으며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처음 사용했고, 독립된 근대국가를 세우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임시”정부였다. 1919년에 진정한 건국이 됐다면 독립운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진정한 독립과 건국을 이루기 위해 선각자들은 노력했던 것이다. 그래서 임시정부도 진짜 ‘건국’을 이루기 위한 ‘건국강령'을 1941년에 발표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8.15 광복절에 1945년 해방과 1948년 건국(대한민국 수립)을 공히 기념해야한다. 원래 그랬던 것인데 중간에 의미가 변질된 것뿐이다. 우리도 건국일을 가진 정상적인 나라가 돼야한다. 원로 사학자 이인호 교수가 잘 표현했듯이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은 1910년 망국 이래 꿈이었던 자주독립과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공화국 건립의 꿈이 달성된 혁명적 사건”이었다. 궁극적으론 한반도가 (공산전체주의 통일이 아닌) 자유평화통일이 되는 날 이런 대한민국의 의미는 완결성을 띄게 될 것이다./강규형 명지대 교수
(이 글은 2014년 8월 15일 한국경제신문에 게재된 글을 증보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