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
2012년 3월 설립된 '캠퍼스 런던'은 런던 외곽 테크 시티 내 7층 건물을 쓰고 있는데 현지 쇼디치 슬럼가를 유럽 최대 IT클러스터로 바꾼 영국 테크 시티 프로젝트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고 전한다. 전체 등록 회원 수는 61개국 2만2000명으로 지난 한 해 동안 2천개 스타트업이 이 캠퍼스를 활용했다. 구글은 이곳에서 1천회 이상 멘토링 세션을 운영하고 1천1백3회의 스타트업 관련 이벤트(참석자 총 7만여명)를 개최했다. 이 캠퍼스 런던을 통해 창출된 일자리는 5백76개이고 2백74개의 창업기업이 5백83억원 투자를 유치했단다.
2012년 12월 2호로 건립된 '캠퍼스 텔아비브'는 지난해 본격 활동에 들어가 이제 곧 창업 생태계의 허브로 부상할 것이라고 구글은 설명한다.
1호점 런던, 2호 텔아비브에 이은 세계 3번째 구글 캠퍼스 서울은 이처럼 영예롭고도 창대하게 시작했다. 보통은 미미하게 시작하되 그 끝은 창대하게 일구는 창업을 그리겠지만 구글이 손을 대니 스타트업 건물 착공부터가 번쩍번쩍 뻑적지근하다. 일단 화려하고 참신하니까 눈길은 가지만 “마치 UN이 활동하는 듯”이라는 불편한 반응처럼 마냥 환호작약할만한 일은 아니지 싶다.
문제의 구글은 이미 한국 정부와 미디어를 즐겨 대동해왔다. 지난해 가을에는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 세계 속 한국문화의 융성을 위한 협력 확대 방안 발표장에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참석했다. 당시 내용은 이미 2011년에 내놓은 ‘문화 및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한 업무 협약서’를 기반 삼아 ▲국립한글박물관의 한글 체험 및 교육 콘텐츠 제작 지원 ▲구글 문화연구원(Google Cultural Institute)을 통한 한국문화 홍보 강화 ▲콘텐츠 창작자 지원을 통한 창작 환경 조성 등을 부각했었다.
한글로 구글이라 새긴 머크컵 사진도 언론에 나돌았다. 문화융성 시책에서 크게 한 건 올린 득의양양한 분위기라 당시 보도를 보면 문장마다 ‘양기관은’이라 해댄다. 한국 정부가 한 기관이고 구글이 또 한쪽 기관이라 칭하는 태도다. 그로부터 1년도 채 못 돼 이번에는 창조경제 시책에서도 이 멋진 파트너십이 재현된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 국정 기조인 문화융성과 창조경제 둘 다 구글이 책임지고 구글이니까 그럴싸하게 해결되고 있다? 혹시 그냥 구글링 정부?
▲ 구글켐퍼스서울이 강남에 오픈했다. 정부와 기업드리 구글을 미디어유엔처럼 떠받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추종보다는 대등한 전략적 파트너로 아세안과 중앙아시아등에 공동으로 진출해서 한국형 창조경제를 확산 전파시켜야 한다. |
아무리 크다 해도 일개 기업과 일국 정부가 너무 자주 만나 어색한 어깨동무 파트너십으로 비슷하게 계속 뭔가 꾸려나가겠다는 발상은 좀 마뜩찮다. 물론 구글이라면 검색도 그렇고 유투브와 구글 플레이, 안드로이드 운영체계 등으로 글로벌 표준을 장악한 미디어 UN쯤 된다는 현실 인식을 못하는 사람은 없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 운영을 독점하는 사실상 표준을 제정한 인터넷 초기 지배구조를 이어 받은 후계자가 구글이 또 하나의 가상제국을 세우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이 없다.
중요한 건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중국의 알리바바나 바이두, 완다 그룹, 유쿠 토도우, 소후, 텐센트와 같은 미디어 제국 기업들을 대하는 한국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지금처럼 해외 투자유치와 경제협력만을 중심 가치로 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기조만이 절대선이고 더 유리하고 좋은 실사구시라고 봐도 될런가?
우선 구글이 펴고 있는 문화와 IT기술 2개 돛으로 가는 세계경영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추종자적 관계가 아닌 동등하고도 전략적인 파트너십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문화융성으로 한글 콘텐츠를 제작해주고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키워주는 구글의 제공과 원조를 받는 수혜자, 수신자 위상에 한국 사람을 자꾸 밀어 넣는 것은 좋지 않은 패착이다.
구글이 UN과 같이 영국, 이스라엘에 이어 한국을 돌봐주는 현재 그림은 한국의 미래, 한국의 창조라는 가치로 볼 때 첫 단추부터 어긋난 일이기 때문이다. ICT와 디지털콘텐츠 영역에서는 적어도 한국이 세계의 후발 주자들을 지원하는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 정부개발원조)라는 정책기조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구글이 한국을 ODA처럼 해주는 구도는 분명 모순된 그림이다.
그보다는 구글의 제안을 받아 한국이 보유한 문화콘텐츠와 IT 기술로 새 드림팀과 새 전략을 짜서 함께 아세안(ASEAN) 10개 국가나 중앙아시아 지역에 한국형 창조경제를 몰러 나가는 것과 같은 의미 있는 방향 전환이 단행되어야 한다.
때문에 불과 1년여 전 빌 게이츠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주머니에 한 손을 꽂고 대통령과 악수를 한 희대의 해프닝 장면을 다시금 떠올려봐야 한다. 물론 가십거리로 끝났고 마침 그 직후에 청와대를 방문한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코치로 아주 정중하게 악수를 해보임으로써 동방예의지국으로서 문화와 자존심은 지켜냈었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해프닝으로 봉합되었던 그 당시 무례와 모욕은 결국 남에게 기대보자는 마음에서 비롯된 상흔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오래 남는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아니면 중국의 알리바바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한국정부와 만날 때마다 너무나 초라한 한국의 벤처생태계, 콘텐츠 창작자 현실이 오버랩 되는 자격지심이 돌연 발동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관찰자의 마음은 늘 불편해지고 만다.
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서울에 차린 국제백신연구소나 이번 구글 서울 캠퍼스가 매끄러운 회전문이나 U턴 신호가 되지 않게끔 하는 한국의 요구와 주문, 전략이 꼭 필요하다. 한국에서 백신 R&D를 할 뿐 성과는 해외로 곧장 가고, 서울에서 창업 이벤트를 하지만 구글 본사, 구글 유럽에서나 꽃피우는 회전문이고 U턴 구조라면 정말 의미가 없다. 전시용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나중에 알아차리고 따져도 소용없다. 처음부터 회전문과 U턴 구조를 설계하는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을 탓할 순 없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기업이니까. 공기관이나 사회적 기업이 아닌 진짜 상업주의적 기업으로서 본질을 지녔을 뿐이다.
문제는 맞이하는 우리에게 있다. 무 개념 무 전략으로 받아들여 버릇해선 아니 된다. 직시하자. 구글 캠퍼스 서울도 그대로 나누고 일임만 하면 쇼윈도 스쿨이나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를 서로 합체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대로 숭고할 정도로 철저한 시장자유주의로 뭉친 성공한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세계경영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 한국정부와 한국사회도 당연히 원천기술과 세계진출이라는 신성한 가치를 품고 있다. 그러니 이 양자의 가치들이 결합되도록 끌고 가는 구글 서울 캠퍼스라야 환영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이 꽉 막힌 중국시장을 뚫고 싶어 하니 제주시에 구글 캠퍼스를 옮겨 35세 미만 미디어 이용자들 동향을 읽는 안테나숍 개념으로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그래서 우리 벤처들과 함께 한국으로 월경 팽창하는 중국 미디어시장에 대응하고 이용하는 동맹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
한글 콘텐츠 제작지원이라면 구글과 한국 정부, 인문학자, 벤처들이 함께 한글을 채택한 찌아찌아족이 있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연구개발(R&D)센터를 차리는 것과 같은 과감한 실천을 기대한다. 이 R&D 센터는 한글만이 아니라 컴퓨터와 언어라는 인류 미래 주제를 걸고 구글과 한글 종주국이 제대로 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터이다. 이와 같이 구글과 한국은 컴퓨터와 미디어, 콘텐츠로 세계를 함께 누비는 동행 전략을 통해서 단순한 지원이나 수혜를 넘어서는 진정한 파트너십을 보여줘야만 큰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우리 미디어 산업에서도 점점 더 많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기는’ 것에 관한 불편한 이슈들이 불거질 전망이다. 제주도에선 중국 관광객이 늘어 장사가 잘 되어 환호했다가 번 돈을 비싸진 임대료로 다 바쳤다는 무거운 소식이 들려온다. 비싼 임대료를 싹 가져 간 건물주는 투자 자유조치로 막 밀고 들어온 외국인들이고. 이런 악순환 회전문, U턴 구조가 한국의 미디어산업에서도 나타나지 않도록 구글로부터 다짐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도 다행히 미국과 중국이 미디어 대회전을 치르고 있는 그 사이 한국이 있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흔들어볼 멋진 기회가 우리에게 온 것인가? 구글을 떠받들지 않는 슬기로운 중간자 대응이 필요하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