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서울 중구 무교동 세븐일레븐 무교점에서 에서 제로페이 결제 시범을 보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서울시가 지난 5월부터 업무추진비를 제로페이로 결제토록 하며 25개 자치구별로 이용액을 배정했다. 그러나 시가 각 구청에 제로페이 이용을 독려가 아닌 강요수준으로 하고 나서 공무원들의 반발이 상당하다는 반응이다.
25일 서울시 관계자 등에 따르면 시는 지난 5월 28일부터 시내 25개 자치구청들로 하여금 업무추진비를 제로페이로 결제토록 함과 동시에 업무용 제로페이 이용액을 할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기준, 3억4985만원의 할당액 중 총 1억8296만원(달성률 52.3%)을 쓴 은평구가 전체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3억6548만원 중 1억 4347만원(달성률 39.3%)을 소비한 마포구가, 3위는 3억4440만원 중 1억2780만원(달성률 37.1%)을 쓴 영등포구가 차지했다. 관악구와 용산구가 각각 26%와 24.4%를 차지하며 후순위에 올랐다.
하지만 6억4540만원을 배정받은 서초구는 단 한푼도 제로페이로 결제하지 않아 눈길을 끌고 있다. 서초구청 홍보담당관실 관계자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시 본청에서 독려하고 있지만, 25일 현재까지 업무추진비나 직원 복지포인트 모두 이용실적이 0원으로 전무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초구야 말로 제로(0)페이를 이뤄낸 것 아니냐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이와 관련, 서초구청 관계자는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제로페이에 대해 구청 직원들에게 제로페이 이용을 강요하지도, 쓰지말라고 하지도 않는다고 부연했다. 조 구청장은 "시장경제 원리와 배치된다"며 제로페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초구는 서울 시내에서 유일하게 자유한국당 소속 구청장이 있는 곳으로, 제로페이 외에도 인사 교류 등 시 본청과 여러 모로 갈등을 빚고 있다. 실제 시 본청 관계자가 구청 간부 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서초구도 서울시의 일원 아니냐"며 제로페이 이용 실적에 대해 공개 질책했다는 게 관계자 전언이다.
한편 서울시는 제로페이 이용액 평가를 누적 이용액 기준으로 하고 있어 피평가자인 일선 구청과 공무원들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미디어펜이 입수한 서울 시내 모 구청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한 부구청장은 제로페이로 지급된 복지포인트 5만점을 3개월 내 소진토록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한 주무관은 인트라넷 자유게시판에 "서울시 본청이 월별이나 주별 단위가 아닌 5월부터의 누적 이용액을 기준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실적을 공개한다"며 "하위부서나 구청은 앞으로 제로페이로 결제를 해도 집행률이 계속 하위권에 머무르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평가 방식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래 저래 하위권에 머물면 제로페이 쓰는 맛도 없기 때문에 평가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면서도 "부서장들이 제로페이 많이들 쓰고 있으니 일반 주무관들에겐 재촉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지난 4월 3일, 서울시의 '제로페이 강제할당 중단 약속 불이행'에 대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가 서울시청 앞에서 박원순 시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사진=전국공무원노동조합
단순히 주무관 개인의 의견뿐만이 아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는 지난 1월 21일과 3월 29일 두 차례 성명을 내고 "공무원을 강제동원하고 경쟁을 강요하는 서울시 제로페이 사업에 반대한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은 제로페이 강제할당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전공노 서울본부는 "박원순 시장이 제로페이 실적 올리기를 촉진하기 위해 실적 하위 10개구에 6개월 간 특별조정교부금을 동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재해 등 재정수요 발생, 재정수입 감소, 공공시설 신설과 복구, 보수 등 특별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예산을 볼모로 잡는 부당한 지시"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시장이 (제로페이 실적 제고를 위해) 공무원들을 동원하고 자치구를 경쟁시키고 실적이 부진한 자치구에 특별조정교부금으로 압박을 가한다면,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신의 대권을 위해 무리한 사업추진을 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시의 부당한 실적 강요에 굴복하지 않고 2만명 전 조합원이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혀 대립각을 보이기도 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