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50인 이상 300인 이하 규모의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유예한다고 밝힌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캡쳐=YTN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가 내년 1월 1일부터 50인 이상 300인 이하 규모의 중소기업에게도 적용될 예정인 가운데 정부가 실태조사와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며 '특별연장근로'를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주 52시간 근무제 초읽기에 들어간 정부가 계속 뒷걸음질을 치고 있어 도입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태도를 보일 필요 조차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18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국회의 노동법 개정이 불발될 경우를 대비해 주 52시간 근무제 확대 적용 보완 대책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브리핑에서 "300인 이상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선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됐지만 50인 이상 299인 규모의 중소기업의 경우 해당 제도에 대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내년 경기 상황이 불투명한 와중에 정부가 1:1로 돕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 장관은 "중소기업계가 탄력근무제 등의 개선을 기다리고 있고, 노사정위원회에서 어렵게 합의한 만큼 국회에서 조속히 주 52시간 근무제에 관한 입법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탄력근무제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주 52시간 근무제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부는 가능한 조치를 최대한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소기업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없게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겠다"며 "중소기업의 규모에 따라 차등하고,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에 노력하면 우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평시 주 52시간 근무가 가능한데 일시적으로 업무가 증가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엔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할 것"이라며 "시행규칙 개정으로 인가 사유를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장관의 이 같은 브리핑에 업계에선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자신하던 정부가 굉장히 후퇴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장관의 브리핑에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7시 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녹실회의'(관계부처 장관 비공식 회의)를 주재해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기로 논의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인사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황덕순 일자리수석 등으로 경제·산업을 주관하는 문재인 정권 주요 인사들이다. 이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보완책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설정하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앞서 지난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특별연장근로제 확대를 언급했고, 15일엔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고용노동 정책 간담회'에서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50~299인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이 한달 앞으로 다가온 때에 무한정 입법 논의만을 기다릴 수 없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박영선 중기부 장관 역시 "국회의원 시절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찬성표를 던진 것을 후회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는 곧 문재인 정권이 설계주의에 입각해 만든 주 52시간 근무제를 실패작으로 여긴다는 분석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조차 하지 않았을 경우 각종 사회적 논란이나 비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승욱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유예기간 부여는 임시변통에 불과하지만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는 무리"라며 "궁극적으론 사라져야 하겠지만 정책 변경 자체는 좋게 봐야 한다"고 했다.
임종화 청운대학교 교수는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이미 적용해보고 나니 현실을 파악한 것"이라며 "만시지탄이지만 사실상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라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어떤 정부건 간에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정책을 당장 폐기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역시 비슷하게 흘러갈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