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낚시여행- 서해 주꾸미 낚시
주꾸미 철이 돌아왔다. 해마다 8월 말에서 9월초가 되면 수도권, 충남, 전북 등지에서 이때를 기다리는 수많은 꾼들이 있다. 주꾸미낚시는 먹는 재미가 있고, 또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낚시이기에 가을철 생활낚시의 대표격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낚시다. 주꾸미낚시는 11월까지 계속된다. |
▲ 씨알 좋은 주꾸미를 걸어 올린 필자. |
주위 사람들에게 낚시를 한다고 하면 대개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좋은 취미생활을 하시는군요. 낚시 가서 사색도 즐기시나 보죠?” 이런 대답이 나오면 나는 빨리 화제를 돌린다. 이야기해 봐야 재미있을 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낚시 가서 사색을 즐길 틈이 없고, 사색은 주로 책상 앞에서 하기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업무에 관련된 말만 하면 된다.
둘째는 “아, 뭐 잡아오시는 데요?” 이러면 이야기가 좀 된다. 그러면 우럭, 광어, 갈치, 열기, 볼락, 주꾸미 등 수많은 어종이 내 입에서 나온다. 그러다가 결국 한 번 잡아오면 꼭 부르겠다는 말을 남긴다. 같이 먹자고. 상대방도 흔쾌히 동의한다. 자연산 회 맛 보여주겠다는 데 싫어할 사람 없는 것이다.
셋째는 먹는 것 보다 행위 자체를 즐기는 스타일인데, “다음에 낚시 갈 때 꼭 한 번 저도 데려가 주시죠. 한 번 경험하고 싶습니다.” 이런 경우가 가끔 있는 일인데 얼마 전 고등하교 동창들이 150여 명 우글우글 들어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주꾸미 낚시 이야기를 했더니 몇몇 친구들이 같이 가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 국내산 주꾸미. 자세히 보면 금테가 있다. |
나의 동창인 낚시 친구 백성목 군도 고등학교 반창회에서 주꾸미 낚시 이야길 했더니 여러 명이 같이 가자고 한다며 의논을 해 왔다. “그래 좋아요. 그럼 대규모로 출조하자”고 약속하고 9월초에 추석 지나고 난 뒤의 토요일로 날짜를 잡고 오천항의 20인승 독수리호를 미리 예약했다. 본격 시즌이 되면 주말에 서해안 주꾸미 배 예약하기가 백사장에 떨어진 낚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지라 미리 예약을 해 둔 것이었다.
▲ 주꾸미 잡는 채비. 기둥 줄 아래가 애자(주꾸미볼), 위가 에기. |
낚시는 꾼들끼리 같이 다녀야 편하다. 그래야 낚시에만 집중할 수 있고 준비물도 알아서 다 챙겨오기 때문에 다른 것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또 하나 초보들과 함께 낚시를 예약했을 경우, 날씨 때문에 걱정을 한다. 가을철은 대개 날씨가 좋다고 하나 바다 날씨는 알 수가 없다.
바람이라도 심하게 불어 아예 주의보 상황이라면 출조를 포기하면 되지만 날씨가 애매할 때가 문제인 것이다. 낚시꾼이 조황으로 ‘뻥’을 치다가 괜히 낚인 여러 사람 고생시키기에, 제발 날씨가 좋기를 하고 노심초사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인터넷으로 20여 명 분의 채비와 인조미끼도 미리 주문해 준비를 마친다. 마침내 출발 3일 전, 카톡방에서 일정을 공지하고 다시 한 번 낚시 신청자를 확인한다. 다행히 예보도 좋게 나와 안심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처음 낚시 가겠다고 말한 인원 중에서 반이 빠져 나가버린다. 새벽 두시 서울 출발이라고 했더니 상당수 친구들이 의외라는 반응이다. 새벽 두 시에 잠도 안 자고 어떻게 출발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는 10여명 밖에 신청을 안 한다. 10여 명이 뻥크인 것이다. 그들에게 낚시는 삶의 우선 순위에서 한참 뒤쳐져 있는 것이다.
나는 아예 낚시 행사 자체를 취소하려다가 그렇다고 가겠다는 친구 10여 명의 열망도 포기할 수 없어 다른 작전을 개시하기로 했다. “잠 정도는 포기해야지, 내가 지금껏 너희들에게 먹인 회 한 점, 한 점이 모두 잠과의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어찌 쉽게 그 천상의 맛을 보려느냐. 처음부터 신청을 말든가, 아니면 가든가 둘 중의 하나여야지 간다고 했다가 안가는 친구는 도대체 뭐냐. 배 예약 끝내놓고, 채비까지 다 마련해 놓았는데 이제 안 간다고 하면 어떡하느냐, 앞으로 나한테 회 얻어먹을 생각하지 말아라” 등등.
이렇게 카톡방에서 ‘꼬장’아닌 ‘꼬장’을 부렸더니, 마음 약한 대여섯 명의 친구가 합세를 한다. 어떤 친구는 낚시 약속의 펑크는 골프 약속의 펑크보다 더 나쁘다고 거든다. 결국 20여 명의 고등학교 동기동창의 가을 한 철 야유회 낚시가 성립된 것이다.
토요일 새벽 2시 종로에서 출발, 2시 30분 양재를 경유 오천항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걱정이 앞선다. 20여 명이 약속을 하면 분명 지각하는 친구가 있게 마련. 때문에 또 카톡방에서 엄포를 놓는다. “주꾸미 낚시는 이른 아침에 잘 된다. 1분에 한 마리씩 올라온다. 10분 늦으면 20명이 10마리 놓치니 200마리 사라진다. 늦게 오는 친구는 200마리 책임져야 한다.”
토요일 밤, 약속 장소에 30분 일찍 도착한다. 바로 바로 친구들이 집결한다. 10분 전에 모두 모였다. 2차 집결지 양재에 가서도 10분 전에 모두 모여 있다. 엄포가 효과를 본 곳이다. 많은 모임을 가져봤지만 예정 출발 시간보다 더 일찍 출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목적지로 나아가는 배. 독수리호는 침선배라서 속도가 빠르다. |
작년의 경우 충남 원산도와 삽시도 부근에서 시즌 초반에 많은 주꾸미가 올라왔는데 올해는 전북 북쪽 연도와 개야도 인근 해상에서 씨알 좋은 주꾸미가 시즌 초반부터 올라오고 있다. 해가 뜨니 수백 척의 주꾸미 배가 해상에 몰려서 주꾸미 잡이에 여념이 없다.
▲ 연도와 개야도 부근에 몰려있는 주꾸미 배들. 300여 척이 넘는 것 같다. |
▲ 개인 보우팅으로 낚시하는 꾼들. |
낚시란 것이 사소한 채비 하나 없으면 전체 낚시가 불가능해지기에 준비는 항상 철저해야 하건만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실수로 빠진 모양이었다. 경험이 많은 백성목 군이 몇 개의 여유 채비를 나누어 주고 삼각 도래와 일반 도래를 낚시가방에서 꺼내 놓는다. 내 가방에도 삼각 도래가 제법 있고, 6호와 4호 카본 줄이 있다. 나는 재빨리 2단 자작채비를 만들기 시작한다.
사실 이렇게 자작 채비를 사용하면 애기 손실을 더 줄일 수 있기에 나는 기성 채비 보다는 자작채비를 사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미 낚시가 시작되었는데, 채비를 만들고 있으니 마음이 급하다. 급한대로 10여 개를 만들어 모두가 낚시할 수 있게 한다.
▲ 난생 처음 낚시하는 장오재 군. 제법 많은 양의 주꾸미를 잡았다. |
▲ 쌍걸이를 올린 권태현 군. |
초가을의 하늘은 높고, 바다는 잔잔하다. 가끔 갑오징어를 올리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곧 모두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초보자들이란 게 문전처리에 미숙한 한국의 축구선수들처럼 주꾸미가 올라오면 흥분한 나머지 줄을 너무 감아서, 마지막 주꾸미 처리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적당히 감아 주구미를 떼야하건만 너무 바짝 감으니, 애자와 애기가 초릿대 바로 앞에 달리게 된다. 나는 큰 소리로 잔소리를 한다. “너무 감지 말아라, 위험하다.”
나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장오재 군이 애자에 얼굴이 찍힌 것이다. 바짝 감아서 일어난 사고다. 다행히 애자의 바늘은 코 옆에 박혀 큰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 ‘카카오톡’으로 주꾸미 낚시 현장을 실시간 중계하고 있는 석진보 군. |
▲ 주꾸미, 갑오징어 선상 파티, 주꾸미 낚시는 먹는 재미가 반이다. |
소주가 술술 넘어간다. 모두들 그 맛에 탄복한다. 1970년대 후반 지방의 한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인연으로, 40여 년 간 친구로 지내다가 요즘의 SNS 활성화 덕분에, 이렇게 서해바다의 한 배에서 무더기로 찬란한 가을의 한때를 보낼 수 있으니, 그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그렇게 거나하게 취하기 전 주꾸미 라면이 나온다. 모두들 라면을 먹고 이제 잠을 자거나 쉬겠거니 했지만, 파티 시간이 끝나자 대부분 낚시 자리로 돌아간다. 주꾸미 낚시에 재미가 들린 것이다. 나도 다시 낚시를 한다. 오전에 대부분 요령을 숙지했기에 나의 손이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았다. 한 7~80여 마리를 잡았을까. 선장과 약속한 철수 시간이 다가왔다. 선장이 철수 한다고 하자 오히려 아쉬워하는 초보꾼들이 많다. 하지만 미련이 남아도 가야하는 것.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철수 길에 오른다.
▲ 귀항하는 배 위에서 사념에 잠긴 아저씨들. |
선실에서 술을 마시는 친구, 카톡에 열중하는 친구, 바다 풍경과 바닷바람에 탁족하는 친구들. 우리 국민 모두가 그랬겠지만 이 친구들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나, 지방에서 서울 올라와 열심히들 살았다. 이제 좀 여유가 있어 이렇게 함께 낚시도 하는구나, 하면서 나는 잠시 감상에 잠긴다.
▲ 바닷바람에 탁족하다. |
‘주꾸미 낚시는 쉽다’고들 한다. 사실 쉽다. 20여 명의 초보들도 가족이 먹을 만큼은 잡았으니까. 그러나 나는 올해 들어 몇 번 출조하면서 주꾸미 낚시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7~8kg 잡을 때 15kg 잡아내는 고수를 군산에서 만났던 것이며, 주꾸미도 잡으면서 갑오징어를 20여 마리나 따로 건져내는 초절정 고수를 무창포에서 만났던 것이다. 그 고수의 수준에 가려면 나는 아직 멀다. 비록 주꾸미낚시일지라도 낚시의 길은 끝이 없는 것이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