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0년 1월1일을 신년사 낭독없이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로 시작했다. 대신 지난해 12월28일부터 31일까지 진행한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 결정서를 발표했다.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처음으로 육성 신년사를 생략한 것은 2012년 집권 첫해 다시는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이번에 다시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주문해야 하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전문 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온다.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자’는 전원회의 결정서 제목처럼 김 위원장이 자력갱생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핵무력을 보유하는 사실상 핵보유국의 길로 나섰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노동신문은 1일 전원회의 최종 결과를 보도하면서 김 위원장이 “우리의 외부환경이 병진의 길을 걸을 때에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 있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미국의 적대정책이 있는 한 한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며,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통해 대북제재 완화로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 4차회의에서 선언한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사실상 파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2년만에 전략노선을 재수정하고, 인민들에게 ‘굶주림의 길’을 강요해야 하는 부담을 덜고자 육성으로 발표하는 신년사도 생략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아산정책연구원은 “김 위원장이 자력갱생을 넘어 자력부강, 자력번영을 언급하고, 내각을 질타하며 국가관리와 경제사업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사실 보도 내용에서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며 “늘 하던대로 각 공업 부분 생산을 독려했을 뿐이다. 결국 대북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북한 스스로 경제발전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산연은 “김 위원장이 내세운 대책도 사회주의 상업 복원, 전문 건설 역량 확대 강화 및 건설장비 현대화,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제의 현실성 있는 실시 등을 지시했지만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해보인다”면서 “대북제재 완화나 시장경제로의 전환없이는 북한경제의 근본 체질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당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첨단 전략무기를 손에 쥐게 한 국방과학기술의 비약을 앞세우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군사 분야의 성과를 전면에 인민과 군권 장악을 확고히 하면서도 정면돌파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미국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인민들 입장에서 엄혹한 2020년을 보내야하고 또 경제개발 5개년전략 성과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 원인을 미국에게 돌리고 ‘정면돌파전’ 선택의 명분과 정당성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제7기 5차 전원회의 2일차 회의를 지난 29일 진행했다고 30일 밝혔다1.평양 노동신문=뉴스1
이번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서를 보면 김 위원장은 ‘정면돌파전’이 장기전이 될 것이므로 각 방면에서 내부적인 힘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기본 전선을 ‘경제 전선’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경제 문제 해결에 뾰족한 방안을 내세우지 못하는 모순을 낳고 있다.
북한이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적으로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해서 대북제재를 풀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비핵화 협상테이블에 쉽게 나앉는 일이 없을 것을 시사해 근본 해결을 외면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결국 이번에 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육성 신년사를 생략하고 전원회의 결정서 발표로 대체한 것은 당의 총의를 모으는 형식을 취해 정책 전환의 책임과 부담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통일연구원은 “이번 전원회의는 이례적으로 당대회에 버금가는 4일간의 긴 일정, 대내외 문제를 망라한 포괄적인 의제 논의, 당중앙위원회 및 대규모의 방청 동원 등을 통해 당의 총의를 모으는 형식을 취한 점이 특징”이라며 “우선 ‘새로운 길’의 전환적 결정을 당 전체의 총의를 통해 결정하는 모습을 연출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소위 ‘전환’의 명분을 회의 규모와 시간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통일연은 이어 “지난 2년여간 김 위원장이 국제사회에 비핵화를 약속하며 정세 전환을 주도해왔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고, 이에 대한 책임과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가운데 내핍을 강조하는 새로운 길로의 전환을 얘기하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번에 ‘자력 강화’를 내세운 김 위원장은 이례적으로 경제사업 전반적으로 관리의 문제점을 솔직히 밝히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나라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았다”며 국가의 집행력‧통제력 약화, 과도기적이고 임시적인 사업 방식, 내각의 경제사령부로서 역할 미약 등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통일연은 “경제의 ‘장기전 체제’로의 전환과 자력 강화를 위해 큰 틀에서 사업방식을 바로잡겠다는 취지가 강해보인다”며 하지만 “국가관리와 경제사업 전반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비공식경제 부문에 대한 통제‧관리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주민들의 시장에서의 경제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통일연은 다만 김 위원장의 “국가의 이익과 인민의 편리를 다같이 보장해야 한다”는 발언을 볼 때 “기존 경제개혁의 후퇴나 중단으로 보기는 힘들어보이고, 크게 보면 국가와 시장 연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국가가 관리하기 위한 목적도 있어 보인다”며 “주목할 부분은 ‘경제발전 10대 전망 목표’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는 1993년 이후 당국 차원의 목표 수립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 실체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통일연은 “1~2월이 중대 고비가 될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미 재선 레이스 등의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걷혀야 대북 협상에 대한 집중력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며 “2월 말, 3월 초부터는 한미연합훈련 시즌에 돌입하므로 군사적 긴장 메터니즘으로 빠져들 수 있어서 한미훈련 조정은 정세 관리의 핵심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