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증권사 등 비은행에 대해서까지 회사채 담보대출 실시 의지를 드러내며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우발채무 비중이 큰 증권사들은 이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며 한숨을 돌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한은의 선제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존재한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은행을 비롯해 증권, 보험사 등에도 우량 회사채(신용등급 AA- 이상)를 담보로 10조원 규모의 직접 대출을 시행키로 전격 결정했다. 지난 16일 한국은행은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서 국내 16개 은행, 16개 증권사, 6개 보험사에 민간기업이 발행한 ‘AA-’이상 회사채를 담보로 최장 6개월간 대출을 시행한다고 결정했다.
한은은 3개월간 한시적으로 10조원 한도 내에서 운용하되 금융시장이나 한도소진 상황 등에 따라 연장 혹은 증액을 결정한다고 함께 밝혔다. 이번 조치는 최근 불거진 단기자금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증권사 등 각 금융회사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차원에서 동원됐다. 비은행 영리회사에 대해서까지 한은이 회사채 담보대출을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작년 기준 유동성 갭(유동성 자산에서 유동성 부채를 뺀 값‧3개월 만기) 대비 우발채무 부담이 큰 증권사로 메리츠증권, 하나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교보증권, 유진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을 꼽았다. 특히 메리츠증권, 하나금투, 한투 등 3개사는 우발채무가 유동성 갭보다 큰 상태다. 한은의 이번 조치는 이렇게 우발채무가 큰 회사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 이번 조치가 업계 전체에 수혜를 줄 것인지에 대한 전망에서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 모습이다. 일선 금융회사들의 위기에 중앙은행이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중소형 증권사들까지 수혜를 입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한은의 이번 조치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이들은 담보로 제공할 AA급 회사채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미 증권금융(증금)이 증권사에 AA급 이상 회사채를 담보로 대출을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증권사들이 보유한 ‘AA급 이상 회사채’는 이미 증권금융에 담보로 제공된 상태라 지금보다 유동성 상황이 추가적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은이 이전에 없었던 적극적인 조치를 한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증권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증권사 기업어음(CP)이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등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