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배우 이정재가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과거의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늘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도둑들'(2012)의 비열한 뽀빠이, '신세계'(2013)의 고뇌하는 언더커버, '관상'(2013)의 냉혹한 수양대군, '암살'(2015) 속 독립투사들의 배신자 염석진, '신과함께'(2017)의 강렬한 존재감 염라대왕까지 수많은 인생 캐릭터와 명대사를 탄생시킨 이정재. 정작 본인은 "'이 대사를 왜 관객분들이 따라 하시지? 내가 연기를 이상하게 했나?' 싶었다"며 웃는다. 오랜만에 만난 이정재는 데뷔 28년 차에도 여전히 권태를 모르는, 자신을 더욱 담금질하는 자세가 빛나는 사람이었다.
최근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정재(48)는 "언론시사회에서 완성본을 보니 후반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신 것이 느껴졌다. 박정민 씨는 남의 영화를 보듯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어서 저 역시 편안하게 봤다"고 스크린 컴백을 앞둔 소회를 밝혔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남(황정민)과 그를 쫓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이정재)의 처절한 추격과 사투를 그린 작품.
이정재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 역을 맡아 연기 변신에 나섰다. 참신하고 독특한 캐릭터의 외면을 고민한 그는 목과 쇄골을 덮는 타투로 등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제가 연기한 레이라는 캐릭터는 자세한 전사가 없다 보니 외모만 봐도 강력한 믿음이 느껴져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원래는 클럽에서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장면을 첫 등장 신으로 알고 강하게 감정 연기를 했는데 편집이 됐어요. 촬영이 진행되면서 장례식을 첫 신으로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전 영화에서 신이 많지 않다 보니 한 신을 없애겠다는 이야기가 청천벽력처럼 들려서 '절대 안 됩니다', '죽어도 찍어야 됩니다' 했는데, 결국 스태프들에게 설득됐죠."
레이의 패션 스타일 역시 이정재가 직접 고민하고 의상팀에 제안했다. 화이트 로브, 플라워 패턴 실크 셔츠, 스키니 레더 팬츠와 화이트 슈즈 등은 그간의 액션 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비주얼이다.
"물론 '킬러가 저렇게 화려해도 돼?'라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런데 화려한 비주얼을 빼면 차별화가 없고, 그러다 보니 캐릭터가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결국 '기존에 봤던 킬러의 모습을 따라갈 것이냐', '독창적인 캐릭터를 만들 것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고,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 재미적인 측면에서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하게 됐죠. 비주얼의 강렬함을 끌어올리고 테스트하는 데 있어 제 스타일리스트도 합류하게 됐는데, 영화 팀과 스타일리스트가 전방위적으로 아이템을 구하다 보니 훨씬 수월했던 것 같아요. 협업의 결과가 만족스러웠어요."
이정재는 현장 스태프들 사이에서 연습 중독자로 통할 만큼 5개월에 가까운 촬영 기간 철저한 자기 관리와 대본 리딩, 액션 연습에 몰두했다. 그는 황정민과 함께 고강도의 액션 연습을 병행했고, 실제 타격이 오고 가는 리얼한 액션 신들을 모두 직접 소화했다. 특히 하루의 촬영이 끝나면 무술팀과 함께 다음 촬영의 액션 합을 맞추며 연습을 한 후, 홀로 개인 연습을 병행하며 리얼 액션을 선보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시나리오상에서는 육박전은 거의 없었어요. 총기 액션이 주였죠. 총기 액션은 커트를 어느 방향에서 받아 누가 쏘고 누가 맞느냐를 연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라서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총기를 다루는 건 '태풍' 같은 작품에서 훈련을 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태국 촬영을 하러 가자마자 찍은 신이 7~8명을 제압하고 피칠갑이 된 채 나오는 장면이었거든요. 그건 현장에서 만들어진 장면인데, 합이 너무 많더라고요."
예상과 다른 촬영 현장 속 부상도 감내해야 했다. 액션 신 촬영 중 왼쪽 어깨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은 그는 "현지 종합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촬영이 끝나고 수술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남은 액션 신을 찍었다"며 남은 촬영 일정으로 아직까지도 수술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재 촬영 중인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마친 뒤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배우 이정재가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이정재와 황정민이 '신세계' 이후 7년 만에 재회한 작품으로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정재는 "호흡이 잘 맞았던 배우분들과 또다시 작업하는 것은 큰 열망이지만 쉽지가 않다"며 황정민과의 재회를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정민이 형과는 '신세계'에서 워낙 호흡이 좋았고, 너무 즐거운 현장이었거든요. 이번 시나리오를 정민이 형이 캐스팅된 상태에서 읽다 보니 '정민이 형이 하시면 이런 부분은 더 잘 살려주실 테고' 이렇게 상상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가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작품 선택을 하는 데 큰 부분이었죠. 이 정도 이야기에 이런 설정의 캐릭터라면 '신세계'에서 부딪혔던 황정민과 이정재와는 다르게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박정민과도 '사바하' 후 다시 만나게 됐다. 유이 역을 누가 연기할지 가장 궁금했다는 이정재는 박정민의 출연 결정 소식을 접한 뒤 쾌재를 불렀다고. 그는 박정민을 캐스팅하겠다는 홍원찬 감독의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이 아저씨 꿈도 야무지시네'라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홍원찬 감독님과 박정민 씨는 '오피스'로 친분이 있었다고 하지만 너무 무리한 생각 아닌가 싶었죠. 다수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고 계신 분인데. 그러고 나서 제게 이 역할이 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는데, '나 같으면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사바하' 때 같이 작업했던 박정민 씨를 떠올려보니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엄청 많으시고,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애정이 어마무시하세요. 그런 성향의 박정민 씨라면 왠지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이후 제작사에서 희소식을 전해왔을 때 박정민 씨에게 문자를 했어요. 넌 정말 좋은 선택을 해줬고, 왠지 네가 할 것 같았다고."
박정민의 첫 촬영 후 그의 연기를 바로 모니터링했다는 이정재. 그는 "너무 재밌더라. '(박정민이) 영화 초반에 나왔다면 정민이 형과 나는 다 죽는 거다', '정말 대박 아니냐?' 황정민 형과 한참 이런 얘기를 했다. 걷는 것부터 모든 몸동작, 발성의 톤, 대사 뉘앙스까지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이전에도 뛰어난 연기 변신이 있었지만 한 단계를 훌쩍 넘어선 변신을 한 것 같다"며 박정민의 파격 변신에 박수를 보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배우 이정재가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최근 '헌트'(가제) 연출과 출연을 확정하고 감독 데뷔 계획을 밝힌 이정재. 절친 정우성과 '태양은 없다'(1999) 이후 21년 만의 재회가 이뤄질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정재는 "4년 동안 영화를 준비했는데, (정우성의 출연이) 지금도 100% 결정 난 건 아니다. 아직 고민하고 계시다"라고 밝혔다.
'태양은 없다' 이후 다시 한 번 호흡을 굳게 약속했던 이정재와 정우성이다. 이정재는 "'남들이 주는 시나리오로 만나기엔 너무 오래 걸린다'며 기획을 한 시도가 8~9년 전 있었다. 그런데 서로 작품 활동으로 바쁘다 보니 그 기획에 몰입해 결과물을 꺼내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오징어 게임' 촬영에 한창인 이정재는 "정우성 씨 캐스팅에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전 그 기간 동안 '오징어 게임'을 열심히 촬영하려 한다"고 전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공교롭게도 정우성이 출연한 '강철비2: 정상회담'과 상영 시기가 겹쳐 흥행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이정재는 "이쪽 일을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 시사회 후 반응을 보는 게 아직도 두렵다. 그래서 시간이 한참 지나 찾아보는데, '강철비2' 반응은 찾아보게 되더라. 관객분들이 별점을 얼마나 주셨나 보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다"며 정우성과 돈독한 의리를 뽐냈다. 그러면서 "주제와 내용이 깊은 영화는 '강철비2'라는 좋은 영화가 있고, 시원하고 강렬한 액션영화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있다"고 깨알 어필, 웃음을 안겼다.
'신세계'의 잔상에 대한 부담이나 걱정은 없다. 이정재는 이른바 '한국형 갱스터 무비'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며 이번 작품이 국내외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해외 촬영을 나가 영화계 관계자분들을 만나면 한국형 갱스터 무비만의 특별함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굉장히 사실적인 내용을 영화로 하거나, 사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지만 굉장히 사실적으로 찍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한국형 갱스터 무비가 더 리얼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이번 작품도 사실적으로 보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집중했고, 현장에서 감독님, 스태프분들과 '이걸 어떻게 찍어야 진짜 같아 보일까'를 끊임없이 얘기했던 것 같아요. '신세계'와의 차별성은 상상력이 더 가미됐다는 것. '신세계'가 갱스터 영화이긴 하지만 액션 장면이 많진 않아요. 그런 분위기가 있었을 뿐이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첫 신부터 마지막까지 다양한 액션이 촘촘하게 들어가 있어요. 속도감 높은, 시원한 액션영화를 기대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펜=이동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