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외교안보팀장]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6.25전쟁 때 최전선에서 북한군과 싸웠던 백선엽 장군,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 작곡가를 “친일파”라고 비판한 김원웅 광복회장의 15일 광복절 기념사를 들으면서 작년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는 망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류석춘 연세대 교수의 주장이 동시에 떠올랐다.
두 사람의 성향은 진영의 대척점에 있어 보이지만 두 사람의 발언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나라를 잃고 민족이 말살될 뻔했던 35년간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것이고 둘째, 참혹했던 그 시기에 벌어진 일에 대해 한쪽 면만 본 의견이므로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바로 극과 극은 통한다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사실 김원웅 회장의 발언은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다. 오랫동안 보혁 갈등의 소재였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은 복지제도의 범주, 낙태 찬반과 같은 한 개인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국가가 얼마나 지원하고 간섭할지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민족 수난기에 벌어졌던 일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서구의 진영 갈등 주제 중에도 여태 해결되지 못한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진영 갈등 소재들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더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 인재가 필요했고, 그 시절 엘리트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일본에 빌붙어 그나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안익태라는 재능 있는 음악가도 조국이 처한 처지에 따라 영욕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김원웅 회장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나라를 잃은 시기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유신시절 공화당 당직자였고, 신군부인 전두환정권 때 민정당에서 요직을 지냈다고 한다.
김 회장의 광복절 기념사는 어김없이 정치권을 양분시켰다. 특히 여당 당대표 후보들이 잇달아 동조하고 나섰고, 미래통합당은 분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지금 시의적절하게 ‘반일 프레임’을 꺼내 든 것이라는 의혹이 나올 만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열리고 있다./청와대
여기서 잠시 류석춘 교수의 위안부 망언에 대해 얘기하자면, 보수우파 정치권의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약점인 지난 독재정권의 뿌리를 부정하지 못하는 행동과 소신 외에는 설명하기 어려워보인다. 여기에 다른 이유 한 가지를 보태자면 ‘위안부 운동’이 오랫동안 진보 진영에서 수단화한 것과 무관치 않다.
‘위안부 운동’을 진보 진영이 독점해온 것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수 진영이 눈에 쌍심지를 켤 일도 아니었다. 류석춘 교수의 발언을 비롯해 위안부 문제가 국내 진영간, 또 한일 간 오랫동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나라 잃은 국민들에게 역사를 기록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위안부에 대한 기록이 일본에만 있고, 우리가 가진 것은 없으므로 일본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이 계속되면서 논쟁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기억밖에 의존할 수 없는 위안부 차출 경로는 다양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구는 속아서 갔고, 누구는 돈벌이라서 어쩔 수 없이 갔고, 무엇보다 같은 민족이지만 일본의 앞잡이가 된 이들에 의해 자행됐다.
다시 김원웅 회장이 꺼내든 ‘반일 프레임’에 대해 말하자면, 이미 국민의 절반이 그의 발언에 대해 ‘국민 갈라치기’로 생각하는데 정말 한국전쟁 때에도, 70년대 민주화 운동 때에도, 광주 5.18항쟁 때에도 불렀던 애국가를 바꾸고, 이승만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을 파묘하자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김원웅 회장이 문재인정부에서 광복회장이 된 것도 과거 독재정권에서 권력을 누렸던 과를 덮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공을 평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것일 테다. 마찬가지로 이승만‧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의 공과를 모두 우리역사로 수용할 때 국민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특히 지금은 문재인정부 집권 후반기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내용처럼 일본과 마주앉아 묵은 갈등을 털어내고, 흔들림 없는 남북교류협력의 초석을 놓아야 할 때 과도한 프레임 전쟁은 동력 상실로 이어질 뿐이다.
[미디어펜=김소정 외교안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