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한국-카타르의 열전이 끝났을 때 '캡틴' 손흥민의 유니폼은 땀에 흠뻑 젖었고, 얼룩투성이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끈 한국은 17일 밤(이하 한국시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카타르와 A매치 친선경기에서 2-1로 이겼다.
한국은 이날 카타르를 반드시 이겨야 할 여러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아시안컵 8강전에서 카타르에 패했던 아픔을 되갚아야 했다. 한국대표팀의 A매치 통산 500승이 걸린 경기였다. 내년 3월로 연기된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치르는 A매치이기도 했다.
또한 괜찮은 상대들과 경기를 갖기 위해 오스트리아까지 원정을 갔다가 대표선수 6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피해도 입은 벤투호였다. 멕시코전(2-3 패배)에 이어 이날 카타르전까지 져 2연패로 원정을 마쳤다면 너무 억울했을 것이다.
손흥민은 한국의 승리를 이끌기 위해 주장 완장을 차고 그라운드 곳곳을 누볐다.
경기 시작 후 16초만에 한국은 전방 압박에 의해 선제골을 뽑아냈다. 상대 실수로 공을 뺏은 황의조가 황희찬에게 패스를 내줘 힘들이지 않고 골을 터뜨렸다.
이후 경기는 쉽지 않았다. 카타르의 거센 반격에 시달리다 전반 10분 동점골을 내줬다. 주도권은 카타르에게 넘어갔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 전반 35분 나온 한국의 추가골이었다. 그 골을 손흥민이 빛나는 도움으로 만들어냈다. 이재성의 전진패스를 받아 카타르 페널티지역 왼쪽을 허물며 수비를 제치고 문전으로 낮은 크로스를 보냈다. 달려든 황의조가 방향을 바꿔 골을 터뜨렸다.
손흥민은 앞서 15일 새벽 열린 멕시코전에서도 황의조의 선제골에 절묘한 택배 크로스로 도움을 기록한 바 있다. 황의조의 결정력도 좋았지만, 손흥민의 '클래스'가 엿보이는 패스가 두 번 다 골을 만들었다.
결국 한국은 이 때 잡은 2-1 리드를 끝까지 지켜냈는데, 손흥민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한국이 수세에 몰리면 수비에 적극 가담했고, 빌드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전방으로 패스가 잘 넘어오지 않자 하프라인 부근까지 내려와 패스를 받는 장면도 많았다. 이따금 전매특허와 같은 폭풍 드리블로 카타르 선수들을 긴장시켰다. 카타르 선수들은 손흥민이 볼만 잡으면 몸싸움으로, 반칙으로 막기에 급급했다.
손흥민은 이번 멕시코, 카타르와 2연전에서 기대했던 골은 넣지 못했으나 멋진 도움 2개를 기록했다. 손흥민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알 수 있었고, 소속팀 토트넘에서와는 또 다른 대표팀에서의 역할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토트넘의 조제 무리뉴 감독은 이번 A매치 기간 소속 선수들의 각국 대표팀 차출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대표팀에서 혹사(?)를 당하는 것도 못마땅했고, 코로나19 위험에 노출되는 것도 큰 불만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개인 SNS에 "아주 감동적인 대표팀 경기고, 대단한 친선경기다. 아주 안전하다"고 비꼬는 글을 올리기도 했으며, 손흥민을 비롯한 소속 선수들의 대표팀 경기 출전 시간 조절을 당부하기도 했다.
벤투 감독은 무리뉴 감독의 이런 소속 선수 걱정에 냉철한 대응을 했다. "항상 최상의 스쿼드로 경기를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좋은 경기력으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또한 벤투 감독은 "나도 클럽 감독을 해봤다. 대표팀 감독 입장에서 클럽을 향해 "우리 대표선수의 어떤 것을 고려해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표팀에 있을 때만큼은 대표팀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무리뉴 감독의 '투정'에 보내는 대답이나 마찬가지였다.
벤투 감독은 소신대로 손흥민을 이날 카타르전에서 풀타임 기용했다. 손흥민은 멕시코전에서도 풀타임을 뛰었다. 그리고 채 이틀도 쉬지 못하고, 65시간 만에 열린 카타르전에서 또 풀타임을 소화했다. 강행군을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또 하나 분명한 점이 있었다. 토트넘에서도 그렇고, 대표팀에서도 손흥민은 절대적인 선수라는 사실이다. 대체 불가다.
이번 시즌 초반 토트넘이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할 당시 무리뉴 감독은 손흥민의 체력이나 피로도에 대해 그렇게 세심한 배려를 해주지 않았다. 손흥민이 강행군 끝에 허벅지 부상을 당했을 때는 자신의 선수 기용 대신 일정 탓부터 했다.
벤투 감독도 한국대표팀 사령탑 부임 이후 손흥민을 '과하게' 기용해왔다. 국제대회나 월드컵 예선은 물론 친선경기 때도 손흥민을 대표팀에 소집해 거의 매경기 출전시켰다.
무리뉴 감독이나 벤투 감독이나 같은 심정일 것이다. 최고의 선수를 데리고 있으면서, 승리가 필요한 경기에 내보내지 않는 감독이 있겠는가. 손흥민은 한국 축구의 간판이자 월드스타이기에 이래저래 몸이 피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디어펜=석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