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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근 선문대 교수 |
2014년 4월 16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날이 되어버렸다. 진도 앞바다에서 400여명의 아까운 어린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가 침몰한 날이기 때문이다. 부실하기 그지없는 해상안전시스템과 어처구니없는 구조대책으로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었을 사고가 건국 이래 최대 희생자를 낸 참극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미친 여파는 어마어마하다. 수십년간 그 많은 대형 사고를 겪었으면서도 그대로인 재난안전체계, 사업자와 관료간의 부조리한 결탁, 무능력한 정부의 재난대처, 뭐든지 정쟁화시키는 구태의연한 정치권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착근해 있던 문제점들이 여실히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장 극명하게 민낯을 보여준 것은 언론들이었다. 사고 초기 언론사들이 보여준 재난보도는 정말 한심 그 자체였다. 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때 보여주었던 후진적 재난보도 작태를 어쩌면 그대로 재연할 수 있을까 의심할 정도다.
사고 직후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전원구조’라고 오보한 것부터 사건수습이나 피해상황 보다 침몰 원인, 책임 공방 그리고 ‘세모그룹’과 ‘구원파’ 비리보도로 도배하면서 그야말로 선정적 보도경쟁에 열을 올렸다. MBN의 ‘홍가혜 인터뷰’라든지 jtbc의 ‘다이빙 벨 보도’ 그리고 ‘개그맨 이경규 골프보도’ 등은 정말 후진적인 우리 언론사들의 보도행태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물론 이처럼 잘못된 재난보도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부실한 위기관리 능력 때문이다. 여기에 언론사들의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부실한 정부발표에 의존하는 ‘발표 저널리즘’도 또다른 원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사들은 부정확한 추측성 정보와 인터넷/SNS에 떠도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을 바탕으로 선정적이고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여기에 종편채널들이 ‘정치평론가’들의 걸러지지 않은 주관적 추측이나 주장들을 여과없이 쏟아내면서 의혹과 불신을 더욱 부풀렸다. 그 결과 ‘세월호 참사’는 정쟁화되어 버렸고 우리 사회를 극심한 갈등구조에 빠져 버렸다. 즉, 한국 사회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의혹과 갈등 그리고 책임공방이라는 수렁에 매몰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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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로 기다림의 항구로 변해버린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당시 참사를 잊지 않고 있는 노란리본이 실종자의 그림과 함께 걸려 바람에 날리고 있다./뉴시스 |
특히 법에 재난주관방송으로 되어 있는 KBS에 대한 비판은 더욱 커졌다. 그 와중에 터진 김시곤 KBS보도국장의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라는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키고 결국 사직하게 된다.
그렇지만 김시곤 국장이 사직기자회견에서 “언론에 대한 어떠한 가치관과 신념도 없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어 jtbc와의 인터뷰에서 ‘길환영 사장이 평소에도 끊임없이 보도 통제를 했다. ···· 윤창중사건을 톱뉴스로 올리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 ···· 길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다. 권력은 당연히 KBS를 지배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해 KBS 정치적 독립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 때문에 6월 9일 KBS이사회에서 길환영 사장을 중도퇴진 시키게 된다. 그런데 사장 해임직후 9시 저녁종합뉴스 헤드라인기사로 문창극 총리지명자의 새누리 교회 강연내용이 보도되면서 친일논쟁이 벌어지고 결국 중도사퇴하고 만다.
이 보도는 KBS의 정치적 독립성과 보도공정성 논쟁을 다시 점화시키게 되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가 대립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공백 상태에서 벌어진 KBS의 보도게이트키핑 시스템 붕괴와 내부구성원들의 정치적 편향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보도라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이 사건 이후 KBS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를 위한 거버넌스 개편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야당과 진보진영에서는 KBS이사회 구성방식 개선과 사장선출시 특별다수제 도입 같은 거버넌스 개편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였다. 반면 보수진영에서는 KBS노조의 정치편향성과 경영방만성 등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였다. 그렇지만 문창극 총리후보 관련 보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9월 4일 행정지도인 ‘권고’라는 경미한 징계를 받으면서 다시한번 논란이 된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에서 부실한 언론재난보도와 KBS 난맥상은 잠재해 있던 KBS 쟁점을 다시 표면화시켰다. 더구나 2013년 11월 KBS이사회에서 의결한 KBS수신료 인상안이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 상임위에 상정되어 있는 상태다. 또 야당은 KBS 거버넌스구조 개편과 관련된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때문에 향후 수신료 인상안과 KBS 거버넌스 쟁점을 놓고 여·야가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공영방송 KBS의 규율체계와 수신료, 정치적 독립 그리고 경영합리화 등의 문제는 결코 새로운 쟁점이 아니다. 멀리는 1981년 언론통폐합 가깝게는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매우 오래 묵은 쟁점이다.
내용도 거의 변화된 것이 없다. 수신료만 하더라도 1981년 제정된 월 2500원 그대로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한 발자욱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여·야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으면 수신료를 올리고자 하고 야당이 되면 반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공영방송으로서 KBS위상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탈정치화가 선행 조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문화의 문제로서 결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영원한 숙제가 될 수도 있다. 건국 이래 거의 성장을 멈춘 양철북 같은 우리 정치권을 보면 더욱 그렇다. /황근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