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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626년 서울시장의 역사와 박영선 나경원 조은희

2021-01-26 16:08 |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한성부 판윤(漢城府 判尹). 조선이 건국한 후 도읍을 한양으로 천도한 뒤 생겨난 관직으로, 정2품이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정2품이면 조선 18개 품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흔히 알고 있는 육조의 판서와 대제학, 좌우참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금의 서울시장격 관직인 한성부 판윤은, 그러나 현재 서울시장보다는 좀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행정 권한뿐 아니라 사법 권한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서울시장이 서울고등법원장과 서울고등검사장을 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왕정 국가라는 측면에서 보면 극대화된 중앙집권 사회인 데다, 의정부나 육조가 정무를 장악한 조선 사회에서 한성부 판윤은 지금의 서울시장에 비해 존재감이 적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 초기부터 한성부 판윤을 지낸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있다. 태조 때 초대 한성부 판윤은 개국공신이기도 한 성석린이 지냈으며, 후일 제2차 왕자의 난 이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당대 최고의 권력가였던 이거이가 네 번째 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태종조 권력가였던 조박을 비롯해 김한로와 변계량, 그리고 세종의 장인인 심온 등도 한성부 판윤을 지냈고, 태종 후기 조선 최고의 재상으로 꼽히는 황희도 세종에게 발탁되기 전 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황희와 어깨를 견주는 맹사성 또한 세종조에서 영의정이 되기 전 한성부 판윤을 먼저 역임했다. 이외에도 서거정은 예종과 성종에 걸쳐 2번 한성부 판윤을 지냈고, 중종조 정광필, 선조조 이덕형과 권율, 광해군조 김상용과 강홍립, 인조조 윤휘와 김자점과 최명길, 숙종조 조사석과 이익을 비롯해, 대한제국 때는 민영익, 윤치호 등 역사책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이들 대부분은 훗날 삼정승에 등용되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된 후 한성부 판윤은 경기도 경성부윤으로 다소 권한이 떨어져 보이는 직으로 내려앉았다. 그러다가 1946년 서울특별자유시장이라는 직함으로 바뀌어 김형민 씨가 시장이 됐는데, 우리 역사에서 첫 서울시장으로 기록된다. 두 번째 서울시장은 윤보선 전 대통령이고, 세 번째는 이승만 정부의 영원한 2인자 이기붕이다. 이기붕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1949년 서울특별시가 된 이후에도 시장을 역임했다. 

1960년 4.19 혁명까지는 관선 서울시장이었는데, 그 사이 허정 전 내각 수반과 장기영 박사 등이 서울시장을 지냈고, 1960년 12월 김상돈 씨가 사상 최초의 민선 서울시장이 됐지만, 채 6개월이 안 된 5월 19일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서울시장에서 내려와야 했고, 이후 1995년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선거로 서울시장이 뽑힐 때까지 대통령이 임명하는 관선 서울시장의 시대였다.

관선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장의 권한은 조선시대 한성부 판윤보다 적었고, 임기도 보장돼 있지 않았다. 고건 씨 등 이후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른 이도 있긴 했지만 사실상 존재감은 미미했고, 그저 고위 공직자 중 하나일 뿐인 위상이었다. 그러나 민선 서울시장 시대부터는 그 위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1995년 7월 민선 1기 서울시장이 된 조순 씨부터는 서울시장의 위상은 ‘차기 대권 주자’가 된다. 이때부터 ‘소통령’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지금까지 민선 서울시장은 조순 고건 이명박 오세훈, 그리고 박원순까지 모두 5명이다. 이중 이명박은 서울시장을 지낸 후 대통령이 됐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매 대통령 선거 때마다 가장 강력한 대권 주자군에 속했다. 

그런데 한성부 판윤이던 조선시대야 말할 것도 없지만, 관선 시장 시절이든 민선 시장 시절이든 이제까지 서울시장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1995년 시작한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여성은 2006년 제4회 때 강금실과 2010년 제5회 때 한명숙 두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서울뿐 아니라 역대 전국 주요 광역자치단체장을 봐도 여성에게는 유독 문이 닫혀 있다. 아직까지 단 한 명의 여성 광역단체장이 나온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미국보다 앞서 여성 대통령까지 배출한 나라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첫 여성 서울시장이 배출될 수 있을까?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세 번째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이전 2번은 모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고배를 마셨다. 어느 때보다도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드는 국민의힘에서는 나경원 전 의원과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도전장을 냈다. 특히 고 박 전 시장의 성범죄 의혹이 발단이 된 보궐선거라 그 어느 때보다 여성 후보들의 존재감은 강하다.

사상 첫 여성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왼쪽부터)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나경원 전 의원, 조은희 전 서초구청장./사진 = 중기부 국민의힘 서초구청 제공


박영선 전 장관의 경우 우상호라는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한다. 대중적인 인지도는 우상호 의워을 앞서는 박 전 장관이지만, 당내 입지가 약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되려면 그 벽을 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은 과거 강금실 전 장관과 한명숙 전 총리에 이어 민주당의 세 번째 서울시장 후보가 되는 것이다.

나경원 전 의원과 조은희 구청장은 오세훈이라는 큰 산도 하나 넘어야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있다. 물론 보수 야권입자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라는 또 다른, 현재로서는 가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를 극복해야만 서울시장실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박영선 나경원 조은희 세 명의 여성 예비 후보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물론 박 전 장관은 그래도 이전 2번보다는 박워순이라는 절대 강자가 없는 상황이라 마음의 부담이 덜 할 수는 있다. 나 전 의원과 조 구청장도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젠더 갈등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게다가 여성 후보에 대한 가산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왜 여성 광역단체장, 왜 서울특별시의 여성 시장이 필요한가?’라는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하면서 경선에, 또 본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굳이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또 그저 ‘여성’인 것이 유리한 점이 돼서도 안 될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특히 코로나19로 피폐해진 서울을 어떤 비전을 가지고 회복시킬 수 있는 사람인가가 보다 중요할 것이다. 

게다가 이번 보궐선거로 뽑힌 서울시장의 임기는 불과 14개월이다. 이번에 서울시장이 됐다고 해서 내년 지방선거도 넘어설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야말로 권한대행보다도 못한 시장이 되는 셈이다. 여성 시장이 나온다면 바로 그 점도 헤치고 나가야 한다. 시민들의 마음에 착 달라붙는 여성 시장이 되지 않으면 구태의연한 사람들이 쉽게 규정짓는 대로 “역시 여자는 안돼”라는 되먹지 못한 소리가 나오면 안 된다. 

서울시장이라는 관직은 말하자면 1395년 성석린이 첫 한성부 판윤이 된 이후 626년을 이어온 관직이다. 박영선, 나경원, 조은희 세 사람은 그 역사 속에 엄청난 변곡점 하나 찍는다는 역사의식으로 이번 선거에 참여했으면 한다.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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