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백지현 기자]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역대급 실적을 냈지만, 배당성향은 전년도보다 6~7%포인트 줄일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해 금융권에 배당축소를 권고하면서다. 금융지주들은 당국의 배당축소 권고안 수용에 성난 주주들을 납득시켜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신한금융지주‧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 각각 3조 4552억원, 3조4146억원, 2조637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다. 이는 전년과 비교해 각각 4.3%, 0.3%, 10.3% 성장한 규모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호실적을 견인할 수 있었던 것은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열풍에 힘입어 대출이자 이익과 수수료 이익이 크게 늘면서다
반면 당국의 권고안을 수용하면서 배당성향은 전년 대비 6~7%포인트로 축소될 전망이다.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는 실적발표 직후 컨퍼런스콜에서 2020년도 배당성향을 20%로 축소한 데 대해 거듭 고개를 숙이며, "경제 불확실성에 대비해 충격 흡수능력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는 당국의 권고에 공감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3월 초로 결정을 미뤘으나, 금융당국의 주문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노용훈 신한금융지주 부사장(CFO)은 "당국의 권고를 받아들일지는 다른요인을 고려할지는 3월 초까지 이사회를 열어 결정할 것"이라면서도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금융기관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거쳐 나왔기 때문에 이의제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당국의 권고안을 수용하는 금융지주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금융지주들은 배당축소가 저평가된 주가를 더 끌어내려 외국인 투자자들이 떠나는 빌미를 제공할 것으로 우려한다. 실제 KB·신한·하나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60%를 넘어선다. 그렇다고 당국과 맞서는 모양새를 취하기에는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지주사의 IR담당 부서에는 배당성향 축소와 관련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금융지주들은 배당 축소나 이익공유제 참여 등과 관련한 투자자들의 소송 제기 가능성 등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한시적이라고는 하나 배당축소는 주주가치 훼손과 함께 배당정책에 대한 신뢰도 하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주들에게 이를 납득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심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이날 배당축소 권고와 관련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한지적인 조치로 영국이나 EU(유럽연합)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당 제한을 권고하는 것을 두고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반발이 거세지자 이에 대한 반박 입장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는 "EU는 순이익의 15% 이내에서 배당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며 "주요 EU 은행의 평상 시 배당성향이 40%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보다 엄격한 조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