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다빈 기자]"언젠가는 개발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협동조합이 없어지면 개인 신용이 좋지 않은 기초 수급자는 대출도 못 받고 적금도 못 넣는다. 정부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은 게 없다."(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에 거주 중인 있는 70대 A 씨)
지난 6일 찾은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인근 시민공원은 추운 날씨에도 이웃들을 만나러 온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서울역 쪽방촌’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 쪽방촌으로 1960년대 급속한 도시화·산업화 과정에서 밀려난 도시 빈곤층이 서울역 인근에 대거 몰리면서 형성됐다. 이후 수차례 도시정비사업 등을 통해 규모는 축소됐지만 아직도 1000여명이 주민들의 터전으로 남아있다.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쪽방촌' 전경./사진=미디어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용산구에 따르면 이 일대에 공공주택 1450가구, 민간분양주택 960가구 등 총 2410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내용의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 재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되며 대규모 정비사업이 추진된다. 기존 주민의 재정착을 위한 공공주택 중 임대주택은 1250가구, 분양주택은 200가구로 조성된다.
이 사업의 공동사업시행자로는 LH,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참여하며 국토부, 서울시, 용산구는 사업추진을 위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담당한다.
용산구 동자동에 위치한 A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워낙 열악한 지역이라 재개발이 시급하지만 대부분 임대 물량으로 공급된다는 점에서 토지주들은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라며 "정부와 토지주들의 토지 보상 협의 단계에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쪽방촌 재생사업을 통해 2평 미만의 방에서 월세를 내며 생활 중인 이곳 주민들이 개발이 완료되면 저렴한 임대료로 5평 상당의 쾌적한 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이 우려하는 바는 다른 곳에 있었다. 서울시 쪽방촌의 경우 역사가 오래 된데다 주민 수도 많아 이곳 주민들이 자치로 운영하는 협동조합이 활성화 됐다.
서울역 쪽방촌에는 2010년 설립된 '사랑방공제조합'이라는 이름의 지역 협동조합이 주민들의 생활비·의료비 대출 및 예금 수탁, 복지관, 상담소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서울역 쪽방촌 주민 중 약 500여명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됐다.
동자동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힌 60대 B 씨는 "대출은 커녕 개인 신용 상황도 좋지 않아 은행에 돈을 넣지 못하는 이웃들이 대다수라 여기서는 조합이 은행 역할을 한다"며 "전부 고령층인데다 혼자 거주하는 노인들도 많아 조합에서는 이들이 사망 했을 때 간단히 장례를 치러주는 역할도 해 주민들의 협동조합 의존도가 상당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쪽방촌' 전경./사진=미디어펜
그는 이어 "젊은 사람들처럼 (조합이) 온라인으로 운영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오프라인 공동체로 운영되고 있어 이주가 시작되면 조합이 자연스럽게 와해될 것이라는 걱정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며 "조합에서 수탁 받은 돈을 현금으로 갖고 있는다 해도 음주, 도박 등 중독을 앓고 있는 주민들이 많아 위험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 측은 이주 및 본격적인 개발 사업까지 절차가 남아 있으므로 시간을 가지고 주민들과 협동조합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역 쪽방촌 재생사업은 올해 주민 의견 수렴 등 절차를 거쳐 지구지정을 마치고, 2022년 지구계획 및 보상, 2023년 임시이주 및 공공주택 단지 착공을 거쳐 2026년 입주를 계획하고 있다.
서울시 쪽방촌 협동조합 사랑방공제조합 임원 관계자는 "개발이 본격 진행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당장 조합이 와해될 위험은 없다“며 ”이주가 시작되더라도 조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공임대단지에는 쪽방 주민들의 자활·상담 등을 지원하는 복지 시설을 설치해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재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서울시 자활지원팀 관계자는 "사적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에 대해서 아직 구체적인 지원 계획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협의를 거치면서 주민들과 조합의 의견을 적극 수렴할 것"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