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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원장 고전특강(46)-신의 마지막 은총, 오이디푸스의 죽음

2015-01-10 13:4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46)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와 신의 섭리
소포클레스(BC 496 ~ BC 406)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정처 없이 방랑하던 오이디푸스가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는 종말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소포클레스의 다른 작품 <오이디푸스 왕>의 후속 이야기이자, <안티고네>의 바로 앞에 전개되었던 내용이다. <안티고네>에서는 오이디푸스의 저주가 실현되어 두 아들이 서로 죽이게 되고,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의 갈등과 비극적 죽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소재는 여러 작가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끈 신화와 전설의 이야기이다.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 역시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기초로 비극을 썼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세네카도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썼을 만큼 로마인들에게도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이야기는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이디푸스’ 만큼 자주 쓰이고 공연된 희곡도 드물 것 같다. 인간의 의지와 가혹한 운명의 대결이 갖는 강렬하고 비극적인 요소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흡인력을 갖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의 탄생 비밀과 그가 아무것도 모른 채 친부(親父)를 살해하고 모친과 결혼하게 되는 비극적 전말과 자신의 패륜을 알고 파멸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그가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자책하며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테베에서 두 아들에게 쫓겨나 세상을 떠돌다 아테네의 근교 콜로노스에 와서 운명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눈먼 오이디푸스는 두 눈과 지팡이가 되어 준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에 의지하여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 하면서, 아테네의 복수의 여신들, 일명 ‘자비로운 여신들’의 성역에 이른다. 자신이 왕으로 다스리던 테베에서 쫓겨나 세상을 떠돌다, 망명객에게 너그러운 아테네에 의탁하고자 찾아온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아테네의 콜로노스에 들어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한다.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삶에 연민을 보내고 그와 두 딸을 테베의 섭정 크레온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이 작품에서 소포클레스는 전편에서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게 하고, 신의 인도에 따라 고통스런 삶을 마감하고 경이로운 과정을 통해 저승세계로 내려가게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오이디푸스와 신의 대결과 저주가 화해와 용서로 마무리되는 정경을 통해 더 큰 신의 섭리를 느끼게 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저지른 부친 살해와 모친과의 결혼이라는 씻지 못할 죄가 자신 스스로 “행한 것이라기보다 당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아버지인줄 모르고 길 다툼과정에서 정당방위로 살해하게 된 것이며, 테베의 왕위를 받고 왕비인 어머니와의 결혼하게 된 것 역시 자신이 스핑크스를 물리치고 테베를 구한 대가로 테베 인에게서 받은 선물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를 떠나 방랑하던 중 테베에 이르러 길손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풀지 못하면 잡아먹었던 괴물 스핑크스를 만난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가 ‘아침에 네 발로 걷고, 점심엔 두발로 저녁에 세발로 걷는 게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를 내자, ‘그것은 사람이다’라고 맞춘다. 이에 스핑크스는 분을 참지 못하고 바위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두통거리를 해결한 영웅으로 테베의 시민들에게 환대받고 자신이 우연히 왕이던 아버지를 누군지도 모른 채 죽여 비게 된 바로 왕좌에 왕으로 추대된다. 스핑크스의 난제를 해결한 그의 지혜가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낙소스 인들이 아폴론 신에게 봉헌한 스핑크스 대리석상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에는 이런 스핑크스 석상이 유달리 많다. 원래 스핑크스 상은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오이디푸스의 주장의 요지는 자신의 죄가 스스로 인식하고 고의로 행한 것이 아니라 죄를 지울 수밖에 없었던 운명 지워진 상황에 자신이 끌려들어갔던 것이란 얘기다. 죄인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범죄는 죄가 아니란 인식이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호소한 것이다.

분명히 오이디푸스가 부친과 모친을 인지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점은 틀림없다. 하지만 자신이 비극적 상황에 말려들어간 것을 오로지 운명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신탁, 즉 부친 살해와 모친과의 결혼이라는 멍에를 피하려했다면 자신의 불같은 성정을 다스리고, 자신이 부딪히는 순간순간의 선택적 삶의 여정에서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의 매 순간의 상황을 업보처럼 주어진 신탁에 비추어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해 봐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가 아무리 운명을 피해 가려고 했어도 발버둥 쳤어도 운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가 헤어날 수 없는 운명의 힘에 휘둘렸었다는 점을 더 강조하고 있다.

   
▲ 테베에서 아테네 근교의 ‘자비로운 여신들’의 성역으로 피신한 오이디푸스, 작은 딸 이스메네가 아들 폴뤼네이케스를 이끌며 아버지에게 폴뤼네이케스가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원하자, 오이디푸스가 아비를 내쫓은 불효한 아들들에게 저주를 내리며 꾸짖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아버지의 왼팔을 붙잡고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큰 딸 안티고네의 모습과 두려움에 움츠러든 폴뤼네이케스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Jean-Antoine-Theodore Giroust(1753–1817) 1788년 작, 댈러스 미술관 소장, 사진 alexmarie28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는 가혹한 운명에 처한 오이디푸스에게 마지막 세 가지 시련과 시험이 주어짐으로써, 오이디푸스의 운명에 대한 신의 최종적 은총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첫 번째는 오이디푸스의 망명을 거부하는 콜로노스 주민들의 차가운 시선이다. 이는 부친 살해자를 저주하는 그리스인들의 일반적 도덕관념을 대변하는 듯하다.

오이디푸스는 부친의 살해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길 다툼을 하다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정당방위였음을 강조한다. 또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 것도 자신의 의지로 행한 것이 아니라, 테베의 시민들을 못살게 군 스핑크스를 자신이 죽인 대가로 시민들이 선물로 준 ‘사악한 결혼’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죄는 끔찍한 운명이 만든 일로 앞날을 모두 알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기인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이디푸스와 두 딸을 잡아가려는 테베의 섭정 크레온의 무지한 폭력이다. 크레온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추악한 죄를 범한 오이디푸스 일족을 잡아가 응징하려 했다. 아마 왕권을 인수한 자신에 대한 민심의 지지를 얻어내 권력을 공고히 하려던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는 탄원자로 온 오이디푸스를 받아들이고, 아테네 땅에서 폭력을 행사하려는 크레온을 꾸짖는다.

테세우스가 보여주는 포용적 태도는 단순히 탄원자에 대한 수용을 넘어서 모진 운명의 굴레에서 고통 받는 한 인간에 대한 동감에 기초한 진정한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소포클레스 자신이 아테네의 콜로노스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콜로노스의 성역을 인간에 대한 연민과 관용이 넘치는 신성한 구역으로 전화(轉化)시키고 있고, 테세우스는 인간미가 넘치는 정의로운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

세 번째는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된 오이디푸스의 고통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왕권에 눈이 멀어 자신이 왕위에 오르도록 승인해 달라고 탄원하는 오이디푸스의 아들 폴뤼네이케스의 뒤틀린 욕망과 몰염치한 행태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이 테베의 왕이 될 수 있다는 신탁에 따라 그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아들 폴뤼네이케스를 저주한다. 나아가 왕위 다툼으로 서로 전쟁을 벌이려는 두 형제의 불효와 권력욕을 질타하면서 두 형제가 함께 죽으리라는 저주와 예언을 남긴다. 아버지의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런 후안무치한 불효자에 대해 오이디푸스가 죽음의 저주를 내리는 것은 인간의 노여움을 넘어 신의 준엄한 심판처럼 느껴진다.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던 오이디푸스와 이런 세 인물들이 벌이는 논쟁과 갈등은 오로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질주하는 인간들의 추악한 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 같다. 오이디푸스는 이들과의 대결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잃어버린 인간적 도리를 일깨움으로써 자신의 죄를 정화하는 길로 한발 한발 다가간 듯싶다.

적어도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가 피치 못할 운명의 굴레에서 죄악을 저질렀지만, 그의 삶의 태도에서 신의 자비와 은총을 받을 충분한 가치를 보여주었다는 점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시험과 고비를 넘어 오이디푸스는 죽음의 신의 신비로운 인도와 함께 자신의 육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경이롭게 사라져간다.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운명적 한계 속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오이디푸스에게 신들은 마지막 배려로 평안한 은총의 죽음을 내린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가 ‘행한 비극’이 보이지 않는 운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고, 이를 신들조차 긍휼히 여긴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가 오이디푸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은 이 공연을 보는 청중들에게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운명과 신에 순응하되, 한편으로 인간 스스로의 삶을 위해 좌절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정진하라는 또 다른 메시지이기도 한 것 같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Oidipous epi Kolonoi)>, 『소포클레스 비극전집』,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2, 3쇄). 5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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