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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
세바스티앙 살가두 사진전 ‘GENESIS’와 창조의 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흐 톨스토이가 러시아 우화를 빌어 묻고 답하였다. 사랑으로.
예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희곡론’으로. 서양 미학을 세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카타르시스.
이제 우리 동시대 어느 사진 미디어 예술가 삶과 콘텐츠를 만나 묻는다. 그대 미디어는 왜 존재하느냐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래서 또 무엇을 바라는지?
이 주인공은 현존하는 가장 힘 있는 예술 미디어중 하나다. 살아있는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소개되는 세바스티앙 살가두를 이른다. 그 살가두가 8년 프로젝트 결과물 ‘GENESIS’를 갖고 지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 들어와 있다. 갈라파고스에만 서식하는 이구아나 발을 촬영하며 포착한 영감을 살린 사진전 이름 ‘GENESIS(근원)’를 내걸고서. 사람 같은 다섯 손가락과 발톱이 선연하지만 비늘 무성하고 부각했을 때 더욱 기이한 동물 사진 하나가 60대 노후 8년 과업의 헤드라인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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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 |
아마존과 에콰도르 산악과 밀림을 가로질러 다윈을 좇아 갈라파고스에 들어선 이유도 생명체의 기원을 담기 위함이었다. 이미 젊은 날 다윈에 심취했고 ‘종의 기원’을 잉태한 비글호 루트를 탐험하기로 마음먹었던 살가두는 60대 노인이 되어서야 이윽고 기회를 잡아 짐을 꾸리게 되었다고 한다.
갈라파고스 거북을 관찰하고 마다가스카르 알락꼬리 원숭이와 바오밥 나무를 담고 아프리카 대륙 나미비아, 짐바브웨 등지 야생동물들을 다루었다. 그러면서 학자 다윈이 남긴 진화론에 벽돌 한 장 더 얹어 그만의 근원론, 즉 ‘GENESIS’를 미디어 그림으로서 되살려주고 있다.
이번 살가두 최신 프로젝트 ‘GENESIS’는 인간을 지나 동물과 자연으로 귀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9세에 경제학을 전공한 국제기구 사무직에서 전업 사진작가로 전환한 이후 줄곧 레미제라블, 즉 비참한 사람들에만 집중해왔었기 때문에도 그의 변신은 놀라웠다. 그가 매그넘 에이전시 등을 거치며 펴낸 사진집들이 ‘다른 아메리카’, ‘사헬, 비탄에 빠진 인간’, ‘인간의 손’, ‘엑소더스’ 등 제목을 달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인물사진 하나만을 붙들고 나아갔던 궤적을 단박에 읽을 수 있다.
한 평론가는 “저명 매체 저널리스트들이 아프리카 호텔 로비에서 커피 마실 때 살가두는 진작 난민 대열에 섞여 들어가 몇 개월씩 동고동락하며 취재해 작품을 만들었다”고 증언한다. 실제로 그는 국제분쟁과 기근 현장에서 유니세프, 국경없는 의사회, 적십자, 국제연합난민기구들과 함께 작업하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존엄한 인간으로 표현해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받아왔다.
살가두가 자신의 고백처럼 인간만 찍어오다가 이번 프로젝트 ‘GENESIS’를 통해 동물과 자연으로 옮겨간 것은 그 자신 예술가로서 진화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아마존 등지를 탐사하면서 직접 확인한 자연 생태 파괴를 막고 복원키 위한 실천으로 들어서는 수순이기도 하다. 이 실천을 위해 그는 동물과 자연 피사체를 향해 평생을 몸소 익힌 르포르타주 노하우를 이어갔다.
몇 달씩 피사체와 함께 부대끼며 사진을 찍는 르포르타주 방식으로 이미 대가가 된 살가두는 프로젝트 ‘GENESIS’ 에서도 대상은 다르지만 여전히 같은 방식을 고수했다. 가령 갈라파고스 바다거북을 만나서는 꼬박 하루가 지난 다음 한 컷을 담았다. 이에 대해 살가두는 “나는 평생 거짓말을 듣고 살았구나 싶었다. 오직 인간만이 합리적인 동물이라는 거짓말이다.....거북들은 몇 달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살 수 있는 동물이기에 뱃사람들은 거북을 잔뜩 잡아 산채로 배에 실었다가 그 때 그 때 신선한 고기 맛을 즐겼다.
그로부터 두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거북들은 인간의 접근을 매우 꺼린다”고 자신 자전 에세이에서 설명하고 있다. 포식자인 인간에 대한 경계심을 품은 갈라파고스 거북을 찍기 위해 하루 종일 바위에 엎드려 거북과 교감함으로써 실질 자연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이런 진정성은 사진을 넘어 이웃 미디어에도 전달되었다. 살가두 사진은 이제 영화와도 만나 점차 그 파괴력을 키우고 있다. 독일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살가두의 바이오그래피를 다큐 형식으로 그린 영화 ‘The Salt of the Earth, 2014’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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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
한국에는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이란 제목으로 선보였고 이 때 살가두도 한국 관객들을 만나러 왔었다. 이 영화는 살가두의 40년 사진 인생을 회고하면서 인간다움, 즉 휴머니티 변화를 목도하고 프로젝트 ‘GENESIS’가 캐낸 인간과 동물, 자연의 뿌리를 탐험하도록 도와주는 한 편의 시적 콘텐츠이기도 하다.
진작부터 쿠바의 문화재급 음악인들을 기록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1999’ 등으로 최근세 인류 문화사를 채록해낸 빔 벤더스 감독의 터치가 더해져 살가두 작품 세계는 앞으로 예술계는 물론 미디어 산업 전반에도 거대한 영향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디어산업에 끼칠 수 있는 살가두의 영향력은 은밀하면서도 위대할 것이라는 짐작이다.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살가두 자신의 근원이라고 본다. ‘살가두의 근원(GENESIS)’을 봐야 함이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추적하고 2백년 후 살가두 자신이 현장을 뒤져 생명의 기원을 탐사해 사진전과 영화를 매개로 큰 울림을 던지는 힘의 원천은 정말 어디에서 나오는가?
알아보니 과연 살가두 작가론의 핵심이기도 그 창조의 샘은 한마디로 ‘내나라 내겨레’에 있었다. 남반구 후진국 브라질에서 태어나 자랐고 젊은 시절 혼돈에 휘말려 프랑스로 떠나 정식 여권도 없는 망명객으로 살아낸 일생에서 길어 올린 그리움과 희망, 사랑의 힘이 사진 미디어로 뿜어져 나왔다.
평생 동료인 부인 렐리아와 함께 ‘아마조나스 이미지’라는 에이전시 회사를 만든 것도 90%를 훼손당한 모국 아마존 땅을 살려내기 위함이었다. 망명에서 풀려난 이후에는 대서양 연안 생태계 복원을 꿈꾸며 ‘인스치투투 테라’를 설립해 직접 삼림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브라질과 라틴 아메리카 전체 생명 근원(GENESIS)이 되는 대자연을 소생시키는 과업이 이 위대한 사진 미디어 예술가의 최종목적지로 정해진 셈이다.
살가두도 역시 위대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인간인 모양이다. 어릴 때 고향에서 품었던 느낌이 사무쳐 상처 입은 인간을 찾았고 이제 노년에는 자연과 생명의 근원을 따라가고 있다. 더 나아가 근원이 부서지고 더럽혀져있는 것을 좌시하지 않고 미디어 힘을 활용해 2백만 그루 나무를 심었고 여태까지 9만7천톤 탄소를 거둬들였다. 인간이 숲을 조성할 경우 처음 20년 동안 가장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면서 살가두와 그의 친구들은 지구 곳곳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숭고한 미디어 작업이 절실하다. 살가두가 창조의 샘으로서 브라질 고향을 되살리고 있듯이 한국의 미디어 종사자, 예술가들도 한 번 쯤 자신의 근원(GENESIS)을 되짚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살가두의 아마조나스 못지않게 손상된 ‘내나라 내겨레’가 우리 한국과 동아시아 곳곳에 있지 않은가?
도시화 근대화 산업화 정보화가 삼켜버린 수많은 보석들이 곧 우리들의 근원(GENESIS)이자 창조의 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너진 공동체도, 망가진 자연 생태계도 모두 남의 일이 아닌 우리들의 산 역사이니까.
정겨운 이웃, 뒷동산, 학창시절 시화전, 골목길, 대가족, 조선팔도, 만주 땅, 백두산, 개마고원..... 이 모든 그리움과 아픔, 사랑이 우리 한국 미디어산업의 아름다움 창조의 샘이 될 수 있음을 거장 살가두로부터 배우게 된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