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최근엔 사고나 위험에 직면했을 때 사고나 위험 자체는 10%에 불과, 나머지 90%는 이후의 대응자세에 의해 결정된다는 ‘10대 90의 법칙’도 널리 공감을 얻고 있다.
가령 아침 밥상머리에서 초등학생 딸아이가 그릇을 깨뜨렸다고 치자. 이미 딸이 저지른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작은 사건이다. 그러나 이 작은 사건 하나에 대응하는 방식이 어떤가에 따라 전혀 상반된 결과를, 그것도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먼저 일어나기 쉬운 간단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딸아이가 그릇을 깨뜨리자 아빠나 엄마가 얼굴을 찡그리며 딸애를 나무란다. “덤벙 거리니까 그릇이나 깨지?” “출근길에 재수는 다 달아갔네!” “얼른 치우지 않고 뭘 해?” “누굴 닮아서 저렇게 덤벙거릴까?” “누굴 닮아? 당신 닮아서 그렇지 뭐, 피를 속일 수 있겠어!”
▲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티샷을 날리면 빗맞거나 실수가 잦아 비거리가 반도 못 나간다. 골프에서는 크고 작은 실수나 부주의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삽화=방민준 |
이번엔 그 반대의 케이스다. 딸애가 그릇을 깨고 놀라자 엄마 아빠가 이구동성으로 “아이구 다치지 않았어? 큰일 날 뻔 했네! 우리 딸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이리 나와. 우리가 치울 게. 정말 다행이다.”
그리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세 식구가 아침을 맛있게 먹고 딸애는 학교로 아빠는 회사로 출근하다. 엄마는 혹시 깨진 그릇 조각이라도 남아 있을까봐 부엌 주변을 다시 한 번 깔끔히 정리하고 다른 집안일을 한다.
딸애는 평상시대로 학교에서 명랑하고 놀고 열심히 공부하고 아빠 역시 열심히 일한다. 저녁에 만난 세 가족은 환한 얼굴이다.
이 법칙을 골프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모처럼 예정된 친구들과의 라운드를 생각하며 약간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서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골프코스에서 벌어질 온갖 상상을 떠올리며 신나게 달리는데 외제 승용차 한 대가 급차선 변경을 하면서 앞을 가로 막는다.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저 놈 미친 것 아냐?” 화를 낸다. 앞차의 속도가 느려 차선을 바꾸어 달린다.
그러나 어느 새 외제차가 앞을 가로 질러 막는다. 화가 치솟아 창문을 내리고 앞차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그러나 앞차는 태연하게 진로를 막으며 한참 주행하다 고속으로 내뺀다. 추격하려 하지만 성능이 따라주지 못한다. 가슴은 뛰고 혈압이 올라가고 체온도 올라간다. 흥분상태에 빠진 것이다.
시간을 조금 뒤돌려 보면 잠시 휴대폰을 검색하느라 정상 속도로 주행하지 못한 적이 있는데 그때 뒤따르던 차가 그 외제차였고 외제차 운전자는 분풀이로 앞차를 앞질러 진로를 막으며 보복을 했을 뿐이다.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한 채 골프장에 도착, 옷을 갈아입고 식당에서 동반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고속도로에서의 사건을 얘기하며 불쾌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첫 홀 티샷을 날렸으나 빗맞아 비거리가 반도 못 나갔다. 속으로 ‘아침부터 재수 없더니 첫 티샷부터 엉망이구먼, 오늘 라운드가 심상치 않을 것 같애.’ 중얼거린다.
라운드를 마쳤을 때 스코어는 최악이었고 친구들과도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집에 도착해서도 불쾌한 감정이 가시지 않아 아내로부터 “당신 오늘 라운드 별로였구나!”하는 소리를 듣는다.
동일한 상황을 당한 사람의 다른 대응을 가정해보자.
외제차가 끼어들어 정상적인 주행을 방해하자 “왜 갑자기 저러지? 내가 뭐 잘못 했나?”하고 속도를 줄인다. 앞길을 좀처럼 열어주지 않자 “차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지” 천천히 차선을 바꾼다. 외제차가 다시 앞을 가로막자 슬며시 화가 치밀어 오르려 한다.
‘고속도로에서 시비 가려봐야 서로가 손해지 뭐, 급하지 않으면 그렇게 가시오. 나도 그다지 급하지 않소’ 하고 속도를 줄여 달린다. 한참 그렇게 가다 앞차가 지쳤는지 속도를 높여 사라진다. 이후 평상시와 다름없이 골프장에 도착한 그는 멋진 티샷을 날리며 평소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한다.
간단한 사건이지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골프에서도 다반사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실수나 부주의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골프에서의 ‘10대 90의 법칙’이 통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자.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