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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증세? 바보야, 문제는 기업 살리기야

2015-02-07 08:56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한국사회만큼 반기업심리가 우심한 곳도 없다. 한국경제가 어려운 것도 결국은 경제주체인 기업이 맥을 못 추는 탓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기업에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정치권의 복지 논쟁, 부자 증세와 법인세 인상 논쟁이 그걸 새삼 보여준다. 이에 미디어펜은 좌승희경제학의 기업론을 소개한다. 주류경제학의 변화를 외쳐온 좌승희 경제학의 하이라이트가 기업론이기 때문이다. 상, 하 두 차례 연재 중 이번이 마지막 회이다. 이 시리즈는 한국경제의 회생을 돕고, '기업 없는 경제학'이던 주류경제학의 틀을 바꾸는 이중의 작업이다. <편집자>

좌승희 기업론의 경고 <하>

   
▲ 조우석 문화평론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강조되는 게 경제교육인데, 초중고에서 대학까지 막상 낙제점을 못 면한다. 보름 전 이 지면에 발표된 자유경제원 전희경 사무총장의 칼럼 '경제 없는 교육, 피케티의 오류에 빠지다'가 그 점을 지적했다.

우선 경제교육은 배우면 배울수록 현실과 담을 쌓게 만든다. 대학생들의 경우 "죽어라 통계만 돌리는 경제학"을 하면서 이내 자기 전공에 환멸한다. 상아탑 식의 가설 놀음이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으니 졸업 뒤엔 경제신문도 못 읽는 경우가 수두룩하단다. 더 위험한 건 초중고다.

자본주의란 고삐 풀린 망아지이고, 탐욕의 정글이라고 가르치니 반기업 심리는 기본이다. 그게 전교조 농간만은 아니다. 즉 경제학이란 학문 자체가 문제다. 경제학이 과학임을 보여주려고 추상화된 모형만을 너무 선호하다가 빚어지는 엉뚱한 결과인데, 그걸 좌승희 박사는 이렇게 지적한다.

"그래서 (추상화된) 모형은 자본주의 경제모형도 되고, 사회주의 모형으로도 쓰인다. 주류경제학은 이제 이념이나 경제제도나 그리고 체제 문제로부터 해방된 셈이다."

그의 저술 <경제발전의 철학적 기초>(서울대출판문화원)에 나오는 말인데, 그래서 경제학을 전공한 좌파 성향의 학자라면 기업을 청산대상으로 안다. 경제력 집중은 악(惡)이라고 배운 탓이다. 실은 우파도 오십보백보다. 좌파나 우파나 모두 '기업이 빠진 경제학'만을 잘못 배운 탓이다.

일류기업 많은 나라가 곧 부자나라

그래서 시장경제를 기업경제로 전면재구성한 좌승희경제학은 동시에 정치경제학이다. 그동안 정치철학이 주물러왔던 평등-정의-공정의 참뜻을 바로 세우고, 경제가 일방적으로 정치철학에 끌려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은 경제정치학인데, 사뭇 끌리지만 현학적인 논의라서 건너  뛴다.)

이게 대한민국 현대사 해석으로 연결되며 문제가 커진다. 즉 자유주의 경제학자에게 박정희는 골치가 아프다. 언제까지 외면할 순 없고, 끌어안고 있자니 도무지 해석이 안 된다. 그래서 관치(官治)경제 아래서 이룬 도약, 경제력 집중과 불균형을 통한 성장은 지금도 해독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런 구조적인 상황에서 불균형-불평등을 경제진화의 으뜸 원리로 내세운 좌승희경제학의 성취는 경이롭다. 기업을 시장의 적(敵)으로 보지 않고 시장의 육성자로 내세운 관점도 경제학 일반이론으로 손색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명제 두 개가 등장한다. "시장은 형식이고, 기업은 실체다." 기존 경제학을 완전히 물구나무 세운 도발이자, 좌승희 식의 기업경제를 위한 제1의 선언인데, 또 있다. "기업의 성장이 곧 경제발전의 과정이다." 즉 일류기업 많은 나라가 곧 부자나라인데, 그건 통계로 뒷받침된다.

   
▲ 당장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 대표를 포함한 여권은 무상복지 개편에 무게를 두고, 야권은 부자 감세 철회 등 조세 체계부터 바꾸자고 난리다. 결정적 변화가 없다면, 대세는 포퓰리즘이다. 복지 재원 필요하다고 법인세 인상을 애기하는 바보 국가는 한국뿐이지만, 그쪽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 /뉴시스

2011년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국가별 분포를 보면 미국이 133개(26.6%)로 단연 선두다. 일본 68개, 중국 61개로 뒤를 잇고 프랑스 35개, 독일 35개, 영국 31개 등에 이어 한국이 14개로 8위다.(여기서 필자는 IMF 때 해체된 대우그룹 등 30대 대기업의 절반이 지금도 살아있었더라면 하는 가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경우 우리경제는 지금과 사뭇 달랐으리라.)

오늘 날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삼성, 현대, LG, SK, 두산 등은 예외없이 개발연대를 전후한 시점에서 작은 중소 상공업자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전략에 따라 극적인 도약을 이뤘다.

신군부가 집권했던 1980년대도 성과가 아주 없진 않았는데, 그게 전자정보 통신산업 육성전략이다. 당시에도 대기업 규제가 지배적 분위기였지만, 정부는 삼성, 현대, LG, SK, KT 등이 그쪽으로 진출하는 걸 허용하는 어려운 결정을 했다. 오늘날 IT강국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한국을 아는 외국인들이라면 예외 없이 물어본다. "어떻게 한국은 그 많은 대기업을 보유하고 있나?" 유감이다. 우린 완전 정반대다. 예전엔 재벌청산에 경제력집중 해체라는 구호를 외치더니 지금은 사회적 기업, 경제민주화, 보편복지 따위의 평등주의 유행어에만 매달린다.

전체 상황 파악하며, 큰 그림 그리는 정치인이 없다

대기업만 사라지면 대한민국이 행복해질 것 같다는 투인데, 실로 이해 못할 사회적 히스테리의 연속이다. 이런 형편이니 평등주의의 87년 체제 이후 대기업이 새로 등장한 바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일까?
더 안타까운 건 따로 있다. 전체 상황을 파악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정치인이나 학자는 보이지 않는다. 불행은 멈추지 않을 기세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앞으로 1년 한국사회는 복지와 세금 논쟁으로 거의 날밤을 샐 것이 뻔하다.

당장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 대표를 포함한 여권은 무상복지 개편에 무게를 두고, 야권은 부자 감세 철회 등 조세 체계부터 바꾸자고 난리다. 결정적 변화가 없다면, 대세는 포퓰리즘이다. 복지 재원 필요하다고 법인세 인상을 애기하는 바보 국가는 한국뿐이지만, 그쪽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바닥이던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은 더 추락할 것이고, 한국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떨어질 것이다. 이 모두 기업 성장이 곧 경제발전이라는 판단 아래 더 많은 일류기업을 키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드문 탓이다.

저성장에 헤매는 한국사회는 재도약을 통해서 복지확대에 따르는 세수(稅收)를 확보하는 게 답이다. 하지만 그런 비전 없이 허둥지둥 소모적 논쟁뿐이다. 걱정스러운 기색의 좌승희 박사는 전부터 이 말을 반복했다.
"기업이라는 건 영원한 상수(常數)가 아니에요.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기업을 두드려 패고 돈을 뜯는데 기업이 몰락하는 건 잠깐일 수도 있습니다."

기업이 모두 몰락하면 어떻게 될까? 우린 모두 농경사회의 옛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게 좌승희경제학의 지적이다. 가난의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숙명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조선왕조로의 회귀인데, 생각만해도 아찔한 악몽이다. 실감 나지 않으신다고? 괜한 기우라고? 아니다.

한 유명한 환경 지상주의자가 자신이 그리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이렇게 표현했음을 필자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왜 우리는 고르게 가난한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 꼭 1년 전 자기 책과 잡지 출간을 알리기 위한 신문광고의 카피가 바로 그러했다.

'고르게 가난한 삶'? 평등주의 움직임의 가장 압축적인 구호이자, 퇴행의 미친 언어다. 놀랍게도 그런 게 이 땅의 좌파와, 허위의식에 절어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맹렬하면서도, 은밀하게 작동 중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기업 없는 농경사회의 가난으로 굴러 떨어진다는 지적은 이 시대를 향한 좌승희경제학의 날카로운 경고음이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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