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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는 공멸의 길…수혜자 주도 복지요청제 도입하자

2015-02-10 10:27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증세는 자멸의 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월 9일 청와대에서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우리가 경제도 살리고, 복지도 더 잘 해보자 하는 심오한 뜻을 외면한다면, 정말 국민을 배신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국민의 종복으로서 국민이 준 돈으로 살림을 잘 해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각도에서 본다면, 적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국민 대표로서의 지위를 망각하고, 생색은 자기가 낼 수 있는 기회를 악용해서, 국민들에게 왜 돈을 더 내지 않느냐고 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연말정산 증세논란에서 드러났듯이, 대한민국 국민들은 증세에 확실히 반대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성장이 복지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이 58%, 증세보다는 복지를 줄여야 한다는 사람이 48%로 나타날 정도로 증세를 반대하는 국민이 많다. 민주주의의 원동력인 조세저항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자고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란 말이 있듯이 국민들은 정부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싫어했다. 서양에서도 마그나카르타(대헌장)는 조세저항의 결과였고, 명예혁명도, 미국의 독립혁명도 모두 조세저항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도 몇 가지 예를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은 민주화운동의 결과물이기도 했지만, 1978년 소비세(부가가치세)의 실시의 결과물이라는 분석도 있을 정도로 증세에 대한 거부감은 크다. 노무현 정권도 계급주의적 선동을 하고 종합부동산세로 재산 상하위 간 이간책을 썼었고,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은 종합부동산세를 정밀유도폭탄인 양 했지만, 경제원리상 그 전가(轉嫁)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종부세가 세금폭탄으로 작용하자 국민들이 모두 등을 돌렸다. 최근 마치 증세를 하지 않은 양 했던 꼼수 증세도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 규모의 축소로 세금을 추가납부하게 됨으로써 실체가 드러나자 박근혜 정부의 지지도를 30% 이하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제도 초창기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 이제서 왜 그러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다고 했을 당시에도 이미 한노총 민노총 등까지도 반대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소급입법금지의 법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되돌려주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한 것이 아닌가? 이처럼 세금을 올린 정권치고 국민의 환영을 받고 잘 된 예는 없다.

하물며 이렇게 민감한 증세 문제를 국민들의 심부름꾼에 불과한 정치인들이 주인인 국민들에게 훈계하며 증세에 반대하는 것을 죄인 취급하는 것은 권한 밖의 행위일 뿐 아니라,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짓이기도 하다.

무상복지의 재정난은 정치인들의 좌파적 생색내기 때문이다

지금 무책임한 정치인들에 의해서 증세가 논의될 정도로 돈이 부족한 상황인데, 그러면 복지를 부도 위기로 몰고 갈 것인가 아니면 복지를 구조조정할 것인가?

그간 우리는 무상급식이다 무상보육이다 하면서 무상 잔치 경쟁을 벌였다. 그러다보니 예산은 부족하고, 2015년이 다 가기 전에 펑크가 날 수 있는 상황이다. 무상으로 안해줘도 될 사람에게까지 무상복지를 해주다가, 복지가 아예 부도가 난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는가? 엉뚱하게도 복지혜택을 계속 받아야 할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까지 복지혜택이 끊길 판이다.

   
▲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와 관련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우리가 경제도 살리고, 복지도 더 잘 해보자 하는 심오한 뜻을 외면한다면, 정말 국민을 배신하는 것 아니냐”며 국민의 종복으로서 국민이 준 돈으로 살림을 잘 해 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무분별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무상급식은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의 무책임한 정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 새민련 쪽 세력이 가세하여 국민의 돈으로 정치권이 생색을 내는 전형적인 나쁜 정책으로 되었다.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는 재정우선순위가 바뀌다보니 화장실 개보수, 학교 시설 개보수, 노후 학교 재건축 등은 뒤로 밀렸다.

그렇다고 빈부격차를 느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옷이며 신발 가방 얼굴형색 등에서 눈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어려운 학생에 대한 급식비는 동사무소에서 계좌로 입금되기 때문에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데, 이런 점을 억지로 무시하였다. 급식의 질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무상급식에 맞불을 지른 것이 새누리당 쪽 세력이 내세운 무상보육이다. 이 무상보육은 재정부족은 물론이고, 영유아 보육기관들의 부족을 야기했고, 질의 저하를 가속시켰다. 아무렇게나 대해도 돈이 무조건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 어린이집에서 돌봐야 할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기보다 학대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어린이 수용소처럼 변하게 만든 원인이 획일적 무상보육제도에 있다. 게다가 무상보육 공약은 대통령이 하고 예산부담은 지방자치가 하도록 하는 얄팍한 계산이 담긴 법을 만듦으로써 지방자치의 예산부족을 더 가중시켰다.

이처럼 무상복지가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빠지게 된 것은 정치인들의 좌파적 생색내기와 월권 때문이다. 본래 국가에 의한 복지는 그 재원이 국민이 내는 세금이다. 따라서 국민들이 부담할 용의가 있는 범위에서만 복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퍼주기가 국회의 의결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착각을 하다 보니, 또 그런 과정의 연속에서 정치인들이 생색을 내는데 익숙하다보니, 정치인들이 복지 약속을 남발하게 되었다. 자기 돈이라면 그렇게 막 퍼주듯이 남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지가 의심스럽다.

자기 돈이 아닌데도 마치 정치인들이 자기가 국민들을 도와주는 듯이 생색을 내는 현행 ‘국가복지’는 국민의 심부름꾼의 월권이 아닐 수 없다. 복지는 정치인들이 생색을 내는 것에서 국민들이 돈을 내면 돈을 내는 사람이 생색을 낼 수 있도록 자발적인 ‘시민복지’로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에게는 동정(sympathy)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충분히 자발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자선(charity)을 행할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복지전달체계에서 종교기관 등 시민복지기관들이 활성화되도록 하고, 정부도 그들과의 협력을 통한 전달을 강구하여야 한다.

어쨌든 지금은 복지 부도인가 아니면 복지 구조조정인가의 갈림길에 있다. 따라서 안해줘도 될 사람에게는 안하는 것으로 복지를 구조조정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복지를 원래 취지대로,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 대한 이웃들의 따뜻한 지원으로 살려나가야 한다.

반발이 덜한 복지구조조정 방안 – 수혜자 주도의 복지수혜 요청제를 도입하자

복지구조조정을 위해서는 20-30%의 소득 내지 재산 하위 국민들에게는 지원을 계속해주되, 그 이상의 경우에는 의존적 복지보다는 자신의 생활은 스스로 책임지는 자립적 복지로 가야 한다. 사회복지는 의존적 복지를 졸업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고, 사회 부조(扶助)가 성과를 낸 것이며,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를 개혁할 때에는 영국 대처 수상의 개혁 예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대처 수상의 경우에는 선택지를 줌으로써 저항을 현저하게 줄이는 지혜를 발휘했다. 예컨대 부실관리와 노후화의 문제를 일으키는 임대주택문제를 시장경제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 분양과 계속 임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당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실제 거주자들이 환영했고, 손해를 보는 사람도 없어 저항도 없었기에 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다. 결국 노동당도 나중에는 보수당을 따라 정책전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참조하여, 무상복지 개혁 시 기존 수혜대상자의 반발을 없애기 위해서는 소득 내지 재산 상위 복지수혜자에게 자립적 복지와 의존적 복지 요청 사이에서 선택을 하도록 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그들의 자녀에게는 의존적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유가 있어 요청을 한다면 그 요청에 의해서 의존적 복지를 계속 제공해주는 식으로 살짝 바꾸면 된다.

즉 지금의 당연 무상복지에서 선별적 무상복지로 가되, 그 선별을 행정기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수혜자 주체로 하자는 이야기다. 지금처럼 당연 무상복지를 전제로 요식적 신고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양심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거나 그렇게 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시민, 즉 자립적인 시민은 많다. 따라서 그들이 스스로 의존적 복지에 기대지 않으려는 결단이 가능하도록 할 때, 복지재정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

이 제도에는 다른 필요성도 있다. 사실 수혜대상자를 정부가 선별할 때는, 실제로 어려운 사람이 수혜를 받지 못할 경우가 있다. 즉 점이지대가 있는데, 현행 복지대상자 선정은 가족관계 등록부 상의 부양가족이 있을 경우에는 지원을 받기 어렵고, 현실의 가족관계는 이런 저런 이유로 가족관계등록부와 다른 처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단원고 학생 김유민 양의 경우에도 아버지 김영오씨가 사지가 멀쩡하게 살아 있었음에도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고, 실제로는 외할머니가 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노동을 하면서 부양을 했었다. 이처럼 밝히기 힘든 가족관계상의 문제 때문에 어려움에 처해있는 경우가 이외에도 많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요청에 의해서 복지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점이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복지를 구조조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발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족관계등록부를 기준으로 하는 행정적 요건에도 불구하고 복지혜택을 계속 준다면, 정책전환에 대한 반발의 강도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강한 체면문화 내지는 자활의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전환만으로도 거의 절반에 가까운 상당한 복지구조조정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고, 복지부도의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박종운 시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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