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의춘 미디어펜 발행인 |
울산지법 제4민사부가 12일 현대중공업 근로자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린 것은 유감이다. 재판부는 현대중 근로자들이 받는 상여금 800%가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
젊은 재판장은 근로기준법상 규정을 갖고 판결했다고 한다. 법관의 독립적 판결을 존중해줘야겠지만, 매우 유감스럽다. 현대중공업이 직면한 위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249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사상 최대규모다. 경영상의 긴박한 위기를 맞고 있는 것. 재판부는 천문학적인 조단위 적자를 기록하는 회사에 대해 수천억원의 추가 부담이 예상되는 통상임금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2013년 통상임금 판결에서 고정성 일률성 정기성을 기준으로 했다. 다만 회사가 경영상의 위기를 맞을 때는 노사간 신의칙에 따라야 한다고 판결했다. 울산지법은 대법원 판결을 지나치게 가볍게 해석했다. 3조원이상 적자를 내는 회사가 긴박한 위기를 맞지 않는다면 도대체 적자규모가 얼마나 돼야 하는지 답답하다. 회사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이 노조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준 감이 없지 않다. 더구나 이를 소급적용해서 지급토록 했다.
▲ 울산지법이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조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줘 편향 판결 논란을 낳고 있다. 권오갑 사장이 본사정문에서 출근하는 근로자들와 악수하고 있다. |
유탄을 맞은 현대중공업은 5000억원대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할 것으로 추산된다. 노조는 소송에서 100% 승소할 경우 6900억원가량을 더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특근수당과 야근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았다. 회사가 부담해야 할 추가임금은 3000억원에서 최대 4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재계는 분석하고 있다.
위기해소에 전력투구중인 현대중에겐 설상가상의 악재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2분기, 3분기 연속 조단위 영업적자를 기록한 후 4분기에는 223억원으로 줄였다. 턴어라운드 기미가 보인 것이다. 구원투수로 나선 권오갑 사장은 대대적인 사업재편과 인원감축, 수주확대에 나서고 있다. 울산지법의 노조편들기 판결은 심기일전하며 위기극복에 나선 현대중공업 경영진에게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울산지법의 판결은 현대차의 통상임금 1심 판결과도 큰 차이가 난다. 현대차 통상임금을 재판한 서울지법은 격월로 지급되는 상여금과 구정과 추석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사간 임금협약에 15일미만 근무자는 통상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 서울지법은 이를 근거로 현대차의 상여금지급이 고정성을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현대중공업노사협약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다. 무단 결근, 유단 결근시에는 상여금을 감액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 결근이 많을 경우에는 상여금을 50%만 받는 근로자가 있다. 결근시에는 상여금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고정성과 일률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와 비슷하다. 다만 문구만 다를 뿐이다.
현대차를 다룬 서울지법과 현대중공업을 다룬 울산지법이 180도 다른 판결을 내린 셈이다. 판사의 개인성향이 이같은 상이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궁금하다.
판사마다 다르다면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2심판결에선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사법부가 통상임금을 부추길 수도 있는 것.
대법원이 2013년12 통상임금에 대해 고정성 일률성 정기성을 기준으로 판결한 이후 재계는 소송몸살을 앓고 있다. 노조와 근로자들이 경쟁적으로 소송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통상임금은 ‘로또송사’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사법부 신뢰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통상임금을 둘러싼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산업부, 고용노동부가 머리를 맞대고 명확한 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노사정위에서 대타협안을 도출해야 한다. 당초 약속대로 3월까지는 노사정위합의안을 국민에게 내놓아야 한다. 사법부 판결에 마냥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관련법규부터 정리해서 통상임금 대란을 치유해야 한다.
재계는 지금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자동차 전자 조선 철강 화학 정유 건설 등 주력업종이 매출감소와 영업이익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통 등 내수업종도 썰렁하다. 기업마다 계기비행을 포기하고, 시계비행을 하고 있다. 시나리오경영으로 험한 파고를 헤쳐나가고 있다. 채용도 줄이고 있다. 청년들의 취업대란이 가시화하고 있다.
사법부는 더 이상 재계의 리스크를 키워주는 곳이 돼선 곤란하다. 쌍용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실시한 정리해고마저 불법이라고 판결한 황당한 판사도 있다. 당시 법원은 쌍용차 법정관리인에게 정리해고 등 인력구조조정 명령을 내린 바 있다. 판사들은 개인적 소신과 성향으로 노사문제 판결을 한다는 의혹을 갖게 해선 안된다. 사법부가 갈등의 새로운 진원지가 돼선 곤란하다. [미디어펜=이의춘 발행인 junglee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