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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원장 고전특강(51)-괴테 문학의 영감이 된 그리스 로마 예술

2015-02-14 10:49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51)-그리스 로마의 찬란한 문화유산
괴테(1749~1832)의 <이탈리아 여행>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즈음, 필자는 괴테가 밟았던 이탈리아 여행 루트 어딘가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이탈리아 여행이다. 9일 간의 짧은 배낭여행이어서 괴테의 여행 경로의 일부만 쫓을 수 있을 듯싶다. 베니스, 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를 다시 방문할 것이다. 비첸차, 베로나, 만토바, 모데나, 시에나, 라벤나 등 중세의 역사와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중소 도시도 잠시라도 들를 생각이다. 나의 여행 역시 괴테처럼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 그리고 르네상스의 문화유산을 확인하고 체감하는 감성여행이자 문화기행이다. 특히 필자에겐 즐거운 고전여행이기도 하다.

어디를 가든 여행은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특히 17~18세기 유럽의 지성들이 이탈리아로 몰려가던 그랜드 투어(Grand tour)시대에 이탈리아 여행은 유럽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독일의 대 문호 괴테 역시 37세 되던 젊은 시절 이탈리아 여행을 다니며 그리스, 로마 문화에 심취하여 예술에 대한 이해와 식견을 높일 수 있었다.

괴테는 1789년 9월 3일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많은 친구들을 두고 몰래 집을 빠져나와 1년 9개월의 긴 세월동안 이탈리아 곳곳을 여행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마차로 출발하여 이탈리아 북부지방 볼차노부터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섬까지 주유했다.

괴테는 자신을 붙잡아두려는 친구들의 등쌀을 피해 여행가방과 가죽 배낭만을 꾸린 채 마차여행을 떠났다. 그는 가는 곳곳마다 자신이 감명 깊게 본 이탈리아의 풍광과 유적, 유물, 생활상을 직접 스케치했다. 그의 소묘 작품은 전문화가 못지않은 수준을 보인다. 이 여행기를 읽는 또 다른 재미는 그의 다양한 소묘와 수채화 작품을 보는 것이다. 당시 사진기가 없었으니, 그의 그림은 당시의 이탈리아의 풍광과 유물을 아름답게 포착해낸 의미 있는 삽화 역할을 한다.

그의 이탈리아 여행은 고대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느끼는 문명답사였다. 또 현실에서 다양한 사람들은 만나고 교류하는 인간적 소통과 배움의 길이기도 했다. 두 권으로 나뉜 적지 않은 분량의 이 여행기는 여행기를 넘어 자신의 예술적 관심과 통찰, 인간 사회에 대한 이해가 성숙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한 수상록이라 보아도 될 것 같다. 더구나 글도 독일 고향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의 형태여서 자연스럽다.

괴테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추밀고문관이라는 고위 공직을 역임했다. 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작가로도 이미 유럽에서 문명(文名)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신분을 활용하여 이탈리아 고관들과의 관계를 통해 보다 편한 여행이나 인적 교류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괴테는 자신에 보다 침잠할 수 있는 여행으로 만들기 위해 신분을 숨긴다.

   
▲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의 생가 박물관에 있는 괴테의 책상과 의자 ⓒ박경귀.
괴테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 조용히 심취하고자 일반 여행객인 듯 자신의 신분을 감췄던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여행과정에서 인상 깊은 자연과 성곽을 스케치하다 외국의 첩자로 오인 받아 잠시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이탈리아의 현지 문화를 존중하면서 되도록 익명의 여행자로서의 자유를 즐기고자 했다.

괴테가 본 개별적인 유적과 유물 자체에 대한 구체적 평론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그가 이탈리아에서 보고 느낀 예술적 감흥은 훗날 그의 <예술론>에 상세히 담겼다. 괴테의 여행기는 고대 문화유산에 대한 관찰과 평론에 치중하지는 않았다. 반면 그는 음울한 날씨의 북국에서 내려온 여행객으로서 남국의 강렬한 햇볕과 풍요로운 자연을 가진 이탈리아의 전원 풍경에 대해 매료된다. 또 가는 곳마다 문화적 소양을 지닌 사람은 물론 일반 소시민들과도 편하게 사귀었다.

괴테는 이탈리아 곳곳에서 만나는 고대 그리스 예술작품들을 높게 평가했다. 그리스 예술작품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 고대 그리스 작품들을 모방한 복제품을 수백 개나 사들이기도 했다. 괴테가 최고의 고대 예술품으로 꼽은 것은 ‘벨베데르의 아폴론상’과 ‘라오콘 상’이다. 괴테는 요하임 빙켈만의 고대 그리스 예술 평론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 고대 그리스 작품들의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성”을 만끽하며 찬탄했다.

   
▲ ‘벨베데레의 아폴론 상’, 아테네의 조각가 레오카레스(Leochares)가 기원전 5세기 중반에 청동상으로 제작한 아폴론 상을 로마 시대에 모작(模作)한 것으로 해석된다. 네로 황제의 별장에서 발견되었다. 바티칸 박물관 ⓒ박경귀.
그는 특히 당시 벽감이 놓여 있던 ‘라오콘 군상’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횃불을 사용했다. 고대 예술작품들은 횃불 조명으로 그 훌륭함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말한다. “보통의 빛으로는 단순히 옷 밖으로 신비에 가까울 정도로 부드럽게 내비치는 신체의 각 부분들을 감지해 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횃불 조명을 통해 작품의 질량감과 들어가고 튀어나온 부분들을 섬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된다며 이 방법을 예찬하고 있다.

필자도 2014년 5월 초에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하여 ‘라오콘 상’을 눈앞에 마주한 적이 있다. 라오콘과 두 아들, 그리고 두 마리 뱀의 용틀임, 뱀에 물린 고통을 절제하는 표정과 온 몸의 섬세한 근육이 살아있는 듯 표현된 작품의 예술성에 넋을 놓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한 낮의 밝은 태양빛 아래의 감상이어서인지 괴테가 횃불 조명을 통해 느꼈을 벅차오르는 감동이 어떤 것일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횃불 조명을 통해 작품 감상을 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 ‘라오콘 상’, 기원전 200년 경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 작품을 로마 시대인 1세기 경에 로데스의 조각가 아테노도로스, 하게산드로스, 폴뤼도로스 3인이 복제한 작품이다.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 ⓒ박경귀.
괴테는 여행 중에도 자신의 작품 구상과 이미 쓰고 있던 희곡과 소설 작품을 계속 써나갔다.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회화 공부를 위해 여류 화가 앙겔리카와 교류하고 페에샤펠트에게서 원근법을 배웠다. 인체 형상 연구에도 매진했다. 인간 형상의 소묘 실력은 자신의 표현대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미술이 저에게 제2의 자연이 되고 있”다고 말할 만큼 그는 미술공부에 푹 빠진다. 심지어 조형예술까지 도전하려다 그 꿈을 접기도 한다.

그는 인체연구를 하면서 손과 발, 육체의 각 부분을 그렸다. 삽화로 삽입된 그림들은 그의 뛰어난 솜씨를 그대로 보여준다. 괴테가 스스로 골상학과 인체 형상 연구에 매진함으로써 인체의 표현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게 되자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겨준 최고의 유산인 조각품들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하게 되었다. 그때에 이르러서야 그는 “이제야 보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만끽합니다”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싶었다고 말한다.

괴테의 그 깨달음의 환희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스스로 신체의 미묘한 근육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소묘하다 보니 고대 그리스 조각품이 표현한 인체 형상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절실하게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리라. 괴테는 스스로의 역량 함양을 통해 미술작품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도 고대 그리스 조각 작품들을 보면 누구나 탄성을 지른다. 하물며 괴테처럼 인간 형상의 표현 방식을 스스로 터득한 사람이 작품들을 바라본다면, 한 차원 높은 감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당연한 일일 듯싶다. 그가 ‘벨베데르의 아폴론상’이나 ‘라오콘 상’의 예술성을 더욱 절절하게 느꼈던 것도 자신이 몰두하던 골상학과 인체 형상 연구의 성숙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괴테는 이탈리아 건축에도 관심을 가졌다.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한 미켈란젤로는 조각과 건축의 예술성을 최고로 끌어올린 거장이다. 이 이외에도 괴테는 16세기 세계 최고의 건축가였던 팔라디오의 가치도 새롭게 조명했다. 팔라디오가 건축의 거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건축물 전체의 아름다운 조화를 창조해 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괴테는 팔라디오를 비투르비우스의 뒤를 잇는 대 건축가로 보았다. “내적인 구상력과 외적인 실행력 양면 모두에서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했다. 팔라디오가 남긴 걸작 건축물은 수없이 많다. 올림피코 극장, 그의 고향 비첸차 근교의 로톤도 별장 등이 대표적이다. 팔라디오의 건축 기법은 팔라디아니즘(Palladianism) 양식으로 정립되고 전 유럽으로 전파되어 유행했다.

괴테는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연극 공연이나 음악회도 자주 관람했다. 그가 당대 유럽에서 최고수준을 자랑하던 이탈리아의 연극과 성악에 매료되었음은 물론이다. 로마의 화려한 사육제(謝肉祭)에 대해서는 르포 기사를 쓰듯 40여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에게 이국적인 축제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던 모양이다.

괴테는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무관하게 모든 시민들이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때로 광기를 발산하며 이를 허용하는 정경에 크게 감명을 받는다. 특히 독일과 달리 여성이 존중 받고 살롱에서 사교계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문화를 매우 흥미롭게 관찰했다.

   
▲ ‘로마 캄파냐 평원의 괴테’, 괴테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다. 요한 티슈바인(1751~1829)의 1787년 작,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예술기행이었다. 그는 여행 중 고대 그리스, 로마 예술에 조예가 깊은 화가와 살롱에서 만나는 교양인들과의 교유를 통해 고대 그리스 예술과 로마 예술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은 그의 예술적 안목과 식견을 높여주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깊어진 안목으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예술을 찬탄했다. “시스티나 예배당을 보지 않고서는, 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정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나타난 인물의 면밀한 형상과 채색의 아름다움에 경탄한다. 반면 라파엘로의 작품 역시 천재성이 드러나지만 미켈란젤로에 비견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괴테의 문학과 예술 이외에도 학술적 관심 분야를 넓혔다. 그는 식물학, 지질학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가는 곳마다 특이한 식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광석이나 지질의 특이성도 치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했다. 특히 식물학에 대한 그의 애정과 전문적 지식은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그는 모든 식물을 관통하는 어떤 원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원형식물’ 개념을 사용한 것이 그 예다. 그는 자연을 단순히 관조의 대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식물의 식생의 원리까지 궁구하였던 것이다.

이 여행기는 괴테가 자신의 주 전공인 문학이외에 다방면에 걸친 관심사를 갖고 있었고, 그 많은 분야에서 전문가에 버금가는 지식과 안목을 갖추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또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통찰을 배우고자 했던 그의 열정과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여행 중에도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레오나르도의 <회화론>, 요하임 빙켈만의 <고대 예술사>, 헤르더의 <언어의 기원에 대하여>, <고찰> 등을 책을 탐독했다.

또 이국에서의 러브스토리도 만들 뻔 했다. 그는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총명하고 지혜로웠던 밀라노 출신의 한 여성에게 짝사랑을 느낀다. 괴테는 그녀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쳐주고, 여러 활동을 함께 하면서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녀가 약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격정을 접는다. 청년기 괴테의 솔직하고 낭만적이던 그의 성품을 짐작하게 해 주는 일화다.

이탈리아 여행과 로마의 방문은 괴테가 스스로 말했듯 그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주었다. 고대 문화예술에 대한 눈을 뜨게 했고,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은 물론,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해주었다. 그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의 정신적, 예술적 감각과 안목을 놀라울 만큼 성숙시켰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가 훗날 필생의 대작 <파우스트>를 집필할 수 있었던 근원적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매번 느끼지만 여행은 평소 취할 수 없었던 새로운 자양분을 얻는 소중한 기회다. 괴테가 그랬듯 그리스와 로마 기행을 떠났던 수많은 지성들이 그러했듯 나도 이탈리아에서 인류 문명의 뿌리를 확인하고 느낄 수 있길 갈망한다. 내년에도 나의 소망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독일의 구석구석을 기행하기를. 거기서 난 괴테와 헤르만 헤세를 만나고, 니체와 칸트, 그리고 쇼펜하우어와 조우할 것이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 추천도서: <이탈리아 여행 1, 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글, 그림, 박영구 옮김, 생각의 나무(2005), 1권 358쪽. 2권, 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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