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15분을 뺀 나머지 시간인 3시간 45분 정도가 여백이란 셈이다. 이 여백의 시간은 잔디 위를 걷고, 코스를 살펴 전략을 세우며, 동반자와 담소를 나누는데 쓰인다. 정작 꼭 필요한 동작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15분밖에 안 걸리는데 여백이 이렇게 많다 보니 온갖 상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다. 골프란 바로 긴 여백의 시간에 몰려드는 상념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골프는 라운드를 한번 시작하고 나면 싫으나 좋으나 18홀을 끝내야만 그 판에서 빠질 수 있다.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골프다. 서양에서 유래된 골프가 동양의 도락인 화투와 닮았다는 게 아이러니다. |
도락에 비유하면 골프는 서양식 카드가 아니라 화투다. 도락이란 면에서는 같지만 카드와 화투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화투는 처음 패를 돌리고 나서 게임에 참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순서대로 결정할 수 있다. 한번 참가를 결정한 뒤에는 그 판이 끝나기 전에는 물러날 수 없다. 중간에 빠질 수 있는 섯다를 제외하곤 한번 발을 들여놓은 이상 끝장을 봐야 한다. 승리를 추구하지만 상황이 나쁘면 이기겠다는 것은 뒷전이고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그 판을 마칠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방심할 수 없다.
그러나 카드로 하는 포커는 다르다. 처음 패를 받고 시작할 때도 게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지만 게임 중간에도 자신이 이길 확률이 없고 도저히 더 이상 버티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경우 중간에 패를 접을 수 있다. 중간에 지른 것은 손해지만 그만큼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골프를 라운드를 한번 시작하고 나면 싫으나 좋으나 18홀을 끝내야만 그 판에서 빠질 수 있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골프다. 카드처럼 중도에 포기할 수 있다면 골프는 그야말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재미없는 놀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서양에서 유래된 골프가 동양의 도락인 화투와 닮았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러나 많은 주말골퍼들이 화투가 아닌 카드를 하듯 골프를 한다. 18홀을 벗어나야만 게임이 끝나는데도 몇 홀 지나지 않아 스코어가 엉망이면 중도에 목표와 전의를 상실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플레이한다. 사실상 카드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든 이기든 게임을 끝내고 셈을 하는 화투와 같이 골프에서도 중도포기란 있을 수 없다. 결과 또한 모두 자기 몫이다. 골프를 제대로 하려면 고스톱 하듯 해야 한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