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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탐험(45)-골프와 화투가 닮은 걸 아시나요

2015-02-17 09:42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방민준의 골프탐험(45)- 화투하듯 골프를 하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서양화엔 여백이 없다. 틈이 있으면 미완성이라는 인식에 화면은 모두 물감으로 채워진다. 동양화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여백이 더 많다. 특히 수묵화의 경우 절반 이상이 여백이다. 화면을 꽉 채운 그림보다는 적절한 여백을 남겨둔 그림이 사랑을 받는다.

골프는 그림에 비유하면 동양화다. 4시간 남짓 걸리는 한 라운드에서 골프의 가장 핵심적인 동작인 스윙에 소요되는 시간은 고작 15분을 넘지 않는다. 한 샷을 하기 위한 어드레스에서 피니스 동작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야 10초 이내다. 90타를 치는 사람이라면 한 라운드에 샷을 위해 소모하는 시간은 900초, 즉 15분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15분을 뺀 나머지 시간인 3시간 45분 정도가 여백이란 셈이다. 이 여백의 시간은 잔디 위를 걷고, 코스를 살펴 전략을 세우며, 동반자와 담소를 나누는데 쓰인다. 정작 꼭 필요한 동작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15분밖에 안 걸리는데 여백이 이렇게 많다 보니 온갖 상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다. 골프란 바로 긴 여백의 시간에 몰려드는 상념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골프는 라운드를 한번 시작하고 나면 싫으나 좋으나 18홀을 끝내야만 그 판에서 빠질 수 있다.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골프다. 서양에서 유래된 골프가 동양의 도락인 화투와 닮았다는 게 아이러니다.
이런 면에서 골프는 궁술과 흡사하다. 구기종목이나 격투기, 육상 등은 쉼 없이 움직여야 하지만 궁술은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가 놓는 최소한의 동작을 제외하고는 호흡과 정신집중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궁술의 요체가 호흡안정과 정신집중에 있듯 골프의 승패 또한 스윙에 소요되는 짧은 시간을 제외한 여백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 있다.

도락에 비유하면 골프는 서양식 카드가 아니라 화투다. 도락이란 면에서는 같지만 카드와 화투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화투는 처음 패를 돌리고 나서 게임에 참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순서대로 결정할 수 있다. 한번 참가를 결정한 뒤에는 그 판이 끝나기 전에는 물러날 수 없다. 중간에 빠질 수 있는 섯다를 제외하곤 한번 발을 들여놓은 이상 끝장을 봐야 한다. 승리를 추구하지만 상황이 나쁘면 이기겠다는 것은 뒷전이고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그 판을 마칠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방심할 수 없다.

그러나 카드로 하는 포커는 다르다. 처음 패를 받고 시작할 때도 게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지만 게임 중간에도 자신이 이길 확률이 없고 도저히 더 이상 버티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경우 중간에 패를 접을 수 있다. 중간에 지른 것은 손해지만 그만큼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골프를 라운드를 한번 시작하고 나면 싫으나 좋으나 18홀을 끝내야만 그 판에서 빠질 수 있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골프다. 카드처럼 중도에 포기할 수 있다면 골프는 그야말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재미없는 놀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서양에서 유래된 골프가 동양의 도락인 화투와 닮았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러나 많은 주말골퍼들이 화투가 아닌 카드를 하듯 골프를 한다. 18홀을 벗어나야만 게임이 끝나는데도 몇 홀 지나지 않아 스코어가 엉망이면 중도에 목표와 전의를 상실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플레이한다. 사실상 카드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든 이기든 게임을 끝내고 셈을 하는 화투와 같이 골프에서도 중도포기란 있을 수 없다. 결과 또한 모두 자기 몫이다. 골프를 제대로 하려면 고스톱 하듯 해야 한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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