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복지/증세논쟁이 가열되면서 한국의 복지수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야당 등 정치권은 복지수준을 무조건 올려야 한다고 하며 그 재원은 부자나 대기업증세를 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인기영합적 선동이며, 지속가능하지 않은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복지성숙도와 소득수준을 고려한 한국의 복지와 국민부담율은 현재의 제도로도 20년 뒤에는 재정 절벽, 재정 파국을 초래할 수준이다. 자유경제원은 지난 17일 국제비교를 통해 현재 한국의 복지수준을 점검하고, 구조적인 개혁 방향을 묻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아래 글은 토론자로 참석한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
우리사회에 복지 축소냐 증세냐의 논쟁이 뜨겁다. 오정근 교수님의 발제문은 객관적인 팩트에 근거하여 논쟁에 대한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오정근 교수님께서는 우리나라의 복지제도에 대한 정성적 분석과 국제 비교를 통한 정량적 분석, 재정지속가능성 분석을 기반으로 “현재의 (복지)제도로도 20여 년 뒤에는 중부담 고복지 수준으로...재정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세금을 늘리기 보다는 복지개혁이 필요한 실정”임을 지적하고 있다. ‘팩트’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린 것으로 내용과 결론에 모두 동의한다.
본 토론은 오정근 교수님께서 강조하신 ‘복지개혁’에 동의하면서 지면 관계상 ‘복지개혁’의 내용과 방향이 충분히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추가적으로 ‘복지개혁’은 어떤 원칙과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겠다. 사실 대통령 지지율이 30%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정부 부처에서 증세 방안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고 기존 복지를 축소하는 방안을 내놓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정치인들도 나라를 재정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복지 확대를 무조건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당의 경우 정치적 제약 때문에 복지 구조조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흙탕’ 상황에 직면하고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 역시 복지 저항과 표 떨어지는 소리 때문에 어느 부분도 손을 대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에게 국민 설득을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복지 구조조정의 대원칙은 복지 지출은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돼야 하고 복지의 내용은 경제 성장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지속가능해야 한다. 보편 복지에서 선별 복지로 바뀌되 복지 내용과 수준 역시 경제 성장이 지속가능한 범위 이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줄여야 할 항목은 무상보육,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기초(노령)연금이다.
▲ 자유경제원이 17일 주최한 <국제비교를 통해 본 한국의 복지수준, 감당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
다음으로 ‘복지개혁’의 방안 마련을 위한 소원칙 몇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복지개혁’은 복지의 기본으로 돌아가 한다. 그리고 원칙에 충실한 복지로 재편해야 한다. 복지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해 상호 부조하여 돕고, 어려움을 속히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소득층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장애인 복지 등 취약계층을 위한 공적부조는 계속되어야 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기간의 긴급 지원이어야 하며, 중소기업 취업 시 받을 수 있는 임금보다 적어야 한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취업 등으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이 함께 수반되어 탈수급율을 높여 나가야 한다.
이러한 복지 원칙에 근거한다면 현재 시행하고 있는 말 그대로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무차별’ 보편 복지는 복지의 원칙에 어긋나므로 ‘복지개혁’ 과정에서 과감히 축소되거나 일몰 폐지되어야 한다. 폐기 되어야할 보편 복지의 성격을 가진 대표적인 예로 무상급식이 있다. 무상급식의 폐해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무상급식 때문에 교육시설 투자가 부실해지고 원어민 교사 채용 등 꼭 필요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은 진정 심각한 문제로 외면되어서는 안 된다. 단기적인 대안으로 소득 하위 30%는 무상으로 급식할 수 있으나 어려서부터 ‘공짜’ 밥을 먹는 거지근성을 키울 수 있으므로 적은 비용이라도 지불하게 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상위 70%는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급식을 먹음은 물론이다. 무상급식은 다른 복지에 비하여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문제를 떠나 국가가 주는 공짜 밥이 아니라 부모님의 신성한 노동으로 인해 자신이 밥을 먹고 있음을 초중고등 학생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원칙이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게 해야 한다.
둘째, 앞으로 진행될 ‘복지개혁’에서 정치권의 포퓰리즘 공약에 의해 만들어진 복지들은 축소되고 궁극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 포퓰리즘 복지의 첫 번째 예는 기초(노령)연금과 무상보육이다. 2012년 대선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 모두 약속한 복지이다. 현재는 “무조건 20만원씩 드립니다” 공약보다는 축소되었지만 만 65세 이상의 소득 하위 70%의 노인들이 수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초연금의 예산은 2015년 10.0조 원, 2016년 10.8조 원, 2017년 11.4조 원으로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예산이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도덕적인 것으로 ‘연금’이라는 명칭이다. 수혜 대상자들이 젊어서 ‘연금’을 낸 적이 없는데 ‘연금’이라는 명목으로 국가가 ‘공짜로’ 주고 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듯이 세상에 공짜가 ‘법적으로’ 성행하면 잘 될 나라가 없다. 노인들 표를 구매하기 위해 만들었던 공약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여·야 정치권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관성적으로 복지공약을 쏟아내고 표를 구걸하였다.
국민은 공짜 복지를 받고 정치권은 표를 받는 이러한 포퓰리즘 공약은 윤리적으로 ‘국민들을 공짜에 기대는 거지근성을 키운다’는 의미에서 ‘사회부조’의 차원 정도로 축소되어야 하고 결국은 폐지되어야 한다. 2012년 대선 당시 언론과 학자들이 “이대로는 나라 곳간 거덜 난다”고 비판했지만 ‘경기 활성화와 지하경제 양성화’로 재원을 마련한다며 새누리당은 무시했었다. 선거의 승리에 눈이 멀어 정치권은 무리한 약속을 했고, 공짜에 눈먼 국민 역시 동조하여 포를 주었다. 선거를 매개로한 민주주의의 정치실패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할 때 우리는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타락은 이미 그리스 민주주의에서 나타났었고 현대의 선거민주주의, 대중민주주의에서 예정된 것이었다.
▲ 자유경제원이 17일 주최한 <국제비교를 통해 본 한국의 복지수준, 감당 가능한가> 토론회 전경 |
또 폐지되어야 할 포퓰리즘 공약은 대학 ‘반값 등록금’이다. 초등교육은 모든 교육의 기본이며 가장 중요하고, 중고등 교육의 중등교육은 대학교육과 대학원 교육을 포함하는 고등교육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무상교육의 실시는 초등, 중등, 고등교육의 순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반값(무상)등록금 복지정책은 중등교육인 고등학교 교육이 무상교육이 실시되기 전에 실시되고 있다.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도 평등하게 대학교육을 받게 한다는 취지이지만 왜 비용도 적고 기간도 짧은 고등학교가 먼저 무상교육이 되기도 전에 대학교육이 반값 무상교육이 되어야하는지 그리고 왜 반값만 무상이어야 하는지 설명이 가능하지 않다.
대학 반값등록금은 우선 순위가 잘못된 복지정책이다. 2015년 3.9조 원의 예산이 편성 되어 있는데 이는 무상급식 비용 2.6조 원보다도 많은 액수이다. 대학의 반값등록금 부담까지 포함한다면 반값등록금은 사회적으로 7조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그런데 대학 반값등록금은 간단히 이야기 하면 대학생이 투표권이 있어서 고등학교 무상교육보다 먼저 받은 복지수혜다. 표를 매개로 한 타락한 복지포퓰리즘의 전형이다.
OECD 국가들의 대학진학율을 본다면 우리나라는 최근 80%가 넘고 독일이 39%, 미국이 40% 정도이다. 문제는 대학진학율을 떨어 뜨려 일자리와 교육수준의 미스 매칭을 해소하여 청년실업율을 낮추는 정책을 펴야 하는 정부가 거꾸로 대학 반값등록금으로 대학진학율을 높여가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취업이 되지 않아 졸업자의 다수가 아르바이트 비 88만원으로 생활한다고 해서 ‘88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는데 정권은 반값 무상(공짜) 등록금으로 사회 불만을 키우는 정책을 펴고 있다. 나아가 선거 때의 표를 얻는 달콤함 때문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비용이 없어 결혼하지 못하게 되고, 결혼을 하지 않으니 출산율이 떨어지고 유아는 적고 노인만 많은 기형적인 인구구조를 만들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낮추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결과하고 있다.
대학 반값등록금은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융자해주는 한국장학재단의 대출 부실도 사회문제화 하고 있고 점차 더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취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등록금에서 생활비까지 빌려준 한국장학재단의 대출을 갚을 수 없을 것이고, 정치인들은 곧 이자 탕감 그리고 나서 원금 탕감에 나설 것으로 예측한다. 여·야 정치인들은 이미 2014년 군대 복무 시에는 한국장학재단 이자를 면제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2014년 9월 한국장학재단은 2만여 명의 대학생 부실 채권을 국민행복기금에 떠넘겼다. 전문기술을 배워 대학에 진학할 필요가 없이도 취업하여 사회에 기여해야 할 인력을 대학 반값등록금이라는 복지제도를 통해 무리하게 대학에 진학하게 하고, 공짜로 대학을 다니게 하고, 국가가 등록금을 주었으니 이제 취업까지 책임지라는 요구를 받게 되는 현실을 가져온 것이다.
반값등록금은 정치적으로 계속할 수 있으나 도덕적으로 국가가 할 일은 아니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제안한 ‘대학 등록금 후불제’도 동일하다. 등록금 후불제를 시행하면 몇 년 뒤에는 빚 탕감을 애원하게 되고 결국 갚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반값등록금으로 선거에서 표를 얻은 정책은 미래의 국가실패로 이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앞으로 ‘복지개혁’이 이루어질 경우 고려해야할 세 번째 원칙은 항상 정치인들의 ‘입’을 주목해서 대비해야 것이며 또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복지 지출을 대비하라는 것이다. 국가예산처의 ‘2014~2060년 장기재정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30년 58.0%로 높아지고, 35년 뒤인 2050년에 121.3%까지 증가할 것을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 재정위기가 시작된 2009년 국가채무 비율 115%에 비추어 본다면 2050년 정도에 대한민국이 재정위기 국가에 들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오정근 교수님은 발제문에서 현재의 복지수준으로도 20여 년 뒤에는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인한 재정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전망일 뿐이고 실제는 정치인들이 선거에 득표 수단으로 새로운 복지 수혜층과 복지 아이템을 발굴하여 법으로 만들어 시행하면 재정위기가 닥치는 시기는 앞으로 20~30년에서 언제든지 더 당겨질 수 있다. 2010년 재정위기를 맞은 그리스의 경우 10년 전 또는 20년 전 앞으로 닥칠 재정위기를 예상했던 학자를 본인은 과문해서 알지 못한다.
또한 10년 또는 20년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북한 붕괴나 변고로 인한 남북한 통일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단순 예측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서독은 동서독 통일 이후 통일비용 지출에 따른 경제적 여파로 10년이 넘게 경제가 흔들렸다. 서독의 경제력과 경쟁력 덕분에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표> 1989~2007년간 통일 독일의 GDP 성장률 변화추이 참조)
▲ 1989~2007년간 통일 독일의 GDP 성장률 변화추이 (경상가격 기준) |
1:4의 동서독 경제격차가 그러할진대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남북한 1:10 이상의 경제격차로는 통일 이후 5년 정도만 되어도 각종 통일비용 지출 때문에 쉽게 재정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예측한다. 남북한 통일이 ‘대박’을 가져올 것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은 희망에 근거한 낙관적 주장일 뿐 근거를 찾기 힘들다. 남북한 통일이 되었다고 북한의 구매력이 큰 것도 아니고 시장성이 높은 것도 아닌데 세계의 자본이 중국이나 동남아, 인도 등을 제쳐두고 통일된 북한 지역에 투자해야할 이유는 없다. 통일이 되고 나서 북한지역의 주민들은 과거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시절 받았던 ‘무상’의 모든 것을 통일된 대한민국에 요구할 것임은 동독의 사례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동일한 통일의 국민인데 남한주민이 받는 복지를 북한 거주 주민이 받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더 가난하고 시급한 복지 대상이 북한 거주 주민이라는 논리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것이 현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남북한 통일을 고려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 맞이할 재정위기 예측은 커다란 중요 변수를 생략한 단순한 예측일 뿐이다. 예를 들어 독일정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1991년~2005년까지 15년간 지출된 통일비용은 총 1조 4,000억 유로(1995년 환율로 2조7,020억 도이치마르크, 한화로 약 1,750조 원)로 연 평균 933억 유로가 통일비용으로 지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 주목해야할 문제는 통일 비용의 내용이다. 동서독 통일의 경우 통일비용의 대부분이 예상과는 달리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아니라 동독주민 실업급여 등 소비성 복지지출이 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남북한 통일이라는 변수를 고려한다면 현재 우리의 복지지출 예측은 힘없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통일 이후 국방비 지출이 줄어들 것을 주장하겠지만 중국, 러시아와의 갈등 가능성과 그에 따른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고려한다면 통일 이후에도 현재 북한을 막아내는 국방비 이상의 국방비 지출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오정근 교수가 발제문을 통해 주장한 “OECD 평균 4만 달러의 복지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아래인 2만5천 달러의 우리 수준에 맞는 복지를 해야한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그 수준으로 복지를 실현하되 절대로 (국채로) 빚을 내어 복지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하다고 국채로 빚을 내어 복지에 사용하고 부담은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은 윤리·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그리고 부자 증세나 대기업 증세로 복지를 유지하고 추가한다면 그것은 경제성장률을 더욱 떨어드리고, 국가재정은 더 심하게 망가지고, 국가 신용도를 떨어뜨려 그리스와 같은 파산의 길로 들어서게 할 것이다.
국민과 정치인들은 이를 반드시 인식해서 하루 빨리 복지포퓰리즘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살길은 지긋지긋한 복지 논쟁을 멈추고 성장을 향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성장 없는 복지는 사상누각이고 성장이 곧 복지임은 만고의 진리이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