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시완 범죄심리학자 |
촉법소년에 대한 보호처분에는 보호자위탁, 아동복지시설 위탁, 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등이 있다. 그나마 보호처분 중 가장 강력한 소년원 송치 처분이 내려졌으므로 안도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더욱 강력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재차 엄벌주의를 강변해야 하는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므로 우리 사회가 아이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더 이상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게다.
아이가 저지른 범죄행위를 신문 기사를 참고해 요약해 보았다.
“2008년경 A군의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A군과 남동생을 홀로 키우던 아버지도 2010년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척들은 A군과 동생의 거취를 어떻게 할지 가족회의를 열었고, A군과 동생은 고모 내외가 돌보기로 했다. A군은 고모 내외의 보살핌을 받으며 2014년 초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A군은 학교를 잘 나가지 않았다. 학교에 나가지 않을 때면 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고모 내외는 그런 A군에게 훈계를 했지만 A군은 더욱 반감만 가졌다. A군이 중학교에서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부가 돌연 사망했고, 그 이후 A군은 더욱 통제하기 어려워졌다.
사건 당일에도 A군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컴퓨터 앞에 앉은 A군은 저녁시간을 훌쩍 넘긴 밤 9시까지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게임에 몰두하는 A군을 나무라자 A군이 갑자기 고모에게 달려들었다. 키가 170cm로 또래에 비해 덩치가 컸던 A군에게 고모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모는 A군에게 목이 졸려 질식사했다. A군은 고모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자신의 남동생을 폭행하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생은 ‘못본 것으로 하겠다. 앞으로 말 잘 듣겠다’며 애원하였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A군은 범행 직후 고모의 휴대전화로 고모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여행을 간다. 나를 찾지 말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자메시지를 받은 지인 중 한 명이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하면서 A군의 범행은 발각되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A군을 임의동행해 조사를 벌인 뒤 형사처벌할 수 없는 촉법소년임을 고려해 대구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했다.
우리는 A군의 살인범행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A군이 범행을 자백하였기에 망정이지 범행을 부인하였다면 경찰은 더 이상 수사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촉법소년의 경우 긴급체포나 구속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가 난항을 겪었을 수도 있다.
사건 발생 직후 촉법소년에 대한 형사불처벌주의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이 비등하고 있다. 강기윤 새누리당 의원은 2012년 12월 형사미성년자 기준연령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2세 미만으로 낮추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김상민 의원은 2013년 11월 촉법소년 기준을 만 12세 미만으로 낮추는 소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 의원들은 법제정 당시와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면서, 형법이 제정된 1951년(소년법상 촉법소년은 1963년 규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소년들의 정신적·육체적 성장이 빨라졌다고 주장한다.
촉범소년 범죄의 심각성은 통계자료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11-2012년 촉법소년의 범죄는 2만2490건이고 이 중 93%를 12-13세(초등 6학년-중학 1, 2학년)가 저지르며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도 636건에 달한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소년범죄자 10만7490명 중 초범은 5만2747명(52.6%)으로, 2011년 초범 소년범이 전체의 54.2%, 2010년에는 56.6%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점차 소년범죄 재범률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과 5범 이상인 소년범도 12.2%에 달했다. 소년범의 죄질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통계치도 있다. 2012년 살인·강도·방화·강간 등 강력범죄를 일으킨 소년범은 3107명에 달했다. 2007년에는 1928명이었는데 5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늘었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엔 아동인권위원회는 형사책임연령을 ‘12세 이하’로 낮추지 말고,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국제적 용인 수준으로 상향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2004년에서 2010년 사이에 만 14세 미만으로 형사책임연령을 낮춘 나라는 3개국에 불과한 반면 만 14세 이상으로 높인 나라는 11개국에 달한다며 촉법소년 연령 기준 하향은 형사미성년 연령을 높이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도 반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들은 소년범죄가 가정불화나 가난 등 환경적인 요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범죄책임을 어린 소년들에게만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처벌 강화보다는 소년범죄 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들은 형사처벌로 인한 낙인효과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반문한다.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공식통계를 통한 소년범죄의 부정적 이미지화, 즉 저연령화·흉폭화·심각화와 같은 막연한 추정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년범에 있어 강력범 증가세는 최근 들어 점차 완화되고 있으며 강력범죄율이 14세 수준을 유지하거나 감소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 영화 ‘범죄소년’은 소년원을 드나들던 범죄소년이 13년 만에 찾아온 엄마와 재회하면서 감춰져 있던 냉혹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사진은'범죄소년'의 한 장면으로 특정 기사와 관련없음./뉴시스 |
그러나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들 주장에 따르면, 촉법소년 수는 늘고 있는데, 촉법소년에 대한 사회적 제재는 약한 편이라고 한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가정법원이 촉법소년에게 내린 보호처분 중 절반이 넘는 51.8%는 보호자와 함께 가정에 머물라는 1호 처분이며, 소년원에 송치되는 8·9·10호 처분은 0.4%에 불과했다고 한다. 또한 촉법소년이 ‘범죄소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에서 촉법소년 범죄는 그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한편,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봉수 교수는 “연령에 따른 획일적 적용보다는 사안과 죄질에 따라 처벌수위를 탄력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촉법소년이라 하더라도 형사처벌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며 소년 범죄의 흉폭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하자는 절충적 견해를 주장하였다.
김교수는 최근 소년범죄는 성인범죄와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것이 많다며 온정주의와 관용주의가 반드시 소년을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다만, 그는 죄질에 따라 차별화된 기준을 정립할 것을 강조하면서 최소한 10세 이상 19세 미만의 소년범에 대해서는 연령에 따른 구분을 폐지하고, 죄질에 따라 형벌 부과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년범죄 전문가인 한영선 서울소년원장은 1998년에 소년분류심사원에 입원했던 소년 3102명에 대해 12년간 기록을 조사, 연구했다. 소년분류심사원은 가정법원 소년부가 보호소년을 분류하거나 상담해 줄 것을 의뢰하는 경우나, 보호소년을 임시로 유치할 것을 결정할 경우 소년을 수용한다. 3000여명의 소년 중 청소년기가 끝나자 범죄를 중단한 ‘청소년기 한정 범죄자’가 74.1%(2298명)로 제일 많았다.
‘평생지속형 범죄자’는 6.7%에 그쳤고, 평생지속형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잠정적 범죄중단자’는 19.2%였다. 한 원장은 범죄를 중단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평생지속형 범죄자가 더 나오지 않도록 적극적인 교정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친구와 만나는 시간이 일주일당 20시간에서 10시간으로 줄어들거나, 동네친구에서 직장친구 등으로 안정적인 관계로 변화하면 범죄를 중단할 가능성이 41.6%로 높아진다는 것이 한원장의 연구결과이다.
한원장은 촉법소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연령을 낮추거나 높여 처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범죄 재발 가능성, 범죄 중단 가능성 등을 정확하게 평가해 성인이 돼서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소년들을 집중적으로 교정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언론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중앙일보 2014.12.17.자 사설(「열세 살 범죄자, 소년원 보낸다고 해결되나」)에서는 소년범죄의 흉포화나 재범률의 증가 등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형사처벌을 통한 엄벌주의에 대해서는 경계를 하였다. 동 사설은 “연령을 낮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어린 나이에 교도소에 수감되면 그 안에서 범죄를 배워 더 흉폭한 범죄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대부분의 나라는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우리나라와 같거나 높게 정하고 있다.(중략).. 그러나 형식적인 소년원 송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년원에서 교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재범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호처분과 함께 정신의학적 방식까지 포함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한다. 소년범들이 정상적인 가정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죄를 뉘우칠 수 있도록 교화하는 ‘사법형 그룹홈’을 확대하는 것도 대안 중 하나로 검토할 만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간조선 2014.08.25.자 기사(「범죄성인 키우는 ‘촉법소년’ 방치」) 역시 찬반 견해를 모두 실어주면서도 형사책임연령을 낮추어 단순 엄벌주의로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다른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교화·개선에 치중할 필요성이 더 크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언론의 입장도 유사하다.
형사책임 연령을 만 14세로 둔 것은 독일법과 일본법의 영향이 크다. 영미권은 더 낮은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만 10세를 기준으로 하고(공식 자료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미국의 경우 형사책임연령이 만 6-7세 정도라고 보도한 신문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캐나다는 만 12세, 프랑스는 만 13세로 더 낮은 연령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재판소는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만 14세 기준, 핀란드, 스웨덴 등의 만 15세 기준 등을 들면서 형사미성년자 연령기준이 외국의 입법례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높지 않다며 2003년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할 순서다. 촉법소년의 범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필자로서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엄벌주의로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게 되면 전과자가 되어 사회로 쏟아져 나올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어떤 것을 해줄 수 있을지. 낙인의 효과가 심할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교정정책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역을 전제한 구금형마저 제도화된다면 그 부정적 효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엄벌주의의 위하력이 청소년들의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촉법소년의 범죄를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문제다. 필자의 결론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최근 비행청소년들을 바라보는 타성적 시각에 경종을 울리는 국내 판사가 있어 그의 얘기로써 글을 마무리해 볼까 한다. 부산지방법원 소년부 천종호 부장판사에 대한 언론 인터뷰 내용이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은 아직 너무 어리숙하고 미숙한 존재며,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한 관심만 가져준다면 인생이 바뀌고 새사람이 될 것입니다. 또 소년정책은 단기가 아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 봐야하는 만큼 꿈을 가진 건강한 아이, 바른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합니다”
필자는 인터뷰 내용에서 세 가지 단어에 주목하려 한다. 미숙한 존재. 장기적. 관심. 범죄소년을 용서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아직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회성 처벌과 훈계만으로 아이들을 계도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진심어린 관심이 아닐까. 비행청소년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진지한 관심 그것이 절실하다. 고모를 살해한 저 13세 아이가 2년 후 소년원을 나올 때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도 바로 그것이다. /성시완 범죄심리학자, 범죄학 박사, 죄와벌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