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보석 같은 첫사랑을 안고 겨우내 열병을 앓았던 골퍼들에게 정작 봄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한 겨울이라고 골프코스를 완전 외면하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봄의 들판에서 하는 골프가 진짜 골프라고 생각하는 골퍼들에게 봄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봄의 시작이라고 할 3월쯤에 필드를 찾은 골퍼들 치고 만족한 라운드를 했다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큰 기대와 부푼 꿈을 안고 봄기운이 감도는 골프코스를 찾지만 18홀을 끝내고 장갑을 벗을 땐 십중팔구 가장 높은 강도의 절망과 좌절, 심한 경우 멘탈 붕괴에 빠지고 만다.
봄의 들판을 찾는 골퍼들은 철저하게 지난 겨울, 연습장에서 쏟은 시간과 땀을 잊어야 한다. 연습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마음을 완전히 지울 수야 없겠지만 되도록 기대를 낮게 잡을수록 만족한 라운드를 돌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 할 필요가 있다. 삽화=방민준 |
별 뾰족한 수는 없다.
봄의 들판을 찾는 골퍼들은 철저하게 지난겨울, 연습장에서 쏟은 시간과 땀을 잊어야 한다. 연습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마음을 완전히 지울 수야 없겠지만 되도록 기대를 낮게 잡을수록 만족한 라운드를 돌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둘 필요가 있다.
겨우내 골프채와 친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아예 좋았던 시절의 스코어는 지워버리고 초보자의 마음으로 봄을 맞이해야 울화통이 터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기대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기고만장 할 일도 아니고 골프채를 내던지고 싶은 좌절을 맛봤다고 우울에 빠질 이유도 없다. 누구에든 골프기량은 파도를 치면서 완만한 상승 또는 하강 곡선을 그리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할 봄의 라운드도 그 많은 물결 중 한 번의 출렁임에 지나지 않음을 생각하면 담담하게 라운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봄이 골퍼들에게 유별나게 잔인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봄을 제대로 맞는 골퍼의 이상적 태도는 겸손이 아닐까. 큰 기대 없이, 욕심도 비우고 그냥 봄놀이나 하자는 겸허한 마음을 놓지만 않는다면 비로소 필드에서 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연히 마주친 정호승 시인의 시가 절묘하게 봄을 맞는 골퍼의 자세를 일깨워주기에 소개한다.
- 꽃을 보려면 -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