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델타 변이형이 우세종으로 자리를 잡은 가운데 코로나19의 초장기화로 풍전등화 상태의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재무 구조 개선·운영 자금 확보 차원에서 자체적인 자금 조달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에어부산·제주항공·진에어는 차례로 유상증자를 준비하고 있다.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 첫 주자인 에어부산의 유상증자 흥행에는 적신호가 켜져 나머지 회사들도 표정 관리에 돌입했다.
11일 여의도 증권가에 따르면 에어부산 신주 인수권(에어부산5R)은 상장 첫날인 지난 3일 거래를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종목은 지난 9일 첫 거래날 종가 296원 대비 33.4% 하락한 197원에 마감했다. 9일 종가는 8일보다 12.44%나 급격히 떨어졌다.
에어부산은 오는 17일부터 유상증자를 실시하며, 에어부산5R은 입장권이라고 볼 수 있다. 에어부산 주주들은 지난달 18일 기준 이에 따라 주당 1대 1.2964239525의 비율로 신주 인수권을 받았다. 100주를 갖고 있었다면 에어부산5R 129주를 갖게 됐을 것이라는 설명이 된다.
에어부산5R는 장내 거래가 자유로운 만큼 신주 인수권은 누구나 매수할 수 있고, 유상증자 참여 권리도 획득할 수 있다. 주주들은 주당 197원에 거래되는 에어부산5R을 시장가에 내놓을지,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가 주당 예상 발행가액인 2150원을 내고 유상증자에 참여할지 양자택일할 수 있다.
유상증자 참여 의사가 없다면 주주들은 에어부산5R 상장폐지일인 10일까지 시장에 내다팔았어야 한다. 신주 인수권을 들고 있는 채로 유상증자에 불참하면 가치는 그대로 소각된다.
신주 인수권 가격 하락은 유상증자 권리를 포기해 대량 매도하는 주주들이 상당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경우에 따라 유상증자 이후 주가가 오를 것으로 기대되는 종목은 신주 인수권 가격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기도 하는데 에어부산은 하방 곡선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에어부산의 주가가 곤두박질침에 따라 신주 인수권으로 살 수 있는 신주 가격과 구주 가격 간 차이 역시 크지 않다. 에어부산5R의 1차 발행가는 주당 2150원이다.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투자자는 주당 2150원에 주식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가령 에어부산5R의 최종 종가가 200원이면 2350원(발행가액+신주 인수권 가격)에 한 주를 갖게 되는 셈이다.
통상 발행가액은 일정 기간 거래 금액 평균 대비 15~20%가량 할인된 수준에서 결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저가 매수가 가능하다고 가정해도 에어부산의 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이면 구태여 신주 인수권을 보유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주당 197원의 차익이라도 실현하며 신주 인수권을 내다파는 게 오히려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유상증자 신주발행가액 안내공시./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에어부산 종목 캡처
발행가액 자체가 낮아지면 당초 에어부산이 조달하고자 한 절대적인 액수도 줄어든다. 따라서 경영난 타개책이 어그러질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오는 14일 기준 에어부산의 2차 발행가액은 최근 거래가 평균을 내 재차 산정한다. 확정 발행가액은 1차 발행가액과 2차 발행가액 둘 중 더 낮은 가액으로 결정된다. 이와 같은 연유로 현재 대비 주가가 추가 하락하게 되면 2차 발행가액으로 정해질 공산이 크다.
에어부산은 1차 발행가액 기준 총 1억1185만주를 발행해 총 2404억7750만원을 수혈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이보다 못한 금액을 조달하게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주주들이 이처럼 신주 인수권을 내던지는 것은 화물 운송을 하지 못하는 LCC 업계가 활력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공포감이 엄습해서다.
이와 같이 에어부산이 유상증자에서 약세를 보임에 따라 제주항공과 진에어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 역시 줄줄이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제주항공은 지난 6일 기준 자사 주주들에게 신주 인수권을 준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주주들은 오는 30일부터 내달 8일까지 신주 인수권을 장내 거래할 수 있고, 이로써 다음달 18·19일 양일 간 기존 주주들은 유상증자에 참여할 권리를 갖게 된다.
제주항공은 예상 발행가액인 1만8350원을 기준으로 총 1126만53주를 새로이 상장해 총 2066억2197만2550원을 조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애경그룹 지주회사 AK홀딩스는 제주항공 지분 상당량을 담보로 NH투자증권에서 400억원을 대출받아 제주항공 유상증자 참여를 결정했다.
1834억원을 수혈키로 한 진에어는 이달 24일까지 자사 주식을 보유하는 주주에게 신주 인수권을 부여한다. 신주 인수권 거래일은 내달 18일부터 25일까지다. 아울러 유상증자 청약은 11월 1일부터 이틀 동안 이뤄진다.
진에어는 예상 발행가액 1만5050원 기준 총 720만주를 신규 상장함으로써 1083억6000만원을 외부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은 496억원을 투입한다.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유상증자는 경영상 필요한 필요한 요소를 다 감안해서 액수를 정한 것"이라며 "말이 쉽지,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실권이 나는 것인 만큼 차입이 가장 편리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에어부산이 유상증자 흥행 참패를 받아들게 된다면 이는 시장이 LCC 업계 전반에 대한 신뢰를 저버렸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백신 효과가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 의구심이 들고 트래블 버블 지연 탓에 업황 회복이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라고 비관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교수는 "정부 당국은 전 국민에게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정작 고용 유지를 담당하는 기업들에게는 유독 인색한 모습을 보인다"며 "3월부터 2000억원을 지원하겠다던 금융위원회는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허 교수는 "카슈텐 슈포르 루프트한자 대표이사는 코로나19 위기가 걷히면 항공사 간 합병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며 "국내에서 역시 상환 도중 디폴트를 선언하는 곳이 생겨나 시장 재편이 수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