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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원장 고전특강(53)-사랑싸움이 부른 헤라클레스의 참혹한 죽음

2015-02-28 13:4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53)- 여인의 질투에 희생된 무적의 헤라클레스
소포클레스(BC 496 ~ BC 406)의 <트라키스의 여인들>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그리스 최고의 영웅은 단연 헤라클레스(Hercules)이다. 그리스 역사상 헤라클레스가 12 고역(苦役)을 치러내면서 보여준 무적의 용맹과 활약상을 능가할 영웅은 없다. 헤라클레스가 서구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의 영역에 다가갈 만큼 인간의 아레테(arete, 탁월성)를 무한하게 확장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인간 스토리가 신화가 되고 그가 사후에 신으로 숭배된 이유다.

물론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암피트리온이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제우스와 동침하여 그를 낳았다고 하니 헤라클레스는 태어나면서부터 반신(半神)을 숭상되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정실부인 헤라의 질투와 술책으로 평생 숱한 곤경을 치렀다. 원래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은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이 또한 태생적으로 헤라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조금이라도 완화시켜 보려는 의도에서 지어진 이름일 듯싶다.

   
▲ 헤라클레스 청동 조각상이다. 왼팔 겨드랑이에 기대고 있는 것이 헤라클레스의 상징물인 올리브 몽둥이와 사자가죽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박경귀

   
▲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주도인 팔레르모에 있는 노르만 왕궁의 ‘헤라클레스의 방’에 그려진 헤라클레스의 12 고역의 그림 가운데 하나. 일곱 번째 과업으로 크레타의 황소를 사로잡는 헤라클레스 ⓒ박경귀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무적의 용사였지만 역시 필멸(必滅)의 인간이었다. 또 분노를 자제할 줄 모르고 광폭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곤 하는 정신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그래도 헤라클레스는 여복(女福)이 넘친 영웅이었다. 그는 숱한 여인을 취해 여기저기에 자손을 번성시켰다. 물론 거의 비공식적 결합에 의한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공식적인 첫 번째 아내는 테베의 공주 메가라였다. 테베가 해마다 공물을 바쳤던 이웃나라 오르코메노스 왕을 헤라클레스가 물리친 공로로 테베의 왕 크레온의 사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헤라의 저주로 헤라클레스는 실성해서 아내와 자식들을 죽이게 된다(자식들만 죽이고 아내 메가라는 버렸다는 설도 있다). 이로 인해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죄를 정화 받기 위해 신탁에 의해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Eurysteus)가 부과한 12고역을 수행해야 했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리스테우스를 12년 동안 섬기면서 그가 부과하는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불사(不死)의 몸이 될 것이라는 델피의 신탁(神託)을 굳게 믿었다. 하지만 12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에도 불사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역시 인간의 필멸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튼 헤라클레스는 아내 메가라를 잃고 나서 두 번째 아내를 찾아 나섰다. 이후 그는 아이톨리아의 왕 오이네이스의 딸 데이아네이라와 결혼하게 된다. 물론 그 후에도 그의 방랑벽과 여색은 계속된다. 여기에는 헤라클레스의 용력을 활용하려는 사람들의 유혹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오이칼리아의 왕 에우뤼토스는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네 아들들과 활쏘기 시합을 해서 이길 경우 자신의 딸 이올레 공주와 결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누가 헤라클레스를 당할 수 있겠는가. 헤라클레스는 당연히 네 왕자를 이겼다. 하지만 에우뤼토스는 헤라클레스가 아내와 자식을 죽였다는 소문을 듣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자칫 헤라클레스의 광기가 도져 언제 자신의 딸과 자식들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리라.

헤라클레스는 에우뤼토스가 자신을 불신하고 사위로 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무력행사를 한다. 에우뤼토스의 아들 이피토스를 죽인 것이다. 이로 인해 헤라클레스와 그의 가족은 트라키스로 추방된다.

이 작품 <트라키스의 여인들>에서는 이 이후부터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보이아 섬에서 포로로 끌려 다니던 에우뤼토스의 딸 이올레를 찾아 첩으로 삼는다. 결국 에우뤼토스가 지키지 않은 결혼 약속을 스스로 쟁취한 셈이다. 하지만 이미 헤라클레스는 두 번째 아내가 있는 몸이었으니 이올레와 정식 결혼을 할 수는 없었다. 이올레를 첩으로 삼은 이 사건은 헤라클레스의 파멸의 단초가 된다. 헤라클레스는 전령과 함께 이올레를 집으로 보내며 아내 데이아네이라에게 이올레를 돌봐줄 것을 부탁한다.

정실아내 데이아네이라에게 첩을 부탁한 헤라클레스가 너무 순진했다. 우리 속담에 ‘시앗싸움엔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두 여인 간의 필연적 불화를 헤라클레스는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여인의 질투 앞에 천하무적인 헤라클레스가 어이없이 무너져 버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이올레에게 빼앗길 것을 염려한 데이아네이라의 의도하지 않은 실수는 헤라클레스의 운명을 가른다. 그녀는 헤라클레스가 자신에 대한 사랑이 타오르도록 미약(媚藥)을 쓰게 된다. 오래전에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켄타우로스 넷소스가 강을 건너게 해주는 와중에 데이아네이라를 범하려다 헤라클레스의 활에 맞아 죽는 사건이 있었다. 그 때 넷소스는 죽어가면서 데이아네이라에게 남편의 사랑을 북돋울 때 쓰라며 자신의 피가 엉겨 붙은 옷을 전달해 준 것이 있었다. 데이아네이라는 이올레에게 빼앗긴 사랑을 되찾기 위해 헤라클레스에게 이 미약을 사용한 것이다.

데이아네이라는 어리석었다. 데이라네이라를 겁탈하려다 미수(未遂)에 그친 야수 넷소스는 자신에게 독화살을 맞춰 죽게 한 헤라클레스를 저주하기 위해 자신의 피 묻은 옷을 전해준 것이다. 그런데도 데이아네이라는 이것을 사랑의 미약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원한을 품고 죽어가는 사람의 말을 진실로 믿는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사랑을 빼앗긴 여인 데이아네이라의 분노와 질투심이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여지를 날려버렸던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데이아네이라가 보낸 ‘사랑의 옷’을 전령에게서 받아 입자, 살갗이 타들어가는 고통으로 몸부림치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스스로 목숨을 거두길 원한다. 아들 휠로스에게 자신을 오이테 산의 정상으로 데려가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게 한다. 휠로스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안락사 시키게 된다. 희대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적의 칼날도, 괴수의 이빨도 아닌 불타는 장작더미에 의해 데이아네이라를 저주하며 끔찍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넷소스의 옷에 엉겨 붙어 있던 피는 헤라클레스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랑의 묘약이 아니라,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독약이 되었던 것이다. 뒤늦게 저주의 피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걸 알고 데이아네이라는 자책과 비탄으로 괴로워하다 자신의 옆구리를 칼로 찔러 자살한다.

   
▲ 극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불태워 죽기 위해 장작더미 위에 올라앉은 헤라클레스.
데이아네이라와 헤라클레스의 죽음의 원인은 어디에서 발원한 것일까? 헤라클레스의 멈출 줄 모르는 여색 때문일까? 아니면 사랑의 소유욕에 눈이 먼 한 여인의 어리석음 때문일까? 소포클레스는 “그대들은 이 집에서 방금 끔찍한 죽음과 온갖 이상한 고통을 보았어요. 하지만 그중에 제우스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할 뿐이다. 결국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에 의해 잔혹한 비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영웅의 죽음 치고는 불명예스럽고 치욕스런 모습을 남겼다. 무적의 영웅도 여인의 시샘과 저주라는 날카로운 비수는 피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헤라클레스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그는 자신의 첩 이올레를 아내에게 보내기에 앞서 아내의 입장을 깊이 헤아렸어야 했다. 첩을 환영할 부인이 어디 있겠는가. 소포클레스는 운명을 탓하기에 앞서 인간의 절제되지 않는 오만한 욕망과 어리석음이 불행을 야기한다는 점은 일깨워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이 작품에서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할 대목이 있다. 헤라클레스는 죽음을 앞두고 아들 휠로스에게 자신의 첩이던 이올레와 결혼하도록 요구한다. 불경한 짓을 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는 아들에게 헤라클레스는 이를 거역할 경우 신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압박하며 결국 아들의 맹세를 받아낸다.

자신의 사후에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을 돌봐주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결혼까지 명령한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스 성 풍속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희귀한 사례다. 아테네의 모범적인 지도층이었던 소포클레스는 이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실 헤라클레스의 안락사를 아들에게 맡겼다는 설정이나, 아들에게 이올레와 결혼할 것을 명령했다는 소포클레스의 설정은 인간에게 너무나 잔혹한 시험을 요구하는 것이라서 이해하기 어렵고 그 사실성도 의심스럽다.

차라리 다른 전설이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헤라클레스의 장작더미에 감히 불을 불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필록테테스(Philoctetes)라는 용사가 불을 붙여준 후 그 대가로 헤라클레스의 활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필록테테스는 신탁에 의해 그의 참전으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한다. 아무튼 인간의 비극성을 지나치게 몰아붙인 소포클레스의 이야기보다 이 전설을 믿고 싶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 추천도서: <트라키스 여인들(Trachiniai)>, 『소포클레스 비극전집』,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2, 3쇄). 5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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