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백지현 기자] 정부가 26일 발표한 가계부채 대책은 대출 실수요자는 보호하되, 소득수준에 따라 대출한도를 제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일정을 앞당겨 대출자의 상환능력 범위 안에서 대출을 실행시키겠다는 게 주된 골자다.
다시 말해 DSR 조기 도입을 통해 가계부채 관리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DSR은 차주별로 연소득 대비 연간 갚아야 할 모든 가계부채 원리금 비율 한도를 정한 것이다. DSR 규제를 강화하면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7월 시행된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후속 보완대책으로 불과 3개월 만에 추가대책을 내놓은 것은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주요국 대비 규모가 크고 증가속도가 빨라 잠재적 금융불안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016년 4분기 87.3%에서 지난해 4분기에 104.2%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77.5%에서 79.2%, 영국은 85.3%에서 89.4%로 증가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 관리방안 발표문을 통해 "올해 중 큰 폭으로 확대된 증가율을 내년에는 실물경제 성장속도인 명목GDP 성장률에 근접한 4~5% 수준으로 안정화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이번 대책 시행에도 가계부채 증가세가 과도하게 지속될 경우 추진 가능한 추가방안을 마련해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DSR 규제 확대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 당초 내년 7월부터 총 대출액 2억원 초과, 2023년 7월부터는 총 대출액 1억원 초과로 DSR 규제 적용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를 각각 내년 1월과 7월에 차주 단위 DSR 2단계와 3단계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DSR 규제 2·3단계를 조기 시행하게 되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크게 줄게 된다. 현재 1단계에선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의 6억원 초과 주택을 빌리거나, 1억원 초과 신용대출을 받을 경우 DSR 40%(비은행 60%)를 적용하고 있다.
제2금융권의 차주 단위 DSR 규제 비율도 내년 1월부터 60%에서 50%로 강화된다. 또 내년부터 카드론이 DSR 산정에 새롭게 포함되고, 5개 이상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카드론을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다. 이에 대해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제2금융권으로 DSR 규제를 확대하는 것은 풍선효과를 막기 위함인데 기본적인 원인을 해소하지 않고선 큰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제도권 금융권 대출이 막힌 가계나 자영업자들이 연평균 400%가 넘는 사금융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오 회장은 "가계대출은 집을 사기 위해 빌리는 경우도 있지만 생계자금이나 사업, 전월세 자금이 필요해 빌리는 경우도 많다"며 "무리한 총량규제는 서민들의 불법사채로 내몰수 있고, 금융회사의 금융중개기능만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전세대출도 DSR 규제에 포함하는 방안을 고민했으나, 실수요자 반발에 따른 여론을 의식해 올해 총량규제에서 제외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세대출도 총량규제에서 포함됐어야 했다"며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선 전세대출도 소득 범주 이내에서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현재 가계부채 상승률이 매우 과도해 이번 대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선순환을 발생시키기 위해 일단 발표를 하면 효과를 보도록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실행을 해야하는데 여론을 의식해 한발 물러서면 현재 과도한 상승을 잡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책을 두고 급격한 가계부채를 견인한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은 채 사실상 대출 총량을 틀어막는 정책으로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작정하고 은행의 팔을 비틀어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증가세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는 있겠으나 그에 따른 상당한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란 얘기다.
유경원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정부가 내놓은 이번 정책은 공급측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대책"이라며 "근본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만족시킬 만한 정책을 함께 내놓아야 효과를 볼 텐데, 결국 유동성을 줄여 규제를 하겠다는 것은 불완전한 대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총평을 내놓았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도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리는 수요자들에 대한 보완조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일률적으로 강화할 경우 피해자가 양산될 것"이라며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소득을 만들어 갚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면서 대출 규제를 해야 하는데 무조건 수요를 억제하면 부작용이 크고 실효성도 거두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백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