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근 선문대 교수 |
1998년 이후 몇 번의 여·야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한국사회는 정치적 배려차원에서 이루어진 ‘낙하산 인사’로 몸살을 앓아왔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유력 대권후보자 주위에는 적지 않은 전·현직 언론인들이 모여들었고, 또 대선캠프에는 많은 언론인들이 ‘언론특보’니 하는 직함을 받아들고 활동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때문에 새 정부가 집권한 직후에는 수많은 언론계 출신 인사들이 각종 언론기관 혹은 유관단체들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른바 ‘낙하산 논란’을 일으켜왔다. 물론 아무리 유능하다 하더라도 정치가 모든 사회분야를 모두 집어삼키고 있는 블랙홀 같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줄’을 대지 않고 절대 발탁될 수 없다는 변명이 분명 일리가 있다. 또 설사 정치적 줄을 타고 발탁되었다 하더라도 이들이 언론이나 유관 분야에 오래 근무했던 분들이라는 점에서 면피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낙하산 인사’를 아주 관대하게 보더라도, 이번 YTN 사장 인사는 파격을 넘어 파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새로운 사장이 금융 분야에서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세상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치 대학으로 따지면, 화공과교수에게 역사학을 가르치게 하는 꼴이고, 군대로 따지면 경리병과 출신 장교에게 특전사령관을 맞기는 것과 같다. 물론 전공이 다르고 병과가 틀리다고 해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분야를 맡겨도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 언론을 ‘제4의 권력’이라고 한다. 그것은 정치권과 정치인들이 언론의 전문성도 전문성이지만 언론 영역의 독자성을 인정해주는 ‘대자적 존재’로 보라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이번 YTN 인사는 언론은 ‘권력의 도구’로 보고 싶은 우리 정치권의 속내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사진=연합뉴스 |
무엇보다 많은 공적 성격의 언론사들은 몇차례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내부적 정치 갈등구도가 구조화되어 버렸다. 때문에 정권교체기 때마다 새 경영진과 구성원들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에 있었던 ‘문창극 총리후보 보도’나 최근에 방송된 ‘뿌리 깊은 미래’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또 노조를 중심으로 한 구성원들의 조직이기주의도 개혁되어야 할 문제다. 물론 이 두 요인은 상호 복합되어 좀처럼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로 고착되어버렸다.
이런 갈등구조아래 공적 언론사들의 CEO로 취임한 많은 분들이 처음에는 개혁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구성원들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타협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언론사라는 독립성이 강조되는 조직·규범적 속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경우 그런 폐해는 더욱 커졌다.
물론 이번처럼 언론과 전혀 무관한 인사가 도리어 특정 연고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 더 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구조화된 내부 병폐들은 아무리 유능하다 하더라도 외부인사가 단기간에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면 이런 파격을 넘어선 파행적 인사는 왜 나온 것일까? 추론컨대, 언론영역에 활동해온 인사들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 아니면 언론 영역 자체의 고유성이나 전문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언론불신 인식에서 나온 것 아닌가 싶다. 어떤 인식에서 나왔든 언론과 언론인들이 반성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인이든 언론 자체든 현 정부가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런 것이라면 이건 정말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요즘 들어 조금 퇴색되었다고 하지만 언론을 ‘제4의 권력’이라고 한다. 그것은 정치권과 정치인들이 언론의 전문성도 전문성이지만 언론 영역의 독자성을 인정해주는 ‘대자적 존재’로 보라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이번 인사는 언론은 ‘권력의 도구’로 보고 싶은 우리 정치권의 속내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간다고 하는데 대한민국 정치권이 바라보는 세상은 좀 다른가 보다. /황근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