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석 논설위원 |
사실 그게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의회권력을 쥔 정치인들의 속내다. 당장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내년 4월 총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던 게 1개월 전이다. 그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그렇게 말하며 국회 내 특위를 구성해 개헌 공론화에 나서자고 청와대를 압박했다.
개헌하자는 정치꾼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당신이 잠시 한눈을 파는 새에 개헌 판도라의 상자 뚜껑은 활짝 열린 셈인데, 보름 전 국회, 이완구 총리가 데뷔전을 하는 자리에서도 개헌 합창이 들려왔다. 친이· 친노의 좌장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과 이해찬 새민련 의원이 각각 첫 주자로 "개헌합시다!"를 외쳤다.
이 총리가 “올해는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가늠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재오 의원은 마이동풍이었다. “당장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야당과 똑 같은 소리라는 걸 주목하시길 바란다.
개헌론 주체는 국회, 청와대는 전전긍긍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해 말 오스트리아 식 이원집정제 구상을 밝혀 정치권을 뒤집어놨다. 대통령· 총리가 외치· 내치를 분담하는 구조의 개헌론이 그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에게 사과했지만, 소신은 여전하다. 그렇다. 개헌론의 주체는 국회다. 이에 밀린 청와대는 지금 전전긍긍이다.
국회, 저들은 이미 개헌 발의(發議)요건도 모두 갖췄다. 그게 지난해 구성된 초당적 구성의 개헌추진국회의원모임이다. 이 모임엔 재적의원의 과반인 154명이 참여한 상태다. 빠른 시일 내 개헌안을 확정해 국민투표에 부칠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개헌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여야의 개헌논의는 권력야합으로 비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의 레임덕을 부채질할 수 있다. 국민총의로 선택한 대통령제를 사수해야 한다. 지금은 권력분점 논의를 할 때가 아니다. 경제를 살리고,종북과의 전쟁에 주력해야 한다. 새민련 우윤근 원내대표가 개헌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
어떻게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인데, 국회가 그걸 강탈하는 것일까? 자칫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임기도 못 채운 채 내려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한달 전 새로 임명된 김경재 홍보특보가 지금은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라고 지적했고, 4.29 관악을 재보선 독자후보로 나선 변희재가 "개헌야합 저지를 하려고 출마했다"고 밝혔다.
누구 말이 옳은 것이지? 그걸 판단하기 위해 나는 1952년 부산정치파동을 복기할 생각이다. 그래야 앞뒤가 훤해질 것인데, 부산정치파동은 63년 뒤 지금의 개헌 논의와 완전히 판박이다. 내각제 개헌을 강행하던 국회와, 대통령제를 앞세운 대통령이 대충돌을 일으킨 사건이고, 끝내 국회가 꼬리를 내리면서 대통령중심제라는 한국정치의 유산을 만든 결정적 계기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을 새로 봐야 모든 게 보인다
이걸 살펴야 지금 국회가 추진하는 개헌이란 이승만이 만든 대통령제, 87년 개헌 때 국민 총의로 만든 대통령제를 허물려는 또 다른 야합이라는 게 새삼 드러날 것이다. 우선 많은 이들이 그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파괴한 사건으로 기억한다. 그거야 말로 좁은 이해다.
부산정치파동은 6.25전쟁을 치르면서 이승만의 각종 정책실패가 도화선이 된 게 사실이다. 국회 특히 야당은 이승만을 끌어내리고 장면을 옹립하기 위해 내각제 개헌을 추진했다. 이전까지 대통령은 국회에서 뽑는 간선제라서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절충된 형태였는데, 그걸 내각제 100%로 바꾸려는 음모였다.
▲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이 새누리당에서 개헌론을 주도하고 있다. 여당내 개헌논의는 박대통령의 민생회복과 각종 개혁정책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다. /사진 연합뉴스 |
이 판에 미국도 개입했다. 그들이 고집불통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개헌은 급물살을 탔다. 이승만은 혼자서 맞서야 했다. 백골단 등 시민단체를 동원해 국회를 압박했고,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 50명이 탄 출근버스를 헌병이 크레인으로 끌고가는 일도 발생했다.
이런 힘겨루기 끝에 국회는 내각제 개헌을 포기했고, 이승만은 대통령중심제를 창출해내는데 성공했다. 당시는 전쟁중이었다. 특히 정당제가 뿌리 내리지 못한 한국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라는 걸 이승만은 알았다.
이걸 두고 이승만의 권력욕심을 욕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친위쿠데타라고 비판하는 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많은 지식인이 이걸 보고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길 기대하는 격이라며 냉소했다.
지금은 권력야합 아닌 '종북과의 전쟁'에 올인할 때
이 문제를 가장 균형 잡아 잘 쓴 책은 정치학자 고(故) 김일영의 명저 <건국과 부국>(기파랑)이고, 이 견해를 따르는 이들이 요즘 적지 않다. 즉 부산정치파동이 한국정치의 틀을 만든 사건이고, 그때 이걸 하지 않았더라면 한국현대사의 성공은 없었다는 거시적 시각이다.
62년 전의 그 일은 많은 걸 생각게 해준다. 왜 국회는 총선 전 내각제 개헌을 해치우려는 것일까?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흔들고, 권력 나눠먹기 위한 야합이 아닐까? 종북세력과의 전쟁을 펼쳐야 지금, 그리고 통일을 눈앞에 둔 지금 왜 개헌야합인가?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대통령은 바로 레임덕에 들어간다. 박근혜 대통령은 눈 뜨고 코를 베이는 격인데, 대통령 입장에선 경제도 경제이지만, 자기 자리가 흔들리고 있는 초미의 상황이다. 무능과 부패의 대명사인 국회의 개헌 놀음은 그래서 문제다.
헌법기관으로서의 정체성까지 상실해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수호하지 못해왔던 저들의 야합은 당장 멈춰야 한다. 개헌 어쩌구의 논리란 어쩌면 권력탈취를 포장하는 논리다. 이제야 밝힌다. 앞으로 필자는 개헌 문제에 올인해 기회가 나는대로 시시비비를 파헤칠 것을 이 자리에서 감히 선언한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