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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규제 양산 노사정위 폐지해야

2015-03-25 14:4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노사정위원회가 대타협을 추진중이다. 합의가 안된다. 김대환 노서장위원장은 타협안이 도출되지 않을 경우 퇴진할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그래도 메이라가 없다. 노동계는 양보할 생각이 거의 없다. 정부도 노동계입장을 편드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계만 외롭게 분투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기본적으로 코포라티즘 성격이 강하다. 조합주의 공동체 협동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에 어긋난다. 정부가 골치아픈 이슈에 대해 노사정위를 만들어 책임을 전가하려는 경향도 강하다.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등...하나같이 재계에 커다란 경영부담을 주는 것들이다.

재계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하는 타협이 없이 양보만 당한다고 불만이 많다. 재계도 노사정위 탈퇴를 고려하고 있을 정도다. 노동계는 꿈쩍도 안한다. 챙길 것은 다 챙기고,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를 위한 양보는 전혀 안하려 한다. 노사정위는 기본적으로 자율의 형식을 띤 폭력적 합의를 유도하고 있다.

노사정위에 참여하는 노동계는 기본적으로 특권노조다. 전체 근로자의 10%도 안된다. 대기업 정규직들이 대부분이다. 나머지 90%는 철저히 소외돼 있다. 청년실업자, 자영업자, 비정규직 등...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노동귀족들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반시장적인 노사정위는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자유경제원은 25일 '노사정위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노사정위를 폐지해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조합주의 특성이 강한 노사정위가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는 점도 지적됐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저해하는 규제를 양산하는 것도 문제다. 아래는 권혁철 소장의 주제발표문이다. [편집자주]


   
▲ 권혁철 소장
정치적 합의 압박을 받고 있는 노사정위원회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노동개혁을 위한 논의가 바쁘게 이어지고 있다. 이는 2014년 12월 23일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구조개선 기본합의문’을 채택하면서 ‘5대 의제 14개 세부 과제’를 다루기로 한 데에 따른 후속 논의이다. 그 중에서도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임금/근로시간/정년 문제, 그리고 사회안전망 정비’ 등 세 가지 의제를 우선과제로 채택하여 2015년 3월 말까지 결론을 도출하기로 합의했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노사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어 3월 말까지의 합의 도출이 불투명해보이자, 정부가 3월 말까지 합의할 것을 종용하고 나섰다.

이번 논의가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사안의 중대성 때문이다. 이번 노사정 대타협 논의에는 비정규직 보호 및 사내하도급 등 원하청간 근로조건 격차 문제에 대한 방안,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위한 취업규칙 변경과 저성과자 해고기준 마련, 그리고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통상임금의 범위 및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방안 등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현안과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주요 아젠다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만큼 이번 논의에서의 결론이 어느 방향으로 정해지는가는 노와 사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으며, 따라서 그만큼 노와 사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시한을 못 박고 합의를 압박하는 것은 정치적 요구에 의해 ‘강요된 합의’에 이르도록 만들 것이다. 경제 현실과 노동시장에 어울리지 않는 정치적으로 강요되고 왜곡된 합의는 필연적으로 규제를 양산함으로써 현재의 경직된 노동시장을 더욱 경직시켜 우리나라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사실 노사정위원회는 그 출발부터 규제의 온상이 될 것이라는 의구심을 받아왔다. 1997년 경제위기를 당해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노사정위원회를 발족시킬 때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노동시장에 대한 새로운 규제의 요인이 될 것이라며 반대했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노, 사, 정 그리고 공익이 참여하여 경제 및 사회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노사정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렇지만, 이제까지의 노사정위원회의 활동의 결과 합의된 내용들 대부분은 처음의 우려대로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의 양산이었다.

정치적 압력에 밀려 합의를 강요받고 결국은 정치적 고려에 따라 합의를 하는 위원회라면, ‘그런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며, 정부 및 국회와 같은 기관과 별도로 존속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하는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노사정위원회 제도 자체, 즉 노/사/정 및 공익이 참여하여 경제 및 사회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올바른 문제해결 방법인지도 의문이다. 또 보다 근본적으로 이것이 우리나라의 경제질서와 어울리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코포라티즘(Corporatism)의 발현

노사정위원회는 앞서 언급했듯이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와 공익이 함께 참여하여 경제 및 사회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자 설립되었다. 이러한 문제 해결 방식은 기본적으로 코포라티즘적 문제해결 방식과 동일하다.

코포라티즘(조합주의 혹은 협동체주의로 번역)에서 Corporate 혹은 Corporation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함께 참여하는 협동체를 말한다. 노동자 혹은 사용자들이 조직한 각각의 단체를 신티케이트(Syndicate, 조합)라고 부르는 반면,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가 참여한 조직이 Corporate=협동체이다. 코포라티즘에서는 “바로 이 협동체가 사회를 조직 및 개편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경제 및 사회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노와 사가 함께 참여하는 협동체인 노사정위원회가 핵심적 역할을 하도록 하고 있다.

   
▲ 노사정위는 폐지돼야 한다. 자율의 형식을 국가의 폭력성을 띄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저해하고 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도 어긋난다. /사진 연합뉴스

이 코포라티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화합과 질서를 우선시하며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인정하되 공동선을 위해 국가가 그것들을 적절히 통제”하며, “국가가 사유기업들을...지배적으로 지휘하는 경제체제”가 코포라티즘이다.

다시 말해 코포라티즘의 핵심 내용은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이므로 사회가 평화롭게 발전하려면 사회의 구성부분들이 사회 전체의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 자기의 직능을 질서있고 조화롭게 수행해야 하며, 사회의 구성부분들이 자기의 기능을 질서있고 조화롭게 수행하려면 사회가 기능의 동질성에 입각하여 결성된 협동체들을 중심으로 편성되고 운영되어야 하며, 협동체들의 활동과 협동체들 간의 관계는 공동선의 실현을 목표로 국가에 의해 지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협동체들은 국가의 보호와 지도를 받으며, 자신들과 관계가 있는 정책들에 대한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제도화된다. 바로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시장에서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선을 이룩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코포라티즘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시장경제와는 대립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사유재산권을 바탕으로 각 개인이 중심이며, 각 개인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신의 상황을 자유롭게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동시에 시장경제에서는 자유경쟁을 통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자신만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행위가 차단되게 된다.

이와는 달리 코포라티즘에서는 개인이 아닌 집단이 우선시되며, 개인의 자유는 공동선의 이름으로 제한 혹은 억압받게 된다. 여기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는 궁극적으로는 ‘보호와 지도’를 담당하는 국가가 되며, 공동선의 이름으로 포장된 국가의 명령과 통제가 개인은 물론 집단의 의사보다도 우선시된다. 결과적으로 코포라티즘은 하이에크가 말한 전체주의 ‘노예로의 길’이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코포라티즘의 태생부터가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대항 이데올로기로 출발했다. 즉 코포라티즘은 19세기 후반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인한 문제들을 비사회주의적인 방식으로 치유하고자 등장한 사상이다. 그렇지만, 그 귀결은 전체주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시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기간 중 유럽 여러 나라에서 코포라티즘이 국가운영체제로 도입되었다. 그런데, 코포라티즘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국가들은 파시즘 혹은 나치로 되어버렸다. 코포라티즘이 결국 전체주의로 간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코포라티즘이 전체주의로 흐른 것은 코포라티즘이 권위주의적으로 실천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나타난 ‘민주적’ 코포라티즘에서는 국민통합과 정치안정 및 경제난 극복과 복지국가 실현에 이바지하였다고 한다.

 코포라티즘은 ‘국가가 사기업들을 지배적으로 지휘하는 체제’ ‘공동선의 실현을 목표로 국가가 지도하는 체제’라는 특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폭력과 억압을 동반한 전체주의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코포라티즘은 전반적인 국가운영체제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노사정위원회처럼 부분적으로만 도입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작용이 부분적으로만 나타나게 된다. 도입되어 있는 부분에서는 전체주의적 독성이 여전하지만, 자유주의 시장경제 전체를 마비시킬 만큼의 독성이 배출되지는 않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코포라티즘의 독성에도 불구하고 자유시장경제가 (아직까지는) 여전히 움직이면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2000년 김대중 정부 3년차 당시 123개국 중 58위였던 우리나라 노동시장 관련 경제자유 순위는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노무현 정부 말기에는 107위로 하락하고, 이명박 정부 말기가 되면 134위로까지 추락한다. 노동시장과 관련된 주요 정책은 코포라티즘에 기반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에서의 ‘합의’를 거친 것들이다. 노동시장에서의 코포라티즘의 독성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의 이런 상황을 볼 때, 앞으로 노동시장 이외의 더 많은 분야에 코포라티즘을 실현하고, 나아가 국가운영체제로까지 도입을 하게 된다면, 자유시장경제 전체가 마비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이룩되어 있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성과를 코포라티즘의 덕분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맞지 않다. 마치 북한에서 ‘시장’의 일부 허용으로 인해 인민들의 빈곤과 굶주림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것을 두고 사회주의 통제경제의 성과라고 치부하는 것처럼 들린다.

자율로 포장된 국가의 폭력

기본적으로 위원회는 동등한 자격을 갖는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합리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노사정위원회도 노와 사, 그리고 정(政)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여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로 만든 기구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코포라티즘이 의도치 않게 전체주의로 귀결되듯이, 일이란 것이 의도대로만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은 통상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각자 자신의 몫을 다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고통분담의 차원에서 노동자는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사용자는 대량해고를 하는 대신 해고대상 인원을 유/무급의 휴직으로 대체하겠다고 약속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회의 결과에 만족한다는 소감을 피력한다.

실상 실업문제나 사회안전망 구축 등은 정부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사안들이며, 따라서 위원회에서의 이런 합의는 정부의 책임을 상당히 경감시켜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가자들이 합의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법적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관철시키겠다는 엄포를 놓는다.

이 말은 가능한 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합의하고 실천하되, 이것이 불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국가의 강제력을 동원하겠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 부분이 코포라티즘이 의도하지 않게 전체주의로 빠지는 부분이다. “공동선의 실현을 목표로 국가에 의해 지도되어야 한다.”는 것이 코포라티즘의 기본 특성이며, 이는 근본적으로 전체주의로의 길을 예정해 놓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자유의사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들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강제로 이루어질 때, 이는 결국 자율로 포장된 국가의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최근 3월 말 시한을 정해 놓고 억지 합의를 종용하고 있는 정부의 행태도 마찬가지로 노사의 자율로 포장된 국가권력의 폭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국가의 사회화’의 함정

어떠한 제도를 도입할 때는 국가권력의 행사와 제한은 합법적으로 규정된 기관을 통해서 해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한편 개인의 자유를 명백히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영역과 사적 자율의 영역이 엄격히 구분될 필요도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국가기관과 사적 이해집단들 간의 협조행동을 꾀함으로써 국가의 공적 업무와 사적 자율성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권력행사의 정당성도 분명하게 확보하지 못한 사적단체들이 정치적 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합법적이고도 확실한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경제정책적인 판단에 사적 이익단체들이 참가함으로써 ‘국가의 사회화’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또한 임금협상 등에 있어 국가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사회의 국가화’를 만드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사회의 국가화’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의 사회화’ 역시 발상은 민주적일 수 있지만, 결국은 개인과 집단의 자유를 극도로 침해하는 전체주의로 빠질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사정위원회의 이런 특성으로 인해 노사관계는 반드시 정치적 관계로 변질된다. 노동조합은 정부의 정책 중 ‘노동시장 유연화’ 등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투쟁으로 대응하고, ‘사회적 합의 추구’에 대해서는 협상과 투쟁을 병행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노사정위원회를 협의기구가 아닌 정치적 의사결정구조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경영자를 제치고 노사관계의 실질적 당사자, 노동조합의 대응파트너 역할을 맡음으로써 노사관계가 노정관계로 변질되는 데 일조하였다.”

노사정위원회의 정치화의 또 다른 문제는 법과 원칙이 무력화된다는 점이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원칙이나 법과는 관계없이 이슈에 대해 노사정의 논의 및 합의를 무조건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합법적인 경영활동(예: 구조조정)이라도 노동조합이 이의를 제기하면 노동조합과 협상해야만 하는 현실이 되었고, 갈등의 조정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명목 아래 기존의 법과 원칙, 질서는 무시되기 일쑤이다.

그리고 이런 풍토는 “갈등의 내용이나 정당성은 관계없이 갈등 그 자체만 일단 최대한 키워 놓으면 무언가 얻어진다는 의식이 만연”하도록 만들었다. 아무리 불법파업이라도 일단 시작을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선물이 나오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서는 불법파업 등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을 가질 이유가 없다. 법과 원칙의 무력화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자본’에 엄청난 손실을 끼치게 된다.

노사정위원회=정부와 정치권의 도피처

정부나 정치권이 권력을 책임지고 행사하는 것도 자유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이다. 어떠한 문제가 있고 또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의 공권력을 동원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국가는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반드시 행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노사정위원회에 자신들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실업문제나 사회안전망 등의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주요한 책무다. 자신의 책무를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와 사의 어깨 위에 짊어지게 만들고 정작 본인들은 구경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정부나 정치권은 자신들의 직무유기나 실정(失政)을 호도할 수 있는 좋은 피난처를 노사정위원회에서 찾는다.

먼저 이들은 어떤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본인들의 인기 혹은 지지율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우선 이를 노사정위원회의 논의사항으로 넘김으로써 여기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핑계로 그냥 넘어갈 수 있다. 또한 위원회에서 논의되고 합의된 것을 정책으로 옮길 경우 그것이 부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게 되면 노사정위원회에서의 노사의 합의사항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다.

이렇게 노사정위원회는 정부와 정치권의 실정과 무능을 덮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로써 자신의 무능과 실정을 호도할 수는 있겠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경제에 미치게 된다.

이권집단들의 이권쟁탈과 소외의 문제

노사정위원회의 또 다른 문제는 위원회에는 노동자 및 사용자의 대표들만이 참여하기 때문에 그들만의 이해가 대변될 뿐, 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거의 혹은 전혀 고려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노사정위원회의 참여가 배제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쉽사리 조직화되지 못하는 일반 소비자, 납세자, 실업자 등이다. 특히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출하려는 청년실업자는 거의 완벽히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또 노동자 중에서도 조직화가 유리한 대기업 노동자를 제외한 나머지 노동자들의 이해는 대변되기 어렵다.

우리나라 노조조직률은 겨우 11% 내외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양대 노총 중 한 축인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하고 있다. 사용자 측도 마찬가지다. 주로 대기업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을 뿐,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의 이해까지 대변하기는 어렵다. 하물며 막 창업을 하는 사람, 창업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을까?

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현재 이루어 놓은 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즉 분배정책적인 성격이 짙다. 따라서 논의의 대부분은 실상은 누가 혜택을 볼 것이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해가 고려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노사정위원회의 폐지 혹은 비상설기구화를

이상의 논의들은 노사정위원회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면서 해악만 끼친다는 말은 아니다.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평가조차도 당시의 ‘절박함’이 경제살리기를 위한 대타협으로 이끈 것이었으며, 그런 절박함이 사라진 이후에는 앞서 언급된 부작용만 낳고 있다는 평가이다.

이 말은 IMF 경제위기라는 비상시국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임시, 혹은 일시적인 ‘비상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과 이 기관을 상설화하고 법제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998년 1월 15일 구성되었고, 여기서 1998년 2월 6일 90개 항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협약이 경제위기 극복에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그런데, 1998년 3월 대통령령인 노사정위원회 설치운영 규정이 제정되면서 그해 5월 제2기 노사정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급기야 1999년 5월 다른 법안들과 함께 단 9분 만에 날치기 통과된 이른바 ‘노사정위원회법’에 의해 같은 해 9월 제3기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한다. 즉 법제화된 상설기구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2007년 법률을 개정하여 일종의 업무영역 확대를 의미할 수 있는 현재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되었다.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기구가 아닌 상설기구화 되면서 앞서 언급했던 문제들이 불거지게 된다.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그것을 강제나 권력으로 대체시키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정부 및 정치인들에게는 그들의 책무 중 상당부분을 경감시켜 주고, 실정과 무능의 도피처를 제공한다. 또 노사정위원회는 조직화된 일부 이익단체들에게는 정치권력에 동승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반면, 조직화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배제되고 차별을 받도록 되어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코포라티즘에 기반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가 법률적 상설기구화되어 있다는 것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불협화음을 내면서 독성을 내뿜을 것이다. 그 결과는 경제의 침체로 나타날 것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사정위원회는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일 노사문제 및 노동시장과 관련된 당사자들 간, 즉 노사정의 집단적인 대화가 필요하다면, 필요할 때마다 만나서 협의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는 것이 법률적 상설기구화보다는 나은 대안이 될 것이다.

이때 정부는 민간의 대화에 일체의 간섭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도 우리의 노사정위원회와 유사한 ‘라운드 테이블’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법률적인 상설기구도 아니며, 노사 간의 대화에 정부는 기초자료만 제공할 뿐 그 이상의 일체의 간섭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불법 제3자 개입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만일 대화체를 구성하더라도 일시적인 성격을 가질 것, 그리고 정부는 대화에 일체의 간섭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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