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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자국 이기주의로 무산된 조선빅딜…"재추진해야"

2022-01-30 10:22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간 합병이 유럽연합(EU)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대우조선 민영화작업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대우조선의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당분간 경영쇄신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정상화 작업이 미흡할 시 추가 자금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개별 기업의 정상화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이 합병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부가선박 건조 기술을 갖춘 두 회사가 합병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LNG선 건조기술이 중국·일본 등 경쟁국을 훨씬 앞지르는 만큼, 대(對) 선주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평가다.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간 합병이 유럽연합(EU)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대우조선 민영화작업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제공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2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EU의 독과점 규제를 '자국 이기주의'에 따른 것으로 보고 산은 차원의 대응이 미흡하지 않았음을 항변했다. 

당시 이 회장은 "조선시장의 경우 양사 외에도 다수 경쟁자가 존재하고, 발주처 우위의 시장인 점을 감안할 때 경쟁당국에 대한 설득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며 "EU의 소비자들, 선주들, 당국은 저가 경쟁에 따른 낮은 선가와 LNG선에 대한 고가의 페이턴트(특허)를 감안할때 그런 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선시장은 입찰이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이에 따라 시장점유율이 크게 변동하는 시장이어서 현재 상황만으로 독과점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며 "현대중공업은 이를 면밀히 판단해 심사 대응을 대응했고, 산은도 EU 공정위원장과 화상회의를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나라와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 싱가포르 등으로부터 빅딜을 승인받았다는 점에서 EU의 불승인은 유감스럽다는 평가다. 

향후 M&A 추진 시 해외 당국의 불허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조선업 M&A는 이제 해외 경쟁당국에선 (허가가) 안 된다는것을 확인해서 앞으론 추진할 수 없다"며 "이번에 현중이 소송해서 우리는 그냥 받아들이진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강력히 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EU가 조선빅딜로 △대형 LNG선 건조시장에서의 시장지배적 위치 점유 △EU 선주 및 에너지 소비자에 대한 가격 인상 등을 지적한 점에서 추가적인 대응은 어렵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유럽의 대응이 이기주의에 기반하는 만큼, 합병을 재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대학 석좌교수는 "우리나라 조선업의 앞날을 생각할 때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의 합병이 다시 시도되어서 성사돼야 한다"며 "EU가 우리나라 공정위의 눈치를 보다가 일이 전혀 진행되지 않는 것 같으니 차라리 선수를 치자 해서 불승인을 내린 것이라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EU는 선주들의 입김이 엄청 센 곳이다. 국내 빅3가 그동안 수주할 때마다 '이전투구'하던 것을 봐왔기 때문에 항상 어부지리를 얻은 것은 유럽 선주였다"며 "우리나라는 계속해서 중국과의 (LNG선 건조) 기술격차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이 합쳐서 양쪽이 합친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이 채권단 관리에 놓이면서 국내 조선시장의 가격덤핑을 주도한 점도 합병에 나서야 하는 이유로 꼽힌다. 이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대우조선이) 취임 당시에 원가율이 100%를 초과하는 저가 수주 위주였고, 물량만 받으면 존속한다는 준 국영기업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은 선박 수주 시 확보해야 하는 선수금환급보증(RG)을 수익성 90% 미만일 경우 발급해주지 않겠다는 의견까지 내놨다. 

전 석좌교수는 "대우조선해양이 (산은의 도움으로) 우리나라 신조선 가격을 하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억 5000만~2억 6000만불에 달하던 LNG선박이 1억 9000만불까지 떨어지기도 했다"며 "(양사) 합병을 통해서 (단가) 후려치기를 지양할 수 있다. 공정위가 신속하게 승인해주고 밀어 부쳤으면 끝나는 일이다"고 평가했다.

유럽 선주의 선택적 독과점도 어불성설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실제 글로벌 벌크선 건조시장의 약 70%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중국 조선소가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EU는 중국의 독과점을 두고 비판하지 않았다. 

반면 고부가산업인 LNG선 건조시장에서 우리나라에게 유독 강한 잣대를 내세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클락슨 리서치 기준 국내 조선소(현대·현대삼호·대우조선·삼성)의 수주 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 하지만 LNG 수요가 폭증하면서 LNG선 선가가 크게 오르고 있고, 해당 선종의 수요자는 대부분 유럽계로 구성돼 있다. EU의 불승인이 노골적으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전 석좌교수는 "유럽 선주는 우리나라 배가 좋아서 사는 것일 뿐이다. (경쟁 국가는 건조기술이 부족한 만큼 선주로선) 다른 초이스가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산다"며 "합병 재시도를 하면 결론적으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합병 철회 결정을 취소하면 공정위가 신속히 승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합병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를 이뤄 기술격차를 이어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항공빅딜에 대해서는 공정위의 승인 결정만 떨어지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적으로 '1국 1국적항공사' 체제가 공고해진 데다, 두 항공사가 세계 항공시장을 좌우할 점유율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 또 국가 간 협약에 따라 노선에 투입할 항공기 수, 운항 횟수 등이 정해져 있는 만큼, 항공사 합병이 특정 국가의 운항 횟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언젠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여객수요가 폭발할 것이다. 그걸 대비해서 양사 조직을 합쳐 열심히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며 "지금처럼 합병을 질질 끄는 것은 국가적으로 항공산업을 죽이는 행위다. 공정위가 빨리 승인을 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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