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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경제·작은 정부…싱가포르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2015-03-26 13:3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현재 1인당 GDP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아시아 1위),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국가경쟁력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 세계 5위로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싱가포르의 건국과 부국의 뒤에는 영웅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있었다.

리콴유 전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닮은점은 강력한 국정 리더십, 효율 제일주의와 엘리트 시스템 그리고 서구 민주주의와 또 다른 토착화된 아시아적 정치철학으로 부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유경제원에서는 지난 23일 타계한 싱가포르의 경제 기적을 일군 리콴유 전 총리의 리더십을 조명하기 위한 토론회를 마련했다.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 씌워진 친일파·매국노라는 좌파들의 그릇된 인식과 함께 아시아의 번영을 위해 살다간 두 거인의 생애와 사상이 다시 한번 재조명 되기를 바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은 " ‘제3세계에서 1류 세계를 만든다’는 싱가포르의 전략은 '작은 정부, 큰 민간’이라는 모토로 요약될 수 있다"며 "한국에도 강력한 메가시티전략을 펼치면 5개의 싱가포르를 건설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아래 글은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의 토론문이다. [편집자주]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타계에 전세계가 애도를 표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 자치정부 시절부터 독립 이후 1990년까지 총리를 지내 세계 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으며 모기가 들끓던 아열대의 후진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글로벌 선진국으로 도약시켰다.

‘싱가포르의 국부’라는 명칭을 가진 리콴유의 리더십은 현존하는 어떤 정치 체제이념 으로도 정확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가능한 설명이 있다면 ‘원칙’에 기반한 ‘현실주의 적 기업형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경제 정책에서는 적극적인 자유시장경제 (Free market economy)를 지 향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또는 ‘가부장적 거버넌스’를 지향했다. 그렇기에 기업들에게는 경제활동에 거의 제약이 없었지만, 태형을 시행하고 거리에서 껌을 씹는 시민들의 행위조차 규제하는 엄격한 규율을 적용했다. 그 결과 2012년 싱가포르는 1 인당 GDP가 5만$에 육박했음에도 갤럽이 조사한 국민행복도는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싱가포르 국민들이 리콴유에 대한 존경심을 버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싱가포르 거버넌스의 모토- 통합,서비스,탁월함

그러한 싱가포르의 체제 이념은 자유주의나 사회주의로 설명되지 않는다. 항간에서는 싱가포르의 체제 이념을 ‘사민주의’라고 지칭하기도 하지만, 서구의 사민주의와는 달 리 가족을 개인이나 사회보다 중시하는 유교적 문화와 엄격한 노동통제 정책으로 인해 그 성격을 사민주의에 일치시키기 어렵다. 싱가포르에는 최저임금제가 없으며, 임금상승률은 정부에 의해 강력하게 통제된다. 리콴유는 자신의 그러한 통치이념을 ‘아 시아적 가치’로 표방해 왔으며, 이는 여전히 논쟁 가운데 있다.
 
그러나 토론자가 분석 하기에 리콴유의 거버넌스는 아시아적 가치가 아니라, 싱가포르의 150년 전통인 상업 사회에 기반한 기업형 국가와 CEO형 오너십 정부를 결합한 ‘시장지향적 국가경영주 의’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싱가포르 국민은 주식회사 싱가포르의 주주이자 근로자이며, 동시에 사내 벤처의 CEO들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할 때 행정은 통치행위라기 보다는 서비스가 된다.
 
리콴유의 싱가포르 발전전략은 그가 1970년대에 주창한 ‘제3세계수준에서 일류국가를 건설한다’는 ‘사막의 오아시스론’으로 요약된다. 그러한 배경에는 싱가포르 역시 2차대전과 중국 공산화 이후 동남아에 몰아쳐 온 ‘공산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절박함이 원인이었고, 반공을 가장 중요한 체제수호 이념으로 실행하려면 경제적으로 부유해야 한다라는 리콴유의 판단이 주효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마디로 싱가포르의 정 치권력과 국민들 간에는 ‘번영하는 만큼 지지한다’라는 묵계가 있었다는 평가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싱가포르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과정에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와는 달리, 항구무역도시라는 ‘상업주의’환경에 일찍 노출됐고, 경제활동의 주요 담당자들이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객가(客家)들이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이들 객가들이 싱가포르에서 활동한 이유는 오로지 ‘상업’과 ‘부’라는 두 개의 목표 때문이었으며, 이들 객가 화교들은 중화주의에 의해 싱가포르를 ‘조국’이라 기 보다는 일터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언제든 부자가 되면 본토로 돌아간다는 생각 이 객가들에게는 공통적이었고 리콴유 역시 그러한 객가의 후손이었다.

   
▲ 20세기 세계의 지도자로 뽑힌 리콴유는 냉철한 현실감각과 능수능란한 정치술, 그리고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리더였다./사진=연합뉴스
시장지향적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고도성장의 비결


이러한 싱가포르의 역사적 상황은 1819년 영국의 무역항 식민지 시절부터 1959년 독립을 이룰 때까지 약 140년간 지속됐다. 그들에게는 ‘국가’(nation)이라는 개념이 희 박했으며, 영국 통치권력하에 주류 엘리트였던 중국 객가 상인들과 다민족 부두노동 자들 간에 계약사회의 면모가 일반적이었다. 다시말해 ‘일하기 위해 모인 사회’가 싱가포르의 본질적, 전통적 질서의 내면이라고 보는 것이 차라리 합리적일 것이다.

이러한 싱가포르 사회의 전통적 특징은 국가질서를 정치권력과 국민간에 ‘상호호혜’라 는 거버넌스 원리로 규정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그러한 면은 싱가포르 정부가 스스로 ‘공기업’에 가까울 정도로 시장경제 마인드로 무장되어 있다는 점으로 드러난다. 국가를 하나의 기업으로 보고, 정부는 국가를 경영하는 주체라고 본다면 공 무원들은 기업 경영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인 정직과 효율, 그리고 능력이 가장 중 요한 자질로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리콴유는 그러한 ‘기업형 국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우수한 인적 자원이라는 점을 일찍 깨달았으며, 싱가포르는 전세계로부터 인재를 끌어 모으는데 국가의 운명을 걸다시피 했다. 동시에 그러한 유능한 인재를 공무 원으로 발탁할 때에는 최고의 대우로 보상하되,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는 무자비할 정도로 냉혹한 규율을 적용함으로써 싱가포르의 관료주의와 부패를 일소할 수 있었다. 이에는 싱가포르의 상업적 계약사회의 원리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그러한 점은 다른 아시아국가들이 민족주의나 종교, 국가주의, 권위주의처럼 ‘비시장적 기초’를 통치질서의 내면으로 삼은 점과 대비된다. 국가에 대한 기업 경영의 원리가 적용된 싱가포르의 통치질서는 CEO가 종업원들의 복지와 교육 훈련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동기를 부여하듯, 철저한 자기 책임에 바탕하면서도 싱가포르 교육과 의료를 높은 수준으로 이끌었다.

싱가포르의 교육은 일찌감치 비평준화와 수월성교육을 보편적 원리로 삼았으며, 경쟁은 장려됐다. 동시에 영어를 공용화함으로써 글로벌 세계에 대한 개방성을 최대한 확장했다. 그러한 성과로 싱가포르는 프랑스 인시아드경영대학원이 발표하는 세계인적 자원경쟁력지수(GTCI)에서 조사대상국 103국 스위스에 이어 2위를 마크업하고 있다. 리콴유는 “중국의 인적자원은 13억이지만, 미국의 인적자원은 70억”이라는 말로 인적 자원 확보에 개방성의 중요함을 역설한 바 있다. 아울러 싱가포르의 의료는 다른 나라들의 국가의료사회주의 방식과는 달리, 의료저축 (Medical Save)라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근로자와 기업이 급여에 일정금액을 강제로 저축하여 필요한 의료비에 사용하게 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의료저축에 3~5%의 이자를 지급한다. 한마디로 자신의 의료비는 자신이 부담하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싱가포르의 의료비는 GDP의 4%수준에 불과하다. 우리의 7%,미국의 15%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여서 의료자원이 효율적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있다.
 
물론 싱가포르는 큰 비용이 드는 질병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며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지원 기금도 운용한다. 싱가포르의 의료비는 우리와 비교하면 높은 편이지만, 소득수준대비로는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아울러 싱가포르는 영리병원과 공공병원이 함께 경쟁하며, 1차 진료기관인 동네병원(GP)제도도 잘 갖추어져 있다. 싱가포르는 낮은 규제로 외국인 직접투자 (FID)를 통해 의료보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의료관 광으로 연계해 의료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였다. 이렇듯 싱가포르가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경제정책 가운데 매우 특이한 세 가지를 주목해 보고자 한다.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타계를 애도하는 싱가포르 국민의 추모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싱가포르인들은 카드에 리 전 총리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쓰거나 시내 곳곳에 마련된 추모소를 찾아 그를 기리고 있다. /연합뉴스TV 캡처
싱가포르 성공의 세개의 코드- 원칙, 자립, 개방


하나는 대단히 안정적인 통화정책이다. 싱가포르 통화위원회는 통화준칙을 적용해 통화를 남발하지 않았으며, 경제성장률 계산에 따른 일정한 비율로 통화를 공급함으로 써 투자자들은 통화증감을 투자의 변수로 삼을 필요가 없었다. 동시에 ‘정책밴드바스 킷’방식이라는 정책으로 환율을 통제한다. 하지만 어떤 점에는 마음대로 투자든, 투기 를 하라는 정책이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환율변동 허락구간을 ‘비공개’로 제시한다. 어떤 점에서는 환투기 게임과 같다. 시장참가자들은 거래중에 MAS가 개입하는 범위를 경험적으로 계산해 그 구간을 추정한다.

그 범위를 알면 안정적인 투자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투기가 많이 일어난다. 실제로 싱가포르 환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투기시장이다. 하지만 역으로 그런 왕성한 투기가 환율을 안정적으로 만들게 된다. MAS가 잠재적으로 허용하는 변동구간을 넘어서려는 순간 엄청난 정부개입이 들어와 투기자는 순식간에 전 재산을 날릴 수 있기에 MAS가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정책밴드의 상하한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밴드바스킷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환율 예측을 쉽게 해서 싱가포르 투자의 어려움을 없앴다.

다른 하나의 정책은 ‘비원조경제’(Non beggar bowl)원칙이었다. 리콴유의 싱가포르는 시장확보 차원에서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했다가 2년만인 1965년 축출되 다시피 탈퇴했다. 당시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400$로 오늘날로 치자면 코소보 자치주정도에 해당했다. 싱가포르는 해외원조 대상국이었으나 리콴유는 해외원조를 거 부했다. ‘먹고 살 것이 없는 나라에서 원조를 받게 되면 헤어날 길이 없다’는 것이 당 시 리콴유의 생각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정책은 ‘경제영토의 인식’이다. 리콴유는 영국으로부터 싱가포르가 독립할 때 말레리시아 연방에 가입함으로써 시장적 배후지를 확보하려고 했으나, 말레이 연방 탈퇴 후, 경제영토를 동남아가 아닌, 미국과 일본, 유럽으로 재설정하게 된다. 그러한 아이디어는 이스라엘로부터 벤치마킹했던 것인데, 리콴유는 이스라엘이 미 국을 통해 전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적 가치를 깨달았던 것이다.

동시에 리콴유는 경제 영토가 넓을수록 국가 방위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날 인도네 시아나 말레이시아, 중국등이 인구 500만 싱가포르를 침략할 수 없는 배경에는 싱가포르가 이미 미국과 일본에 있어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라는 점이 작용한다. 싱가포르에는 엄청나게 많은 미국과 일본의 자산이 투자되어 있다. 그렇기에 싱가포르를 침공해 파괴한다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투자자산을 파괴한다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경제영 토를 확보한 싱가포르는 동남아에서 가장 강력하고 첨단화된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에 5개의 싱가포르를 건설하자

싱가포르의 경제가 기적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싱가포르라는 사회가 가져온 상업사회 전통에 리콴유의 기업형 정부운영,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과 솔선수범의 청렴성이 주효했다. 리콴유는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렸던 것은 아니었으며, 국내 정치 과정에서 여러번 위기를 맞기도 했다. 특히 도도하게 밀려오는 공산주의에 맞서 반공으로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관료들의 부정과 부패를 일소하고 국민경제의 삶이 부유해 지는 것 외에는 없다고 리콴유는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을 리콴유는 ‘싱가포르 전략’으로 삼고 ‘제3세계에서 1류세계를 만든다’는 ‘오아시스론’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한 싱가포르 전략은 ‘작은 정부, 큰 민간’이라는 모토로 요약될 수 있다. 동시에 기업 활동에 자유방임에 가까운 자유를 부여하고 정부의 정책은 항상 시장지향적으로 방향지워졌다. 그러한 제도 가운데는 우리가 사회주의나 국가 개입주의처럼 느껴지는 것들도 많지만, 제대로 성찰해 보면 원칙을 통해 ‘합리적 기대’가 가능하게 해서 시장 참가자들로 하여금 투자나 거래의 비용을 오히려 줄이는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싱가포르 정부의 시장개입정책은 이념 중립적인 친시장적이다.

싱가포르의 이러한 국가전략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중앙집권적인 정부 행정을 인구 500만 단위의 광역 자치단체로 나누고 여기에 싱가 포르와 같은 메가시티전략을 통해 ‘강소자치도시연합국가’와 같은 미래의 새로운 자치 행정도 검토해 볼만하다. 몇 개의 도시국가형 자치단체들이 재정과 사법의 독립권을 갖고 연방협약을 통해 책임적 자치행정을 이뤄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자치행정이 가능한 것은 싱가포르가 자원과 지정학적 불리함을 기압형 정부라는 시장경제원리로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과 ICT기술로 인해 경제활동의 공간적 제약이 사라지는 추세는 자치도시연합국가의 가능성을 더욱 보장 해 주고 있다. 한 도시국가의 경제적 영토는 이웃도시들을 넘어 글로벌화 될 수 있으며, 자치도시간에 분업도 가능하다.

한국의 서해와 남해를 가진 자치도시들은 중개무 역과 금융허브로 발전할 수 있으며 내륙에 있는 자치도시는 유통과 의료,교육, 소프트 웨어와 같은 분야로 특화될 수 있다. 아울러 강원도와 같은 산악지대의 자치도시는 스위스나 덴마크처럼 낙농과 관광, 식품산업으로 다른 자치도시들과 분업이 가능하다. 싱가포르는 우리에게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싱가포르는 ‘사회란 사람들이 일하기 위해 모인 곳’이라는 답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답을 싱가포르가 유지하고 있는 한, 싱가포르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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