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은 국가가 사사건건 '자율'의 영역에 개입해 규제를 양산하고 있는 흐름 때문이다. 심지어 노사정위원회는 이제 ‘경제사회발전위원회’로 점점 더 범위와 역할이 확대되는 추세로 진입했다. 어떻게 봐야 할까.
자유경제원은 25일 '노사정위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권위주의 국가의 권한을 축소하고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신장시키고 경제적 생산력을 높여 번영을 이룩해나간다는 의미에서 ‘노사정위원회’가 떠맡고 있는 사안들을 국회로 넘기고 국회에서 생산적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아래는 김영호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노사정위원회와 관련된 구체적 사안을 논의하기 이전에 우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한국 사회의 구체적 상황과 관련하여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국가와 개인, 국가와 시민사회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있다. 이 균형점이 과도하게 국가 쪽으로 기울 경우 개인의 자유와 시민사회의 자율적 활동이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역할에 국한되어야 한다.
이런 안정된 질서를 바탕으로 경제 행위와 노사문제는 시민사회의 자율적 관리에 맡겨 개인과 시민사회와 국가의 동시적 번영을 이룩해 나가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원리의 핵심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농경사회로부터 산업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이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면서 아직도 권위주의적 잔재가 남아 있다. ‘민주화’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과거 과대하게 팽창된 국가의 영역을 축소하고 조정하여 국가와 시민사회 간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시민사회’하면 ‘시민단체’를 연상하고 이들의 집합체로 생각하는데 이런 오해는 하루빨리 불식되어야 한다. 시민사회는 경제와 문화예술 등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으로서 국가의 부와 경제력과 창의력이 창출되는 민주사회 발전에 필요불가결한 가장 역동적인 장이다.
어느 국가든지 이런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규제하고 억압하려고 했을 때 그 국가는 몰락하든지 절대 빈곤에 허덕인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북한의 열악한 경제 수준은 모두 국가가 과도하게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억압한 데서 생겨난 것이다.
한국사회의 민주화 이후 그동안 과대 팽창된 국가 영역의 조정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어 왔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시대의 행정부 우위 체제에서 견제와 균형을 통한 진정한 의미의 삼권분립체제를 강화시켜 권위주의 국가의 권한을 축소하고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신장시키고 경제적 생산력을 높여 번영을 이룩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입법부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시민사회로부터 부여받은 대표성을 올바르게 행사하여 이러한 국민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정쟁의 장이 되었고 야당의 잦은 장외투쟁으로 극한적 정치투쟁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민주화의 부정적 현상의 파생물이 ‘노사정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 노사정위원회의 설립은 국회가 심각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든 ‘면피용 위원회’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진=연합뉴스 |
당연히 국회가 기업과 노조가 속한 시민사회의 제반 이슈들을 심도 깊은 토론을 통해서 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별도 조직을 만들어 국가의 재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위원회의 설립은 국회가 심각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든 ‘면피용 위원회’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의 설립은 민주화 이후 더욱 근본적인 국가운영 방식과 관련된 문제점을 보여준다. 권위주의시대가 끝나고 민주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국가는 더 이상 과거처럼 앞에 서서 나라의 경제를 이끌어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한국 사회에 등장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에서 보는 것처럼 이들은 국가의 지도 없이도 스스로 대내외적 자유경쟁 체제 하에서 잘 해나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화 시대의 국가는 시민사회와 기업이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통하여 자율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서비스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국가가 사사건건 시민사회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나가야 할 사안들에 개입하여 규제를 양산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위원회는 어떤 사안의 결정에 시한을 둠으로써 더욱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시간에 쫓기고 정치적 압력에 밀려 반시민사회적 결정들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위원회가 민주화를 내세운 김대중 정부에 의해서 설립되었다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이제 ‘경제사회발전위원회’로 점점 더 범위와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는 시민사회의 자율적 영역을 침범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조직으로 확대, 발전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제 ‘노사정위원회’가 떠맡고 있는 사안들을 국회로 넘기고 국회에서 생산적 논의를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되면 이 위원회의 필요성은 줄어들게 될 것이고 그 역할을 국회 내로 수렴되면서 국가 재원의 낭비도 줄이고 국회의 정상화도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