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여·야 대통령 후보가 잇따라 대전 철도 지하화 공약을 걸었다. 시민들과 지역 정가는 대전의 오래된 숙원사업이 해결될 가능성이 나타나면서 반색하고 있는 분위기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인한 현실화 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나온다.
1905년 경부선 철로가 부설되면서 대전역이 생겼다. 이어 호남선 서대전역이 생겨나면서 대전은 ‘교통의 중심지’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으며, 회덕에 속한 작은 농촌에서 인구 150만의 대도시로 성장하기까지 철도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철도가 오히려 도시 발전을 가로막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했다.
철도가 도시를 갈라놓아 생활권을 단절시키는 것은 물론 철도 인근지역에 소음, 분진, 진동 등 환경문제를 유발해 주거환경을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전의 철도 문제에 대해 여야 대선후보들도 관심을 보였다.
25일 국민의힘 대전시당에 따르면,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대전의 도심을 지나는 경부선 13km와 호남선 11km를 지하화한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월 22일 홍성 내포신도시에서 연설 후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이와 함께 신탄진역, 대전조차장, 대전역, 서대전역, 가수원역 등에 대해 역세권 개발까지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윤 후보의 공약대로 철도 지하화가 이뤄진다면 경부선과 호남선으로 3분할된 도시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도시 발전이 촉진될 것이다.
또한 낙후된 철도 주변지역의 획기적인 주거환경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공원이나 도로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존 철로 부지는 덤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월 12일 대전 세종 공약 발표에 앞서 대전e스포츠경기장 드림아레나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즉석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윤 후보의 공약에 앞서 지난 12일 대전을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경부선과 호남선이 통과하는 대전은 20세기 철도와 함께 성장한 철도 도시이지만 도시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공간 활용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경부선·호남선 일부구간 지하화로 도시공간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능이 축소된 신탄진 조차장 부지에는 공공주택중심의 레일스카이 복합단지를 조성해 주거안정과 낙후된 도심지역 활성화를 통한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민들은 환영했다. 특히 대전 동구, 대덕구 등 철도로 인해 실제피해를 겪고 있는 원도심 지역민들은 더욱 환호했다.
대덕구 송촌동에 거주 중인 A씨(45)는 “대전이 교통의 중심지라는 것은 이제 ‘옛말’에 지나지 않는다. 철도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지하화가 된다면 대덕구 주거환경이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어느 대선 후보든 당선된 후에 꼭 약속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전시도 경부선 철도 지하화를 최대 역점 사업으로 보고 지난해 말 ‘대전 도심구간 지하화 등 개발방안 연구용역’에 들어간 상태다.
대전 도심 통과 철도 지하화 구간./사진=대전시
시 관계자는 “지하화했을 경우의 개발 확장성 등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중”이라며 “국토교통부에서도 철도 지하화에 따른 법이나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지 용역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 2월 용역 결과가 나오면 국토부에 대전 철도지하화를 국가계획에 담도록 건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철도지하화 공약의 현실 가능성을 두고, 다소 비관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철도지하화 사업은 대전시의 숙원사업이지만, 그동안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난색을 표하면서 사업 예산이 나오질 않아 수십년째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전시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대통령 선거를 기회삼아 각자의 숙원사업을 줄줄이 요청하고 있다. 부산시 역시 철도지하화 사업이 숙원사업인 것은 마찬가지로, 1조 6000억 원에 육박하는 지하화사업을 요구했으며, 대구·경북은 18조 원에 달하는 신공항 건설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광주시는 올해 국가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3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호남권 광역 에너지밸리 조성사업’을 공약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각 지자체들이 앞다퉈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숙원사업을 공약사업으로 요구하고 있고, 그 규모는 이미 정부 예산을 넘어섰다는 집계도 나온다.
정부 예산은 당연히 한계가 있는 만큼 해당 사업들이 모두 공약으로 채택된다고 하더라도 모두 실현될 수는 없다.
한 지역 정가 인사는 “지금 대선후보들은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선 공약을 남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공약을 내걸었다고 해서 그대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의견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대전 철도지하화 공약은)전부는 아니더라도 축소된 규모로라도 추진되지 않겠냐”고 반문하면서 “타 지자체에 비해 예산 규모가 크지 않은 반면, 철도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고 지하화했을 경우 얻는 이익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이유를 댔다.
한편 대덕구 관계자는 “현재 철도지하화 사업은 대덕구 신대동에서 오정동 한남대까지의 일부 지하화가 확정됐다”면서 “타 지자체 사업은 모르겠지만 대전 철도지하화 사업은 ‘공수표 공약’은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