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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탐험(51)-좋은 스윙은 숲을 스치는 바람과 같다

2015-04-02 09:4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방민준의 골프탐험(51)- 숲을 스치는 바람 같은 스윙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30여 년 전 친구가 내게 털어놓은 장인의 말을 이제 내가 하게 되다니.
장성 출신의 장인을 둔 그 친구는 장모로부터 들은 장인의 일화를 동반자들에게 털어놓았다. 골프란 것이 얼마나 미묘한 지 끝없이 배우고 익혀 어느 수준에 도달해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추락해 다시 고통을 참으며 절벽을 기어오르는 불가사의한 운동이라는 얘기를 나누다 나온 얘기다.

그가 장모로부터 들은 것이란 지독한 골프광인 장인이 라운드를 하고 귀가할 때마다 골프가방을 현관에 들여놓으며 탄성처럼 한숨처럼 털어놓은 얘기다.
“오늘 잘 치셨지요?”
“그럼, 잘 쳤지. 그런데 여보, 이제야 골프가 뭔지 알 것 같아!”
“언제부터 그 얘기 하신지 알아요?”
“요즘 아니던가?”
“벌써 몇 년째인데요. 한 4~5년 되었을걸요?”
“허, 그런가. 어쨌든 골프가 뭔지 이제 겨우 알 것 같다니까.”
“그 참, 골프란 운동이 별나기도 하네요!”

요즘 내가 그 친구 장인이 된 기분이다.
따지고 보면 최근 내가 무릎을 치며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그리 새로울 것도 없고 내가 전혀 몰랐던 것도 아니다. 골프를 시작한지 2년 쯤 되면 주변의 고수나 레슨서, 혹은 골프 채널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같은 내용이라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 하고 온몸과 마음으로 절실히 받아들이는 것 하고는 천지 차이다.

일찌감치 골프란 히팅(hitting)이 아니라 스윙(swing)의 운동이란 것을 간파하고 레슨프로들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임팩트(impact) 다운블로(down blow) 헤드스피드(head speed) 등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단신인데다 근력도 시원치 않아 부드러운 스윙만으로는 버티기가 쉽지 않아 자연스레 레슨프로들이 강조하는 요령을 떨쳐 버릴 수도 없었다. 말하자면 원칙은 알지만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골프를 해왔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골프를 해온 셈이다.
그러면서도 30여 년 간 대부분 70대 타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6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도 70대 타수를 자주 벗어나지는 않으니 골프를 모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스윙의 시작과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믿음을 갖고 매트 위에 볼이 없다고 생각하며 단지 일정한 호를 완성시킨다는 이미지로 스윙을 해보면 골프의 신천지를 맛볼 수 있다./삽화=방민준
헌데 최근 1~2년 사이 70대 타수를 유지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해왔다. 나이와 함께 비거리와 근력이 줄어들어 골프깨나 친다는 40~50대 동반자들과 라운드를 하면 티샷은 40~50미터 차이가 나 파온이 쉽지 않았다. 남들보다 두세 클럽 길게 잡아 파온을 시도하고 파온에 실패하면 어프로치로 오케이를 받아내 간신히 버텨내는 상황이었다.

‘궁즉통(窮卽通)’이라고 했던가. 어떻게 장강(長江)의 뒷물에 밀리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없을까를 궁리하다 찾아낸 열쇠가 바로 ‘기본으로의 회귀’다.
골프에서 방향성과 비거리를 보장해주는 비법은 다름 아닌 부드러운 스윙이라는 것은 골프채를 잡은 지 1년쯤 되면 모두 공감한다. 그리고 걸림 없고 옹이 없는 부드러운 스윙을 체득하기 위해 부단히 땀을 쏟는다.

대부분의 골퍼들이 ‘부드러운 스윙’을 익히기 위해 온갖 학습방법을 동원한다. 7번 아이언만으로 몇 개월 똑딱이 볼을 치는가 하면, ‘노볼 메소드’(No ball method; 볼이 없다고 생각하고 빈 스윙하듯 클럽을 휘두르는 연습방법)를 시도하거나 스키점프를 연상하며 꿈틀대는 동작을 최소화하는 스윙을 익히기도 한다. 궁도에서의 활 쏘는 자세를 상상하며 연습하는가 하면 서예의 기본인 한일자 쓰기를 하듯 시종여일한 일필휘지(一筆揮之)를 머릿속에 그리기도 한다.

최근 장강의 뒷물결에 떼밀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내게 번개 같은 깨달음을 준 것은 앞에 소개한 방법과 전혀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이미지로 보면 비틀거리지 않고 힘찬 한일자를 쓰는 일필휘지와 비슷하다.
굳이 다르다면 볼과 임팩트와 중간 스윙을 없애버리는 이미지를 갖는다는 것이다. 백스윙과 다운스윙 그리고 팔로우 스윙만 제대로 갖춰지면 스윙은 완성된다고 본다. 셰익스피어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 is well that ends well.)라고 했지만 골프에선 ‘시작과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 is well that starts and finish well.)가 진리다.

궁술을 예로 들어보자. 정확히 목표를 겨냥하고 흔들림 없는 자세로 시위를 당겼다 놓으면 시위를 떠난 화살은 중간의 궤도는 생각할 것도 없이 목표물로 날아가게 돼있다. 화살이 날아가는 중간 궤도는 화를 쏘는 사람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궤도는 의지와 상관없는 유체역학이 만들어낼 뿐이다.

골프의 스윙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백스윙과 다운스윙이 제대로 되고 목표점이라 할 수 있는 팔로우 스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만 하면 중간 과정은 우리의 의지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임팩트니 다운 블로우니 하는 생각을 갖고 볼을 가격하려 하기 때문에 손과 팔에 힘이 들어가고 볼을 강하게 쳐내려는 동작을 함으로써 몸의 중심축이 흔들리고 스윙 궤도가 흐트러지는 것이다. 자연히 스위트 스팟에 볼을 맞히지 못하고 스윙 자체도 완전한 팔로우에 이르지 못하고 중도에 흐지부지 되고 만다. 파워는 줄어들고 방향성도 나빠진다.

시작과 끝만 염두에 두는 스윙에서 볼은 단지 궤도 선상에 있다가 지나가는 클럽과 만날 뿐이다. 스윙 자체는 볼이 있으나 없으나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일필휘지로 지나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볼은 우연처럼 궤도 선상에 놓여져 있다가 클럽페이스와 만나는 것뿐이다.

‘스윙의 시작과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믿음을 갖고 매트 위에 볼이 없다고 생각하며 단지 일정한 호를 완성시킨다는 이미지로 스윙을 며칠 해보니 골프의 신천지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부드러운 동작임에도 볼은 곧바로 멀리 날아갔다. 힘도 들지 않았다.
말귀를 알아들을 만한 주변 지인에게 이 비법을 전수해주었더니 다음 날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다가와 내 귀에 입을 갖다 댄다.
“형님 좋은 시절 다 갔어요. 이 비법을 제가 알았으니 말입니다.”

골프채는 볼을 쳐내기 위해 필요하고 볼은 골프채와 접촉함으로써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당연히 골프채와 볼을 따로 떼어놓아서는 골프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골프채와 볼이 지나치게 가까워도 골프를 망친다.
미스 샷은 골프채를 강하게 움켜쥐고 과도한 힘으로 볼을 때리려고 할 때 필연코 발생한다.

볼을 힘껏 쳐내려니 자기도 모르게 골프채가 순간이나마 볼에 머물려 한다.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샷을 볼에 머물게 하려니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근육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몸의 균형도 무너진다. 자연히 샷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딴판으로 이뤄져 미스 샷을 유발하고 만다.
귀가 닳도록 듣게 되는 '힘을 빼라' '때리지 말고 지나가라' '스윙 궤도로 쳐라’는 말은 모두 골프채를 볼에 집착시키지 말라는 뜻의 여러 가지 표현일 뿐이다.

어디 하나 뒤틀림 없는 원만한 타원형을 그릴 수 있는 스윙이라면 골프채가 볼에 머물 틈이 없다. 바람결과 함께 스쳐지나갈 뿐이다. 마치 인파 속을 헤치고 지나갈 때 소매를 스치고 어깨가 부딪히지만 머물지 않고 지나가듯. 산골짜기를 흐르는 바람이 숲 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숲 속에 머물지 않듯.
좋은 샷은 골프채가 볼의 소매를 스치고 지나가는 스윙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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