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58)- 나라를 위한 고귀한 희생 혹은 탐욕의 희생양?
에우리피데스(BC 484?~BC 406?)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계백은 왜 가족을 죽여야 했을까? 여기서 가장이 가족에 대한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계백이 가족의 목숨을 거둔 것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물론 현대의 관점으로 본다면 두말 할 나위 없이 계백은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의 사회적 인식과 상황을 헤아리면 관점은 크게 달라질 수 있고, 그 행위의 정당성에 대해 쉽게 단정하기 어렵게 된다.
계백은 이미 기울대로 기운 전황에서 오천 명의 결사대로 조국을 수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다만 죽기로 싸운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오천 명의 장졸들이 모두 죽음을 불사한 용맹을 보여줄 때만 기대해 볼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패전하고 죽었을 때, 가족 또한 무사하지 못하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설사 가족들이 목숨을 보존할지라도 적의 노예가 되는 치욕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의 목숨을 스스로 거둠으로써 오천 결사대에게 모든 것을 버린 자신의 비장한 결의를 보여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패전할 경우 백제의 모든 백성이 신라의 노예가 되는 치욕을 당한다는 것을 환기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계백은 가족의 희생을 통해 오천 결사대의 옥쇄(玉碎)의 각오를 끌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장졸들에게 ‘살고자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라고 호소한 심정과 같았을 것이다.
아무튼 계백의 행동에서 어떠한 사적 욕망의 의도를 읽기는 어렵다. 그에겐 오로지 조국의 수호에 대한 열망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백의 그러한 결연한 의지와 가족들의 생존 욕구가 충돌했었는지 여부는 당시의 구체적 상황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어 알 길이 없다.
계백의 조국을 위한 살신성인을 촉구하기 위해 계백의 아내와 자식들이 먼저 자신들의 목숨을 거두어달라고 요청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가족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계백의 결단과 의지의 실행이었을 수도 있다. 계백과 가족 간에 어떠한 호소와 설득, 어떠한 절망과 슬픔의 공유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하여간 전장에 나서는 장수가 가족을 희생시키는 비극적 이야기는 그 행위의 정당성을 놓고 다양한 논쟁이 가능할 만큼 당시의 사회적, 윤리적 의미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비극은 트로이 전쟁에 나선 헬라스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닥쳤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는 당시의 아가멤논 가문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작품으로 재현해냈다.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Iphigeneia he en Aulidi)>가 그것이다.
트로이 전쟁을 위해 출항하려던 헬라스 연합함대는 풍랑으로 발이 묶인다. 아울리스 항에서 출전을 기다리던 헬라스 연합군 진영에선 서서히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출항이 늦어질수록 트로이 정복에 대한 결의와 단결력이 흩어질 여지가 있었다. 출전을 서두르는 군사들에게 자신들의 안전을 담보해 줄 희생양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자신의 큰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게 되는 이야기가 이 비극의 줄거리이다.
이 작품은 인물 간의 갈등 상황이 여럿 제기된다. 우선 예언자의 말에 따라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켜야 한다고 압박하는 동생 메넬라오스와 딸을 희생시키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형 아가멤논의 갈등이 전개된다.
헬라스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써 여러 나라의 군대를 힘들게 모았고, 이들을 결속하여 출정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 또한 아가멤논을 짓누른다. 그는 헬라스 왕국 중에서 가장 번영한 나라인 미케네의 왕으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출정한 다른 왕국들의 왕들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던 것 아니었다. 거의 수평적 협력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무언가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결국 아가멤논은 메넬라오스의 성화에 못 이겨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키려 한다는 거짓 핑계를 대어 딸을 아르고스에서 아울리스로 데려 오게 한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곧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마음을 돌려 딸을 보내지 말라는 편지를 사자에게 급히 전하게 한다. 그러나 편지는 전달 과정에서 메넬라오스에게 제지당하고, 그 사이에 이피게네이아와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 왕비가 진중에 도착한다.
모든 계략이 들통 나자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남편 아가멤논을 비난하고, 이피게네이아는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결혼 상대자로 거론되었던 아킬레우스 역시 이피게네이아를 구하려 간여한다. 하지만 희생 제물을 바쳐서라도 출정을 바라는 병사들의 압박으로 희생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딸을 희생시키려는 무정한 아버지 아가멤논에 대한 클뤼타임네스트라의 분노와 원한은 훗날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 승리하고 미케네 왕궁에 개선했을 때 그를 살해하는 동기로 작용한다.
▲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입성했던 미케네 왕성의 사자문, 아가멤논은 이 문을 통해 자신의 왕궁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던 중 왕비인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도끼를 맞아 죽게 된다. 자신의 큰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가멤논이 희생 제물로 바친 것에 원한을 품고 남편을 살해한 것이다. ⓒ박경귀 |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 왕비는 누가 희생제물이 될 것인지 자신의 딸을 제물로 스스로 내놓은 아가멤논을 비난한다. 이피게네이아 역시 “고상한 죽음보다 비참한 삶이 더 나아요”라며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연합군의 출정이 지연될 경우 아가멤논의 왕국이 다른 헬라스 나라들의 원한을 사서 가족 모두 죽게 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아가멤논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호소한다. 게다가 아킬레우스에게서 헬라스 연합군들이 이피게네이아를 끌고 가기 위해 몰려 올 것이란 이야기를 듣는다.
이피게네이아의 심정에 변화가 생긴다. 그녀는 헬라스 전부가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수많은 전사들이 헬라스를 위해 죽으려 하는 마당에 자신의 한 목숨이 이들의 장도(壯途)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죽음으로써 “헬라스의 해방자”라는 명성을 얻는 길을 택한다.
이피게네이아의 고귀한 결단을 보여주는 이 대목은 그녀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극명하게 부각시켜 그녀의 죽음을 성스럽게 승화시킨다. 하지만 살고 싶었던 그녀가 마음을 바꿔 죽음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은 그녀의 의지의 일관성을 훼손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개인의 심리가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게 아닌 데 에우리피데스가 너무 쉽게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그렇다.
아무튼 이피게네이아는 제단 앞으로 나아가 목을 내민다. 예언자 칼카스가 예리한 칼로 내리치는 순간 신비한 일이 벌어진다. 제단에는 조국을 위해 인신 공양하려던 이피게네이아가 아닌 암사슴 한 마리가 피에 흠뻑 젖어 버둥대고 있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이 인간의 고귀한 피로 자신의 제단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이피게네이아를 데려가고 대신 암사슴을 희생시킨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작품에서 이피게네이가가 실제로 죽지 않은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암사슴이 대신 희생한 것으로 그린 것은 이피게네이아의 고귀한 희생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이피게네이아가 죽지 않았다면 훗날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죽여 복수하는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피게네이아가 희생 제물이 되려는 순간 암사슴으로 대신하며 아르테미스 여신이 제지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
이피게네이아의 죽음은 트로이 전쟁의 첫 번째 희생이었다. 헬라스 진영에는 트로이를 정벌하고 헬레네를 구출해 온다는 전쟁 명분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연합함대의 출정을 막는 거친 바다의 풍랑을 가라앉히기 위해 현실적 방도가 요구되었다. 하여 신의 도움이 없이는 출정도 승전도 어렵다고 믿는 헬라스 인들에게 신을 달래고 신을 경배하는 의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의 죽음은 헬라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인 아버지 아가멤논의 리더십 확보를 위한 전략적 희생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죽음은 동요하는 헬라스 연합군을 다잡고 성공적 출정을 위해 심리적 결속을 다지는 제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고귀할수록 신을 경배하는 인간의 정성은 지극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그들은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이런 신성하게 위장된 집단적 도착(倒錯)이 인신공양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피게네이아는 헬라스의 자유를 희구한다는 신성한 명분은 물론, 약탈에 굶주린 전사들의 탐욕스런 저의까지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신의 희생이 헬라스 연합군의 결속과 출정의 밑거름이 된다면 자신 역시 전쟁 영웅들 못지않게 불멸의 명성을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그녀가 자신의 죽음이 헬라스의 해방과 영광의 초석이 된다고 믿는 순간 그녀의 죽음은 수동적 비극에서 능동적 환희로 바뀐다. 그녀가 죽음을 자청한 순간, 아킬레우스는 “나는 그대 때문에 헬라스가 부럽고, 헬라스 때문에 그대가 부럽소”라며 경의를 표한다. 이피게네이아의 고귀한 결정에 대한 예찬에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은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서 신의 가호에 바라는 나약한 인간의 희구를 담은 인신공양의 풍습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적 고통이 운명처럼 주어진 상황을 그리고 있다. 특히 한 인간의 죽음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충돌하는 시선과 심리적 갈등이 절묘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거룩한 정신이 신을 감동시켜 구제받게 된다는 신의 가호의 경건함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에우리피데스는 인간의 희생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인간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또 어떤 선택이 가장 아름다운 선택인가를 관객들에게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 그의 해법은 하나의 예시이지만 영웅적 행위를 우상시하는 헬라스적인 선택임에 틀림없다. 아니 에우리피데스는 그저 구전되던 설화를 충실하게 묘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피게네이아가 실제로 희생되었는지 아니면 암사슴이 대신 희생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아무튼 헬라스 인들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에우리피데스는 후속편 성격으로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를 써서 이피게네이아가 살아서 타우로스족의 나라에서 아르테미스 신전의 여사제로 있다가 탈출하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이피게네이아는 자신의 고귀한 희생으로 가장 아름다운 헬라스 여인이 되었다. 그리고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헬라스 사람들에게 그리고 조국과 가족 사이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내몰린 인간들에게 진정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해준다. 죽음의 의미에 대한 숙고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 추천도서: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2 》,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1, 2쇄). 72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