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소담 전 사회안전방송 아나운서 |
#에피소드 1. “꼬레아 굿, 삼성 나이스!”
창문에 이마를 바짝 댄다. 착륙 5분 전. 사방엔 구름뿐이고 세상은 얼마나 낮은 곳에 존재하고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다가도 구름이 걷히는 건 순식간이다. 그렇게 이마를 댄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미지의 타국에 사뿐히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되곤 한다.
이번에는 좀 달랐다. 구름 사이로 솟아 오른 산봉우리가 갑자기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니 여기에도 불쑥, 저기에도 불쑥. 그 나라는 그렇게 먼저 내게 다가왔다.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큰 10대 산 중 8개가 모여 있는 나라.
지난 1월 ‘2015 아시아 자유 포럼(Asia Liberty Forum)’ 참석차 네팔에 다녀왔다. 2006년까지만 해도 공식 국명이 네팔 왕국이었던 이 나라는 2007년에야 왕정이 종식되고 민주공화국이 수립됐다. 가장 최근에 세워진 민주공화국이자 석가모니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이런 독특한 나라에 언제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싶어 독특한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었는데, 웬걸. 공항 도착과 함께 짐을 홀랑 잃어버렸다. 경유지였던 중국에서 이륙 전 부친 짐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절망. 일주일간의 일정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막막함이 밀려왔다.
황망한 가운데 떠오른 것은 류시화 작가의 인도 여행기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었다. 인생에 달관한 구루들이 길가의 잡초처럼 흔하다는 그 나라, 인도와 멀지 않은 네팔에 왔으니, 노트북에 카메라까지 잃어버렸어도 여행이 끝나갈 즈음에는 인생에 대한 어떤 통찰을 얻은 달관자가 된 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구루는 정말 있었다. 시장통에서 오렌지색 터번을 쓰고 인생을 달관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한 것이다. 곧장 그에게 다가갔다. 가방 잃어버린 얘기를 해봐야지. “그 가방이 왜 당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원래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그런 류시화적(的)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가간 내게 돌아온 대답은 압권이었다. 어디에서 왔냐고 먼저 말을 건 그가 이내 엄지를 척 들더니 내게 건넨 말.
“오, 아 유 쁘롬 꼬레아? 꼬레아 굿 삼성 나이스!”
네팔의 현자는 갤럭시 유저였다.
#에피소드 2. 김기종은 김기종일 뿐이다.
3월 5일 마크 리퍼트(Mark Lipert) 주한 미국 대사가 오전 7시 35분 한국인 김기종이 휘두른 칼에 피습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이 얼굴 쪽으로 흉기를 휘두른 탓에 리퍼트는 안면부에 자상을 입고 팔꿈치에는 관통상을 입었으며 새끼손가락의 신경이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다.
상황은 엄중하게 돌아갔다. 중동 4개국 순방차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방문하고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며 “리퍼트 대사 피습은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던 각 단체들은 재빨리 ‘행동’에 돌입했다.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현수막과 플랜카드가 등장하기까지 채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오프라인이 전례 없이 빠른 행동에 돌입한 것만큼이나 온라인의 상황도 신속하게 진행됐다.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트윗과 페이스북 포스팅이 쏟아져 나왔다. 개중에는 김기종에 대한 거센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 와중에 역시나 이번에도 빠지지 않은 것은 김기종이라는 범인(犯人)을 범인(凡人)과 혼동하는 관점이었다. 김기종이 테러를 벌인 것에 대해 한국인 전체를 싸잡아 “부끄럽다” “미개하다”며 자기비하를 하는 모습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인들이 한국인의 미개함에 대해 ‘드디어’ 알게 되었으니 한미동맹은 이제 끝이라는 자조도 보였다.
보기가 불편했다. 미국인 친구에게 물었다. 한국인들이 리퍼트의 쾌유를 비는 수준을 넘어 이렇게 자국을 비하하는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이 대답 또한 압권이었다.
“각국에 파견돼 있는 미국 대사들은 별의 별 일을 다 겪어. 다름 아닌 ‘미국’의 대표이기 때문이지. 미국인들도 그들이 겪는 사건들에 어느 정도는 익숙해. 어느 나라에나 그런 극단적인 반미주의자들은 있거든. 하지만 그런 비정상적인 ‘예외’를 마치 한국인의 잘못인양 간주하고 부끄러워한다면? 소담, 미국인들은 그거야말로 ‘미개한 것’이라고 생각해.”
#에피소드 3. 좀 특별한 페친, 마크 리퍼트
얼마 전 조금 특별한 페이스북 친구가 생겼다. 바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다. 피습 이후에도 그는 특유의 ‘곰돌이 아저씨’같은 여유를 잃지 않은 것 같다. 주한 미국대사로서는 매우 젊은 1973년생다운 세련된 감각의 발로일까.
그는 피습 당일에도 “같이 갑시다!”라는 트윗을 올려 ‘2015년 첫 유행어’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3월10일 퇴원한 이후에는 쾌유를 빌어준 한국인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가 올라오더니 업무에 복귀한 19일부터는 ‘산책’ 사진이 매일 올라오고 있다.
입원 중에도 “김치를 먹으니 더 힘이 난다”고 말해 많은 한국인들을 웃게 만들었던 그다. 지난 주말에는 삼계탕과 해물파전을 먹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제법’ 아닌가?
이쯤 되면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의 상처가 잘 아물어 건강을 회복하기만 한다면 일련의 사건은 좋은 ‘추억’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너무 심한 상상일까? 허나 현실정치에서 ‘순간의 위기’가 ‘평생의 자산’으로 승화되는 케이스는 생각보다 흔하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총격을 받은 이후 더 큰 인기를 누리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위기를 겪지 않는 리더’를 원하지 않는다. 위기를 통해 ‘더욱 강해지는 리더’를 원한다.
리퍼트의 위기가 그럭저럭 일단락된 것 같으니 이번엔 한국의 위기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자부심의 위기’ 라고도 볼 수 있을 이 현상에 굳이 긴 닉네임을 붙여보자면 ‘뭐든지 재빨리 미개하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자존감의 위기’다.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매사에 ‘미개하다’는 표현을 애용하게 된 걸까.
사실 우리가 ‘미개하다’는 말에 몰입한 건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작년 6월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의 막내아들, 별칭 ‘정몽주니어’가 세월호 사건에 대처하는 한국인들에 대해 말하면서 나온 표현이다. 이 사건으로 정몽준 후보는 큰 타격을 입었지만 ‘미개하다’는 표현은 2014년 최고의 유행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 각자 모두들 자신의 기준에서 맞지 않는 모습에 대해 ‘미개하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기종 사건에 대해 한국 전체를 ‘미개하다’고 말하는 관점은 어떤 논리에서 비롯됐을까. 많은 사람들은 김기종 한 사람의 일탈이 한미동맹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은 분명 진실이다. 미국은 이제 한국에 대해 예전처럼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리퍼트 개인이 쿨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김기종은 한미동맹에 분명히 불가역적인 상처를 남겼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김기종=전체 한국인’이라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필요는 전혀 없다. 그렇게 되는 시점에서 김기종이 이와 같은 사건을 벌인 이유와 그 배후에 대해서 면밀히 추적할 명분을 우리는 잃어버리고 만다.
▲ ‘김기종=전체 한국인’이라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필요는 전혀 없다. 그렇게 되는 시점에서 김기종이 이와 같은 사건을 벌인 이유와 그 배후에 대해서 면밀히 추적할 명분을 우리는 잃어버리고 만다. /사진=YTN 뉴스화면 캡처 |
그는 분명히 일탈자다. 그러면서도 대학교수 경력과 시민단체 대표 직함을 갖고 있는 ‘멀쩡한 스펙’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 일탈과 멀쩡함의 간극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을 밝혀내는 것이 남은 수순일 뿐, 그가 벌인 행각에 지나치게 몰입해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또 하나 떠올려 볼 만한 것은 2007년 4월16일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다. 범인의 이름을 따 ‘조승희 사건’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많은 한국인들은 조승희 한 명으로 인해 일게 될 미국 내 반한감정에 대해 우려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미국인도 조승희와 한국인 전체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인의 국민성을 아주 단적으로 보여준 이 사건은 사실 ‘미국인의 국민성’ 이상의 시사점을 갖고 있었다. 이와 같은 태도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초월해 대단히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국민성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민도는 8년 전에 비해 얼마나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리퍼트 사건과 관련해 우리가 진정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예외를 전체로 치환해 미개하다고 선언하는 버릇’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느냐다.
마지막으론 다시 네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한국 밖으로 나가면 누구도 한국을 모른다’는 말이 상당히 큰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한국인들로서는 거의 관심도 없는 네팔인들조차 한국에 대해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마지막 날 공항 가는 길에 탑승한 택시의 기사는 “관광객 중 세련되고 멋있는 건 다 한국인들이더라”며 역시 자신의 갤럭시폰을 내게 자랑했다.
공식일정 후 각국에서 온 포럼 참석자들과 맥주를 한잔 하게 되었는데 일행 7명 중 5명이 삼성의 ‘갤럭시’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호텔에도 공항에도 가는 곳마다 삼성과 LG가 만든 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역시나 자조의 수단으로 자주 등장하는 “두유 노우 코리아?”와 같은 질문은, 던져진다면 그야말로 ‘뜬금포’가 될 만큼 불필요한 것이었다.
지나친 ‘국뽕(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된 행태를 지칭)’에 빠질 필요는 물론 없다. 그렇다고 늘 자국을 비하하는 것이 멋있고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국력이 발전했으면 발전한 만큼의 자부심을 갖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합리성이 아닐까. 리퍼트의 상처가 아물기 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상처, 뭐든지 비하하고 보는 그 피해의식을 먼저 아물게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소담 전 사회안전방송 아나운서
(이 글은 굿소사이어티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