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성완종 리스트? 진실은 저 너머로...마녀사냥 경계해야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자살은 경우가 다르다. 온갖 설왕설래가 난무한다. 노무현의 자살은 그를 그들만의 신으로 만들었다. 부엉이 바위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야권 성향의 언론 및 정치적 동지들로부터도 온갖 비난을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하고 나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오른다.
성완종도 마찬가지다.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웃옷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 일명 ‘성완종 리스트’가 정계를 들쑤시고 있다. 현 정부의 핵심 실세들을 모조리 거론하는 메모를 통해 일부 언론과 반정부 성향의 국민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정도다.
성완종 리스트를 접하는 누구나 혀를 내두르게 된다. 성완종 전 회장의 예지력이 대단하다고도 볼 수 있다. 메모에 거론된 모든 이가 현 박근혜 정부의 정치 실세 아니면 주목받는 정치인들이다. 김기춘 허태열 이병기 이완구 홍준표 유정복 홍문종 등 최근 2~3년간 정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이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흡사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박근혜 대선 후보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듯한 리스트다.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
검찰수사를 이기지 못하고 본인의 의지로 생을 달리 한 성완종은 건설업계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에 비교될 정도로의 자수성가형 사업가다. 초등학교 중퇴 후 신문배달 허드렛일부터 시작하여 수십년간 경남아너스빌로 유명한 경남기업을 일구는 등 성공한 기업가다. 사회공헌 장학사업도 열심히 임했던 성완종 전 회장이다. 39세에 사재 31억 원을 털어 기금을 조성하고 이후 25년간 2만 5천명에게 300억 원의 장학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성완종 전 회장의 추락은 역설적이게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였다. 2004년 비례대표 낙선 이후 2012년 충남 서산태안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당선해서 국회에 입성하지만, 이내 공직선거법을 위반해 의원직을 상실한다. 경남기업의 워크아웃으로 인해 성완종의 재산은 모두 녹아내린다. 성완종의 재산은 지난 2년 새 160억 원이 줄어, 2014년도 국회 정기 재산변동사항에서 (-)7억 5천만 원으로 신고되기도 했다.
▲ 자원외교 비리의혹, 성완종 전 회장 사망…경남기업 직원·여야 '충격' /사진=MBN영상캡처 |
성완종은 최근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참여하여 250억 원의 경남기업 자본을 횡령하고 800억 원대의 사기 대출을 받은 혐의로 인한 것이다. 성완종 전 회장은 검찰수사에 대해 죽음으로 결백을 호소했다.
공은 검찰에게로 넘어갔다. 이제 죽음으로 결백을 호소한 성완종 전 회장이 과연 해외 자원개발과 관련해 불법을 저질렀느냐의 여부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성완종 개인에 대한 검찰수사는 종료될 수밖에 없다. 세간의 관심은 성완종 메모 리스트가 사실이냐 아니냐에 온통 쏠리게 되었다.
성완종 리스트의 진실과 사실을 구별해 보자. 진실은 성완종 본인만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유명을 달리 해 진실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남아있는 사실관계는 검찰수사를 받던 성완종의 메모와 녹취파일의 존재다. 여기에는 정치인 8명에게 금품을 전달했는데 6명에게 준 금액과 1명에게 건넨 시점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다만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
성완종에 대한 사실은 몇 가지 더 있다. 보유 재산이 마이너스 7억 원에 달할 정도로 성완종 전 회장은 경제적으로 파산한 상태다. 물질적으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점이다. 성완종은 한창 횡령 및 사기 대출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기도 했다.
▲ 경남기업 자급횡령 혐의 성완종 전 회장, 검찰 출두 /사진=MBN영상캡처 |
여기에 더해 가장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긴 하다. 자살 이후 성완종 개인이 어떠한 불법을 저질렀는지 밝히기가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성완종 개인의 범죄행위에 대한 사실확인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이 성완종 리스트를 둘러싼 대표적인 사실이다.
간단한 약식재판이 아니라 3~4년 이상 고등법원 항소심 및 대법원에 이르게 재판을 겪어본 자들은 안다. 실제로는 죄를 저질렀지만 죄없음을 포장하고 무죄판결을 받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없는 죄를 만들어서 유죄판결로 끝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법정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고나 검찰이 증거를 조작해서 재판 결과가 갈릴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다. 근거 없는 표적수사는 허탕에 그치기 일쑤다.
성완종 메모 리스트를 대하는 언론에게 당부한다. 부화뇌동하지 말고 의혹이 아니라 사실만을 전달해야 한다. 근거 없는 의혹 입히기는 스스로 기레기 찌라시 언론임을 자인하는 격이다. 진실은 성완종의 자살로 저세상에 묻혔다. 현 정권 유력 정치인 8명의 의혹 리스트를 쓰라면 필자도 쓸 수 있다.
자신들의 반정부 성향을 드러내고 싶다면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서 하라. 아직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수십 언론이 청와대 십상시 운운하던 게 작년 엊그제의 일이다. 이제는 언론의 이런 몰염치함을 계속 지켜보기도 지겹다. 음모론은 방구석에 기거하는 인터넷 악플러의 전유물은 아니라지만, 언론이라면 음모나 의혹이 아니라 사실로 승부하라.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