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입임대주택은 2004년 첫 도입된 후 19년째 무주택 서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 임대주택을 신축할 필요 없이 기존 주택을 공공임대로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공급주체 입장에서도 효율적이다. 매입임대주택의 수요도 임대차 시장 불안 장기화로 증가했다. 이제는 매입임대주택의 품질과 공급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핵심 정책으로 떠오른 매입임대주택 제도의 현주소를 진단해 봤다.<편집자주>
[매입임대 현주소-中]SH, '깜깜이' 입주자 모집?…'매입약정' 방식 논란
[미디어펜=이다빈 기자]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야심차게 선보인 '매입약정형 매입임대주택'이 수요자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잇따른 매임임대주택 예산 낭비 지적에 신속한 공급을 위한 방안을 도입했다는 게 SH의 설명이지만, 오히려 '깜깜이' 매입임대주택이 되버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취임한 김헌동 SH 사장이 '공가 매입주택 해소' 등 경영 성과 달성을 위해 수요자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SH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청약경쟁률./사진=SH
SH가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3일 간 진행한 '2022년 1차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입주 대기자 모집' 결과, 신혼부부Ⅰ·신혼부부Ⅱ 등 모든 공급 유형의 신청인원이 미달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00명 모집한 '신혼부부Ⅰ' 유형에서는 1순위 255명, 2순위 410명, 3순위 46명 등 전체 711명이 접수해 0.3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900명을 모집한 '신혼부부Ⅱ' 유형에서는 1순위 136명, 2순위 340명, 3순위 14명, 4순위 22명 등 512명이 신청해 0.57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됐다.
매입임대주택은 공공이 도심 내 기존 주택 등을 매입한 후 보수 또는 재건축해 무주택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조건으로 임대하는 공공 임대주택이다. SH는 이달 접수를 받은 입주 신청자들에 대한 서류 제출 및 심사 절차를 거치고 있다.
◆"위치도 면적도 몰라요"…선 모집 후 주택공개, '깜깜이' 신청
SH의 매입임대주택이 수요자들의 외면을 받은 이유로 공급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입주자 대기자 모집에는 '매입약정' 방식이 적용됐다.
매입약정 매입임대주택은 신규 매입임대주택 예상 가구 수와 보수 중인 가구, 향후 입주자 퇴거로 인해 발생할 공가 등을 고려한 인원 만큼의 입주 대기자를 사전 모집해 기존 및 신규 매입임대주택 물량을 최종 입주대기자 명부상 순번에 따라 순차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SH는 지난해 9월 원활한 임대주택 공급을 위해 매입약정 방식을 도입했다고 밝혔지만 수요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매입약정 매입임대주택이 외면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가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수요자가 신청 접수 시점에서 입주 가능한 임대주택과 구체적인 동호를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SH가 이번에 모집한 총 매입임대주택 예비 입주자 수는 1900명으로 지난 19일 서류심사 대상자 발표를 마쳤다. 서류 심사를 통해 최종 대상자가 정해지면 오는 7월 20일 최종대상자가 발표된다. 입주 가능한 매입임대주택 공개 기간과 주택 목록은 최종대상자가 발표된 후에 안내 될 예정이다. 수요자들은 8월 이후에야 홈페이지를 통해 입주 가능한 매입임대주택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모집공고문에서 확인 가능한 SH 매입임대주택의 정보는 '주택 소재지: 서울특별시 전 지역', '주택 유형: 다세대‧다가구‧연립‧오피스텔', '주택 방 개수: 2~3개' 뿐이다. 반면, 매입약정 도입 전 지난해 진행한 매입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에서는 수요자들이 접수 시점에 주택 별 평면도, 내부·외관·주변환경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2021년) 1차 청년 매입임대주택 입주자 모집 당시 공개된 임대주택 평면도 및 외관 사진./사진=SH
SH 관계자는 "구체적인 주택 정보는 제시되지 않고 있지만 대략의 주택 유형이나 평균 임대료 수준은 파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매입임대주택의 열악한 주거 여건에 대한 수요자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주체인 SH가 기본적인 주거 여건 조차 확인 할 수 없는 시대 역행적인 방식을 도입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매입임대주택 품질이 열악하고 교통·학군 등 주거 여건이 좋지 않다는 인식이 늘어나자, SH는 지난 2월 개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SH는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임대주택의 품질과 입지를 갖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로 '매임임대주택 품질강화 방안'을 보고했다.
SH는 임대주택 품질 개선을 약속했지만 정작 수요자들은 '깜깜이' 신청 이후 대상자로 선정되고 나서야 주택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임대주택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도 임대 공급 정책에서 주택 품질 개선을 재차 강조하고 있고 임대주택 품질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며 "수요자가 직접 거주할 주택을 선택하는게 아닌 공급 주체가 대기자 명단을 활용하는 방식은 수요자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 낭비 지적에 공가 해소 조치?…'신속한 공급'도 의문
SH가 매입임대주택 모집 방식을 매입약정으로 변경한 배경에도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매년 증가하는 빈집 문제로 예산 낭비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공가 해소를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분석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12월 SH가 지난 2002년부터 2020년 5월까지 매입한 임대주택 1만9495가구 중 24.1%에 해당하는 4697가구가 비어있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71.6%에 해당하는 3365가구는 6개월 이상 장기간 공가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입약정 방식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할 경우 SH는 입주 예정 대기자 명부에 따라 추가 신규 물량 확보 전 공가를 공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신속한 공급'을 명분으로 한 공급주체의 입맛에 맞춘 정책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매입약정을 통해 신속한 임대주택 공급이 가능하다는 게 SH의 판단이다. 하지만 공급 일정을 감안하면 매입임대주택 입주를 신청한 수요자들이 실질적인 입주가 가능한 시점은 내년 초까지 연장될 수 있다.
SH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 모집 일정./사진=모집공고문
SH 관계자는 매입약정형 제도를 도입한 이유에 대해 "매입주택 신규 물량 또는 공가 확보 시 기존 입주자 모집 방식으로는 소유권 이전 통보 시점으로부터 공급까지 최소 4~5개월이 소요되나 매입약정형 방식은 선정된 대기자에게 신규발생 주택을 소유권 이전 통보가 된 해당 월에 바로 공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입주대기자 명부 순위에 따라 순차적으로 주택 선정이 이뤄지는 매입약정형 제도의 특성상 신속한 공급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SH 매입임대주택 모집공고문에 따르면 동호선정 일정은 6차에 걸쳐 예정돼 있다. 오는 8월 1차 동호선정을 시작으로 내년 1월 6차 동호선정이 진행된다. 계약 일정은 각 차수별 동호선정일로부터 2~3주 후로 예정됐다.
후순위 대기자들은 내년 1월 중 동호선정 절차를 거쳐 실질적인 입주는 내년 2월 이후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달 비슷한 시기에 접수를 받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이 오는 6월말부터 입주를 진행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SH 관계자는 "모집 인원 대비 선정되는 입주대기자 수가 적거나 동호선정 시기에 공급 가능 물량이 충분하다면 공고 일정보다 빠른 동호선정 및 입주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SH 매입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이 미달로 마감되며 대기자 명부가 줄어 당초 예상한 일정보다 입주 시기가 당겨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SH가 예정한 입주대기자 수만큼 접수가 몰렸을 경우 수요자들이 내년까지 입주를 기다리는 상황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SH는 이번 미달로 남은 물량에 대해서는 오는 9월 2차 신혼부부 매입임대 공고 시행을 통해 입주자를 찾을 예정이다.
한편, 지난해 11월 취임한 김헌동 SH 사장은 LH 등 다른 도시개발공사보다 매입임대주택 공급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헌동 사장은 취임사를 통해 "우리 SH공사는 중앙정부나 타 지자체의 도시개발공사보다 더 양질의 공공주택을 확보하고 공급을 늘려 시민과 미래세대를 위한 도시개발에 앞장설 것"이라며 "개발사업, 공모사업, 매입임대주택 등의 추진 과정을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해 시민들의 신뢰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