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귀족 스포츠'라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잔존한 한편 '스크린 골프'라는 새로운 형태의 유행은 골프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췄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창업 15년 만에 시가총액 9천5백억 원 규모로 성장한 '골프존'이라는 기업이 있다.
엄청난 성공의 뒤안길에서 치러야만 하는 '대가'도 물론 있다. 현재 골프존에 대한 세간의 인심은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가맹점주들로부터 '악덕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얻은 채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 있다. 골프존, 그리고 김영찬 회장는 이 변곡점에서 다시 한 번 활로를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골프존의 성공비결을 다시 한 번 짚어봐야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지난해부터 기업가연구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데 기여한 기업가들을 연구하고 있다. 골프존 김영찬 회장의 성공비결을 연구, 분석하는 몫은 이원우 미디어펜 기자가 맡았다. 자유경제원은 기업가연구를 마무리한 후 책을 출간하고 전국 대학을 순회하면서 기업가들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이원우 기자가 분석한 골프존 김영찬 회장론을 전재한다. (편집자주) |
▲ 이원우 기자 |
새 장난감을 집에 들여놓은 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있어도 머릿속엔 장난감 생각뿐이다.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하나의 대상에 애정을 품었던 아이의 마음은 어른이 되면 사라지고 마는 걸까?
우리가 ‘취미’라고 말하는 것들은 그런 설렘의 마음을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갈 수 있는 매개가 된다. 누군가는 게임을 한다. 누군가는 당구를 친다. 그리고 누군가는 골프채를 잡는다.
한국인들에게 골프라는 스포츠가 특별한 지위를 점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박세리에서 시작돼 박인비로 계승되는 선수들의 뛰어난 성적은 골프라는 소재를 한국 사회에 공론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박세리가 프로로 전향한 것이 1996년. 그리고 1998년 LPGA 투어에 참가해 LPGA 챔피언십과 U.S.여자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역사를 쓴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IMF 구제금융이 남긴 상흔으로 여전히 욱신거리는 아픔을 맛보고 있을 때였다. 그러던 한국인들에게 전해진 낭보, 악전고투의 박세리는 고국에 엄청난 영감(靈感)을 줬다.
DJ 정부 “골프 대중화 시키겠다”
박세리가 준 자극의 권역에 속해 있기는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9년 10월, DJ정부는 “골프를 대중화 시키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시점까지 법규적·사회적 제약과 경기침체로 인하여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던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참여정부 시절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골프장 건설 규제 철폐 공약까지 내걸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골프장 입지와 인허가 절차 단축 등 다양한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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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스포츠의 대중화’라는 코드는 한국인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간은 국민 전반적으로 골프에 대한 관심과 충성도가 제고된 시기다. 생활여건이 좋아지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한 운동으로 골프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제대로 즐기려면 하루가 몽땅 소모되는 이 ‘통 큰 스포츠’가 딱딱한 비즈니스 미팅의 훌륭한 대체재가 되고 있는 건 동서양이 매한가지다.
1917년 경성에 골프코스가 건설된 이래 2007년 우리나라 골프장의 수는 273개에 이른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2014년도에는 545개로 약 2배로 증가했다(한국골프장경영협회(KGBA) 자료). 1979년까지 23개 477홀, 연간 내장객 수 71만 명에 지나지 않았던 과거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더 이상 골프가 상류사회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상황도 아니다.
골프는 골프장에서만 즐기는 것? 그런 고정관념을 버려!
대한민국 골프산업은 소득 증대에 따른 레저수요 증가와 골프 대중화의 결과로 2010년까지는 꾸준히 확대일로에 있었다. 전체 매출액 규모는 2005년 2조1,565억 원에서 2010년 3조1,568억 원으로 50%나 증가했지만 2011년 3조3,748억, 2012년 3조1,560억 원으로 2년 연속 감소하며 하락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골프의 ‘좋았던 시절’도 이제 끝나가는 것일까?
속단에 앞서 우리는 골프장에서만 골프를 즐긴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시장에 등장한 하나의 기업과 마주치게 된다. 스크린 골프 시뮬레이터 개발업체 ‘골프존’이다. 이미 대한민국의 골프 문화는 골프존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업이다.
▲ 골프존 창업의 아이디어는 당연히 그의 생활 속에서 나왔다. 일반적인 골프 연습장에서 처음으로 필드에 나가는 날이면 좀처럼 집중도 되지 않고 연습에서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많은 골퍼들이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
골프존의 흥미로운 점은 한국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골프에 대한 동경(憧憬)의 이미지를 대중화시키는 데에서 사업 기회를 발견했다는 데 있다. “모든 사치재는 결국 보통재가 된다”고 말했던 미제스의 말을 훌륭하게 현실화시켰다고도 말할 수 있다.
창업 15년 만에 시가총액 9천5백억 원 규모로 성장한 골프존의 이 모든 성공을 해석함에 있어 우리는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창업자이자 골프존의 ‘얼굴’인 김영찬 대표다. 골프존의 성공에는 김 대표 특유의 독특한 경영 DNA와 인생에 대한 경험과 철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기본적인 인적사항부터 짚어보자. 1946년 8월25일생. 갓 70대로 접어든 김영찬 대표는 홍익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GM코리아(현 GM대우)에 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79년에는 경력직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하게 되는데 이것이 향후 그의 경력을 갈라놓는 분기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에서 15년을 근속하며 임원직까지 올라간 그의 성장은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타이밍과 맞물려 상당한 시너지를 창출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빼놓을 수 없는 두 글자, 삼성
삼성전자에서 그가 담당한 업무는 시스템영업이었다. 그러다 교환기, 키폰시스템, 팩시밀리 등의 제품을 생산하는 정보통신 부서에서 3년간 사업부장을 맡아 매년 15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때의 경험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삼성전자의 정보통신 사업부장은 그에게 CEO로서의 역량을 길러줬을 가능성이 높다. 부서 인력만 500명에 이르렀고 기술개발부터 생산, 마케팅, 영업까지를 총 책임지는 게 그의 중심 업무였기 때문이다.
삼성에서 제공한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식과 일본식 경영 방식을 전부 체득할 수 있었던 점도 향후 CEO로서의 업무 수행에 도움을 줬을 것이다. 요약해서 표현하면 결국 인재를 중시하는 ‘삼성사관학교’가 골프존이라는 부가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김영찬 대표는 지금도 기업 경영의 가장 중요한 점으로 ‘인재’를 손꼽는다.
두 번째 포인트는 그가 재직 중이던 시절의 삼성이 매우 중요한 구간을 지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80년대 일본기업들은 삼성전자의 오랜 롤모델이었다. “언젠가 삼성이 소니를 앞지를 날이 올 것”이라는 말을 해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 시절이었다.
이랬던 것이 80년대 말부터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점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삼성 내부에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희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 있었던 1993년은 삼성이 더 이상 시장의 변화를 수용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 그 자체로 시장에 섞여 들어갈 것임을 선언했던 중차대한 변곡점이었다.
1993년은 김영찬 대표에게도 중요했다. 삼성이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던 이 무렵 임원으로 활약하다 퇴사했다는 점 역시 골프존의 성공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왜 골프였을까.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의 결합
김영찬 대표가 2000년 골프존을 창업했을 때 그의 나이는 54세였다.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두 번 창업했을 나이다. 늦었다면 늦었다고 볼 수 있는 이 연배에 그는 심지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스크린골프’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이 기백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었을까.
정답은 골프라는 스포츠에 대한 김영찬 대표의 오랜 관심이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하고 싶은 일은 컴퓨터 기술, 잘하는 것은 시스템영업, 좋아하는 일은 골프였다”고 말할 정도로 골프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갖고 있었다. 골프존이라는 업체는 결국 이 세 가지가 결합된 상태로 태어나 트렌드의 변화상과 발을 맞춰 급성장할 수 있었다.
▲ 김영찬 대표가 2000년 골프존을 창업했을 때 그의 나이는 54세였다.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두 번 창업했을 나이다. 늦었다면 늦었다고 볼 수 있는 이 연배에 그는 심지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스크린골프’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이 기백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었을까. /사진=골프존 홈페이지 |
김 대표의 창업과 성공에는 20대들의 직업 선택에도 도움이 될 만한 통찰이 숨어 있다. 많은 청춘들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세상은 어차피 언제 바뀔지 모를 ‘좋아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따라서 잘 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이 정답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자기계발서 안에서 융통되고 있다.
이 말은 ‘좋아하는 일’ 그 자체를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잘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활약하는 가운데 끈기 있게 유지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면 그것이 향후 새로운 비즈니스의 도약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김영찬 대표의 인생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모두가 힘들어 하는 시스템영업 분야에서 경력을 시작해 임원에까지 승진을 했지만 그 와중에도 골프라는 취미를 끝내 버리지 않았다. 이 집중력이야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끝끝내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일면 행운으로 보이는 성공사례를 도출시킨 힘이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논의를 뻗어가 보자. 그렇다면 무엇이 됐든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일’에만 천착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의 함수관계를 통과한 이후 우리는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건 바로 ‘시장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일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일’이라고 불러도 좋을 일이 무엇인지를 통찰하는 것.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소비자의 한 걸음 앞에 가져다 놓는 것. 그 세심한 관찰의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부자가 되는 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정글 자본주의’라는 말에 얼마나 심각한 어폐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사정없는 약육강식의 경쟁을 용인하는 시장경제를 거부하고 소위 말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뿌리내리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으레 시장경제가 용인하고 장려하는 경쟁 시스템은 때때로 비판과 거부의 대상이 된다.
산소는 ‘정글’에서 만들어진다
정글에서의 경쟁이란 게 반드시 그렇게 나쁘기만 한 걸까? 전 세계 산소의 25%는 아마존이란 이름의 정글에서 생산된다. 생명을 걸고 싸운 후 패배한 동물의 시체가 부패되고, 그것을 양분으로 자라난 숲이 광합성 하여 인간이 숨 쉴 공기를 만들어 주는 게 이른바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열대 우림의 생태 메커니즘이다. 극도로 잔인하게 보이는 약육강식의 경쟁 위에서 인간은 지금도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시장경제에서의 경쟁은 정글에서의 경쟁과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자의 경쟁은 ‘남이 죽어야 내가 사는’ 경쟁인 반면, 자본주의에서의 경쟁은 ‘남이 살아야 내가 사는’ 윈-윈 게임, 누가 더 남(소비자)을 이롭게 만드는가의 홍익인간 경쟁이다.
생산자가 치열하게 경쟁해서 보다 싸고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면 소비자의 처우가 개선된다. 자본주의가 인생의 많은 모순을 그대로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풍요를 가져올 수 있었던 비밀이 여기에 있다.
물론 反자본주의자, 혹은 수정자본주의자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이긴 사람이야 좋겠지만 홍익인간 경쟁에서 패배한 생산자들에게 있어서는 정글 아니겠느냐고 말이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모든 것을 걸고 투자했던 사업의 실패로 한 인간이 좌절하고 무너지는 수많은 사례들은 그리 낯설지 않다. 남이야 어떻건 그들에게 있어서는 시장경제나 자본주의가 정글이나 다름없게 느껴질지 모른다.
이 맥락을 견지하더라도 시장경제의 정당성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사회 속의 인간은 누구나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어버려서 울고 있는 인간도 명백히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경쟁이 있었기에 좀 더 값싸고 고급스러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다.
이러한 수혜는 극빈자도 피해가지 않기에 미국에서는 노숙자도 나이키를 신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나의 체제가 이유도 모른 채 지상으로 내던져진 모든 인간에게 일말의 이로움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건 차라리 기적이 아닐지.
삶 그 자체를 걸고 싸우는 ‘한 판 승부’가 아니라는 점 또한 근본적 차이다. 한 번 졌다고 죽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살아있기만 하다면 기회를 준다. 인생은 불평등하지만 패배한 인간은 때때로 실패에서 배운다. 다 잘 되고 나서 ‘그 때의 실패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라고 나름 철든 소리도 할 줄 아는 게 인간이다.
자신에게 가능한 모든 에너지를 동원하여 누군가를 이롭게 해주는 그 순간 보상이 따라온다는 약속은 결코 어겨지지 않기에 도전의 기회는 열려 있다. 통념과는 달리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기를,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를 기다린다.
시장경제의 혜택은 고스란히 얻기를 바라면서도 경쟁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뭇 사람들의 태도는 아이러니다. 사실은 시장경제야말로 인간의 얼굴과 가장 흡사한 체제임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기쁨과 슬픔이, 환희와 좌절이 이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체제의 단면만을 보고 전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기엔, 당신은 자본주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문명의 이기를 통해서 이 글을 읽고 있지는 않은지. 정글이 지구의 허파라면 시장경제는 사회의 심장이다.
골프존 김영찬 회장의 성공신화는 바로 이러한 시장경제의 논법 속에서 완성된 바 크다.
부자들의 공통점
이 국면에서 잠시 ‘부자’ 얘기를 해 보자. 3년 전쯤 자산이 10억 이상 되는 부자들은 평균적으로 6시 18분에 기상해서 23시에 잠든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하루는 모두에게 24시간으로 공평한 것 같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몇 시간을 자야 제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4시간만 자도 충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인슈타인은 매일 10시간 이상을 자지 않으면 제대로 연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에디슨의 하루는 20시간이었던 반면 아인슈타인의 하루는 14시간이었던 셈이다. 10억 이상의 부자들도 평균이 6시 18분이라는 것일 뿐 잠이 많은 부자가 있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나는 부자가 아니지만 부자의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글 쓰는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여러 유형의 부자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가 평균 수면시간보다 훨씬 중요한 정보를 함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거나 만나본 적이 있는, 자기 힘으로 큰돈을 버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갖고 있었다.
(1) 낙관적이다
- “인생 뭐 있나?”라는 말은 언뜻 염세적인 코멘트로 들린다. 하지만 부자들은 이 말을 습관처럼 내뱉으면서도 긍정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인생 뭐 없으니까 대충 살자는 게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 인생 뭐 없으니까 한 번 해보자는 식이다.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하지만 정작 저자는 별로 부자가 아닌) 성공학 교본에 나오는 거창한 도전정신보다 파워풀한 것은 어려운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심플함이었다. 어떤 면에선 약간 둔하고 무던한 것이 부자가 되기에는 더 좋은 품성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2) 검소하다
- 돈을 잃기는 쉽지만 벌기는 어렵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주식시장이다. 종합주가지수와는 관계가 없다. 전체 시황이 어떻든 내가 가진 주식이 오르는 덴 몇 달이 걸리지만 고꾸라지는 데에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부자들은 주식시장뿐 아니라 경제생활 전반에 적용되는 이 사실을, 그저 알고만 있는 게 아니라 ‘느끼고’ 있다. 그래서 누가 절약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아낀다. 한 번에 큰돈을 벌기보다는 야금야금 작은 돈을 착실하게 모아간다는 기분으로 결국 부자의 반열에 올라선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추종하는 함정에 빠지지만 부자들은 스스로가 돈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3) 움직인다
- 첫 번째 자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지만 말보다는 행동이 부자를 만든다.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나와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졌던 누군가는 먼저 움직인다. 양보다 질이라고? 아니다. 질보다 양이라고? 틀렸다.
지금은 높은 퀄리티의 결과가 많이 나와야 하는 ‘양과 질의 시대’다. 그리고 양과 질을 모두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먼저 움직이는 자’에게 찾아온다. 부자들은 A와 B와 C중에서 어떤 것이 더 좋을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A도 해보고 B도 해보고 C도 해 본 뒤에 가장 좋은 것으로 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역시나 낙관적인 태도가 없으면 나오기 힘든 삶의 자세다.
세 가지 공통점을 취합하면 결국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비결은 ‘낙관주의’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실낱같은 가능성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 이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부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최고의 통찰력이었다.
비관적인 사람은 일면 똑똑해 보이지만 아무리 멋진 현실을 보여줘도 그 안에서 패배와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낙관적인 사람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행복의 요소를 찾아낸다. 이제 자기 자신에게 한 번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어떠한 인생이 더욱 값지고 영광스러운 것이겠는가?
실패에서 배우다
주로 성공공식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만, 김영찬 CEO의 인생에 늘 성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삼성전자 퇴사 이후 그가 했던 첫 번째 도전은 사실 골프존이 아니었다. ‘영밴’이라는 부가통신사업체를 창업했을 때 그의 나이 47세였다. 현재의 자동응답시스템(ARS)과 비슷한 음성사서함(VMS) 서비스를 해주는 일이었고 전망도 밝아보였지만 결과는 실패.
IT 부문 인프라를 바탕으로 거기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이 성장할 것이라고 봤던 전망은 옳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기업가들이 너무 많았다는 게 패착이었다.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수익성은 내내 떨어지기만 했다.
여기에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덮치면서 부가통신사업은 운세‧폰팅 등 선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만 했다. 김영찬 대표는 더 이상 기존의 부가통신사업으론 비전이 없다고 보고, 2000년 골프존 창업과 함께 영밴 사업을 접었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었던 키워드는 네 가지였다고 한다. ①인터넷 ②정보통신 ③네트워크 ④골프 등이다. 정보통신, 네트워크는 삼성전자에 있을 때부터 늘 해오던 일이었고, 인터넷은 닷컴 버블이 일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시대상을 반영한 키워드다. 여기에 그의 오랜 관심사였던 골프가 얹어진 것이 바로 ‘골프존’이다.
골프존 창업의 아이디어는 당연히 그의 생활 속에서 나왔다. 일반적인 골프 연습장에서 처음으로 필드에 나가는 날이면 좀처럼 집중도 되지 않고 연습에서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많은 골퍼들이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 김영찬 대표는 골프방이라는 개념에 대해 말할 때 ‘네트워크’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골프존의 기술력을 인터넷 환경과 접목해 얼굴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상대와도 골프게임을 즐길 수 있을 때 골프방의 재미는 배가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진=골프존 홈페이지 |
그 고민을 품고 있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골프시뮬레이터다. 당시 시뮬레이터는 주로 타구분석용으로만 사용되던 초고가의 사치재였다. 애초 시뮬레이터의 개발목적은 공의 탄도와 구지르 스윙 등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었지 그 자체가 연습 목적은 아니었다. 대당 1억 원을 호가하는 골프시뮬레이터는 일류 연습장이나 고급호텔 피트니스센터에나 몇 개 비치돼 있었고 제품도 잔고장이 잦아 확장성이 전혀 없었다.
김영찬 대표는 이 시뮬레이터를 보편화시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연습장과 골프장 사이를 연결시켜줌과 동시에 새로운 취미생활의 공간이 될 수 있는 ‘스크린 골프장’이라는 아이디어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물론 수익은 아이디어만으로는 발생하지 않는다. 골프존은 2000년 창업 이후 2002년까지 매출을 단 한 푼도 올리지 못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사기를 당해 큰 곤란에 처한 일도 있었다. 그래도 대덕연구단지의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5명으로 시작한 골프존은 1년 6개월간 골프시뮬레이터 개발에 몰입했다.
그마저도 보완할 점은 많았지만 2002년 ‘한국골프종합전시회’에 제품을 선보이면서부터 조금씩 거래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2년의 매출액은 10억 원. 이후 골프존은 2003년 20억 원, 2004년 30억 원, 2005년 50억 원, 2006년 120억 원, 2007년 314억 원, 2008년 1000억 원을 돌파하며 엄청난 성장세를 이어갔다. 김 회장은 “전국 3000개의 실내연습장에 골프존 기계를 1대씩 파는 게 목표였는데 어느 날부터 골프연습장들에서 5대, 10대씩 주문이 밀려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대박’에서 김영찬 회장이 안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매출 100억 원이 넘어가기 시작하던 10년 전, 김 회장은 골프존의 미래를 놓고 근본적인 고민에 돌입했다. 100억 원 정도를 버는 중소기업에 만족할 것이냐, 골프존을 좀 더 큰 기업으로 키울 것이냐의 갈림길에서 그는 ‘R&D’라는 결론을 도출한 뒤 고민을 끝냈다. 개발인력을 대폭 늘리고 매출의 10%가량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부은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골프존이라는 회사는 임직원 400여 명 가운데 절반 남짓의 인원이 R&D 관련 인력으로 충원된 특별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스크린골프방이라는 ‘공간’을 창조하다
골프존의 성공비결은 단순히 시뮬레이터 개발에서 머물지 않는다. 시뮬레이터를 두고 가상 골프연습을 즐길 수 있는 ‘스크린골프방’을 활성화시킨 것이야말로 골프존의 폭발적 성장에 중요한 요인을 제공했다. 10대에 PC방이, 20대에게 당구장이 있다면 편하게 골프를 즐기고 싶은 중장년층에는 골프방이라는 새로운 장소가 생겨난 셈이다.
이에 대한 김 회장의 해석은 상당히 재미있다. 그는 “골프방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시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 혹은 골프존이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지 않고 골프존의 신제품을 다름 아닌 ‘시장’이 새로운 문화로 승화시킨 것이라는 솔직한 평가다.
김영찬 대표는 골프방이라는 개념에 대해 말할 때 ‘네트워크’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골프존의 기술력을 인터넷 환경과 접목해 얼굴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상대와도 골프게임을 즐길 수 있을 때 골프방의 재미는 배가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매출다운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한 직후인 2004년부터 골프존이 국외 진출을 도모한 것도 비슷한 목적을 공유한다. 김영찬 대표는 향후 3D 안경, 골프채 없이 영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골프채를 가져와 휘두를 수 있는 햅틱 기술, 필드에서의 느낌을 더욱 리얼하게 만드는 4D 기술 등을 스크린골프에 접목시킬 방침을 일찌감치 피력한 바 있다.
이미 골프존은 일반 평지가 아닌 실제 골프장의 느낌을 살려주는 ‘스윙플레이트’ 탑재로 경쟁업체들을 널찍이 따돌린 전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정작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고급과 퇴폐 사이
한국 사회에서 00방으로 호명되는 모든 공간은 한 번쯤 퇴폐성 논란에 직면한다. 골프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후죽순으로 골프방이 생겨남에 따라 그 안에서 세상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만한 부정적 사례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골프방 이용자들이 흡사 80년대 당구장에서처럼 내기를 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음식을 시켜먹기도 하는 건전한 취미생활을 향유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극소수의 이용자들이 퇴폐적인 방식으로 이 공간을 활용하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골프방의 이미지는 급전직하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는 골프존과 김 대표로서는 난처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시뮬레이터 기기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본분인 골프존 측에서 이용자들의 소비방식까지를 간섭할 권리는 없을 것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골프방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보도의 최종 타깃은 결국 골프존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논란의 대상이 되는 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변화를 주도한 혁신자의 필연적 수순일까. 골프존의 어두운 이미지가 완벽히 불식됐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많다. 아마도 김영찬 회장으로서는 억울한 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스크린골프방이 엄청난 유행을 했을 때에도 그는 이미 모든 은덕을 ‘시장’의 몫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골프방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인 것도, 그곳에서 어떻게 놀면 좋은지를 결정하는 것도 전부 시장이다. 우리는 골프존을 어디까지 비난할 수 있을까. 혹은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질문이 여전히 물음표 속에 갇혀 있는 채로, 골프존은 새로운 파도 앞에 서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악덕기업’ 되어버린 골프존
2015년 현재 골프존은 새로운 논란에 직면해 있다. 이른바 갑(甲)질 논란이다. 스크린골프 시뮬레이터 생산업체인 골프존과 영업 매장주 사이의 갈등은 현재 법정 다툼으로까지 비화된 상태다. 골프존서울타워와 대전 골프존조이마루 안팎에서는 지속적인 집회 및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성공한 기업가로 알려졌던 김영찬 회장의 집에는 계란과 음료수가 투척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논란의 골간은 대략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골프존이 대전에 골프 테마파크 ‘조이마루’를 지으면서 내부에 룸 30개를 가진 스크린골프 전용 경기장을 설립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대전 지역 스크린골프장들에는 엄청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는 골프존이 새로운 프로그램 ‘비전플러스’ 출시계획을 밝히면서 요금 2천원을 새로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컴퓨터와 프로젝터를 풀HD급으로 교체하는데 적지 않은 설치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사업주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골프존의 대응도 두 가지다. 대전 조이마루 문제는 대전지역 사업주들이 해결방안을 들고 오면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비전플러스 추가요금 부분은 시행을 미뤘다. 일견 ‘타협점’이 나온 것 같은데도 왜 논란은 이어지고 있을까.
골프존에 콘텐츠 부분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스크린골프장 사업주들은 골프존과 미묘한 관계를 맺게 된다. 골프존으로부터 기계를 사서 매장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골프존과 우호적인 관계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단 이 장비들에는 계속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데 그 가격이 계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덧붙여 골프존이 다른 업주들에게 기계를 많이 팔면 팔수록 경쟁이 치열해져 업주들의 형편은 어려워질 확률이 높다.
▲ 2015년 현재 골프존은 새로운 논란에 직면해 있다. 이른바 갑(甲)질 논란이다. 스크린골프 시뮬레이터 생산업체인 골프존과 영업 매장주 사이의 갈등은 현재 법정 다툼으로까지 비화된 상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
골프존 사업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미 골프존을 ‘악덕기업’으로 선포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출된 탄원서에서 비대위는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이 아닌 기계만 파는 거라고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 무차별 기계 판매로 같은 건물에도 몇 개씩 매장을 오픈시켜 우리 점주들이 서로 피 터지게 경쟁하게 만든 부도덕한 경영방식 (…) 악덕기업 골프존에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생존권 보장’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있는 이들의 요구사항은 크게 프랜차이즈 인정과 신규판매 금지, 중고시스템 원가 50% 보장, 무료코스 복원 등으로 요약된다.
이들 비상대책위원회의 요구에는 몇 가지 짚어봄직한 포인트가 있다. 그들에겐 절박한 문제임에 틀림없지만 15년 전 직원 5명의 영세업체 골프존이 이제는 누군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호사다마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론은 골프존에 다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시장점유율 91%의 지배력을 이용한 횡포’ ‘기기교체 때마다 매장주 한숨’ ‘업그레이드 비용 폭탄과 문어발식 확장’ 등의 기사 제목들은 어느새 한국 사회의 주류담론으로 자리 잡은 전형적인 ‘갑질 논란’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2013년에는 국정감사장에서까지 골프존의 영업스타일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동반성장에 대한 신화가 기세 좋게 성장하던 신생기업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아닐까.
돌파구는 다시 한 번 ‘변화’ 그 자체일지도
기업가에게 소비자는 언제나 옳은 존재이기에 골프존은 스스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현실 또한 하나의 ‘상수’로 받아들이고 변화의 양상을 살펴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김영찬 사장이 말하는 ‘회사가 망하는 길’의 세 조건을 들어보자.
“첫째, 시장을 잃는 경우다. 둘째, 고객들의 요청을 외면할 때다. 셋째, 핵심역량을 포기하면 회사가 망한다. 정리하면, 시장을 잃는 일은 형제를 잃는 일이요, 고객을 잃는 일은 부모를 잃는 일이다. 이를 넘어 우리의 핵심역량을 잃는 일은 우리 가족 모두를 잃는 일이다.”
▲ 기업가에게 소비자는 언제나 옳은 존재이기에 골프존은 스스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현실 또한 하나의 ‘상수’로 받아들이고 변화의 양상을 살펴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어쩌면 지금은 골프존의 성공비결이었던 ‘변화를 읽는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청되는 때인지도 모른다. /사진=골프존 홈페이지 |
어쩌면 지금은 골프존의 성공비결이었던 ‘변화를 읽는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청되는 때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3월 골프존이 내놓은 ‘새로운 한 수’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다. 각 사업 분야의 효율적 운영과 사업 다각화를 목적으로 한 근본적 전환이다. 이로 인해 골프존그룹은 투자사업부문의 지주회사 (주)골프존유원홀딩스, 스크린골프사업부문의 사업회사 (주)골프존, 유통사업부문인 골프존유통의 세 부분으로 나뉘게 됐다. 골프존 카운티와 골프존 엔터테인먼트는 골프존유원홀딩스의 자회사가 됐다.
골프존그룹의 ‘얼굴’은 여전히 김영찬 회장이지만 주력사업체인 (주)골프존에는 새로운 대표이사가 취임을 하게 됐다. 지난 2008년부터 골프존의 경영총괄(COO)로 활약해온 장성원 대표다.
장 신임대표는 취임사에서 “현재 골프존의 사업영역과 관계된 리스크들을 잘 극복하여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다지는 한편, 미국과 아시아시장 개척을 중심으로 해외에서의 성공을 통해 새롭게 도약하겠다”고 말하면서 “글로벌 기업 도약의 원년으로써 전 골프존 임직원이 하나로 뭉쳐 제2의 골프존 신화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선언했다.
초라한 사무실에서 창업한 골프존이 ‘제2의 골프존 신화’라는 표현을 동원해야 할 정도로 크고 중요한 업체가 되는데 걸린 시간은 약 15년. 강산이 한 번 변하고 절반쯤 변할 시간동안 골프존은 한국의 골프산업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골프가 너무 좋아 일생일대의 위기이자 변곡점에서도 골프를 생각해낼 수밖에 없었던 김영찬이라는 한 남자의 내면세계에서 비롯된 사건들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일’의 거리를 좁혀서 끝내 ‘시장이 원하는 것’으로까지 연결시킨 김영찬 회장, 그리고 골프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세상인심과 시장의 상황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역동적으로 변화하면서 성공을 거둔 한 기업의 미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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