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25일 ‘조선인민혁명군(항일 빨치산) 창건 90돌 경축 열병식’ 연설을 통해 그동안 억제 목적에 초점을 맞췄던 핵 교리를 변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명 ‘4.25 핵 독트린’을 발표한 것으로 지난 3월 미국이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핵 선제타격 가능성을 열어둔 것에 대한 맞대응 차원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김 총비서는 열병식 연설에서 “핵무력을 최대한 급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킬 것”이라면서 “핵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억제이지만 이 땅에서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될 경우 전쟁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세력이든지 우리국가의 근본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둘째 사명을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공화국의 핵무력은 언제든지 가동될 수 있게 철저히 준비되어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항일 빨치산) 창건 90주년을 맞아 25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한 열병식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리설주 여사가 참석해 주석단에서 인사하고 있다. 2022.4.26./사진=뉴스1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데다 ▲‘근본이익 침탈’이라고 조건을 달아 고무줄 잣대를 설정했고 ▲신냉전 흐름에서 북·중·러 결속을 강조했다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번 연설에서 ‘핵무력 둘째 사명’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근본이익 침탈 시’라고 제시한 것은 공격이나 침략을 받을 때만이 아니라 보다 폭넓게 이익을 침탈당하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말했다.
홍 실장은 “지난 3월 30일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통해 ‘극단적 상황’에서 핵 선제타격 가능성을 열어둔 것에 맞대응하려는 의도가 강해 보인다”면서 “여기에 한미의 북핵 공조, 확장억제력 강화 움직임, 선제타격론 등에 대응한 공세적 교리 변화를 의도적으로 보이려고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사실상 ‘4.25 핵 독트린’으로 불러도 무방할 연설을 시행했다”면서 “특히 ‘근본이익 침탈’이라는 핵무력 사용 조건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는 개념이어서 앞으로 시시때때로 핵무력 사용을 강조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인민혁명군(항일 빨치산) 창설 90주년인 지난 25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화성-15형)이 등장했다. 2022.4.26./사진=뉴스1
정 교수는 이어 “이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기 위한 수순이며, 협상이나 비핵화의 길이 아니라 핵군축이라는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연설에서 북한의 핵 독트린이 더 확장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암시했다”면서 “이는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미국이나 NATO 회원국들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과 매우 유사하다. 즉 북한은 상황에 따라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것으로 러시아가 만든 선례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이번에 3개월여의 준비기간을 거쳐서 김일성 생일 110주년인 4월 15일이 아니라 인민혁명군(항일 빨치산) 창건 90주년인 4월 25일에 군사퍼레이드를 가졌는지 돌아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항일 빨치산을 창건했다고 주장하는 1932년은 소련, 중국, 북한 모두 반 파쇼, 반 제국주의 연대 즉 반 자본주의 연합을 형성하던 시기”라면서 “김정은은 이런 상징성을 부각해 신 냉전 흐름에서 권위주의 체제를 공유하는 북·중·러의 결속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군사협력의 가능성을 타진하려고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