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화들을 보면 가장 순수해야 할 동화책이 편향적으로 특정 이념과 가치관을 주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독서 교육만 강조하다 보면 책을 읽을수록 세상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만 주입하게 된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불량식품만 먹이는 것과 진배없다.
이에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4월 13일 제18차 교육쟁점연속토론회 ‘편향의 자유 마음껏 누리는 동화책 시장’을 개최해 동화책 시장의 문제점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근미 소설가는 출판사의 현직 편집장들과 나눈 진솔한 대화를 소개하며 “탁월한 인물과 탁월한 역사 인식을 담은 책이 나올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고, 잘못된 내용의 책을 걸러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아래는 이근미 소설가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 이근미 소설가 |
우리는 다양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안방에 앉아 세계를 경험하는 시대이다. 또한 갖가지 규제로 일하기 어렵다고 하소연이지만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는 사실상 거의 모든 규제가 풀려 위험수위를 오르내리는 표현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발제자가 제기한 두 가지 문제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는 사안이다. * 6‧25전쟁과 미국에 대해 터무니없는 관점을 취하고 있는 책, *잔혹한 생애를 산 대한민국과 상극(相剋)인 체제에서 활약한 지도자들의 평전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미화하는 것은 제작자와 수용자의 생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발제자는 형편없는 책을 공공기관에서 우수도서로 선정하고 그 책을 공공도서관에서 추천하는 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근거로 (그러한 일이)‘세금으로 집행된다’는 것을 들고 있는데, 그 역시 수용자들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판이하다. 발제자와 반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세금을 들여 마땅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간의 대선을 통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정치 성향은 우편향 3분의1, 좌편향 3분의1 정도로 나누어진다. 선거에서 부동층 3분의1을 끌어들이는 쪽이 승리해왔다.
특히 초중고등학교 학부모들인 30~50대와 교육계 인사들 가운데 좌편향이 좀더 많아 발제자가 제기한 문제를 담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절찬리에 판매되거나 추천되는 상황이라고 추측된다.
갖가지 책이 쏟아져 나오는 출판시장에서 좌편향 관련 책들이 더 많이 출간된다는 것은 여러 조사결과에서 이미 밝혀졌다. 그런만큼 좌편향 도서가 추천도서로 선정될 확률이 높은 게 작금의 현실이다.
편집자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우수도서로 선정되고 도서관에서 추천하는 것은 책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수십 년의 연륜을 갖고 매달 많은 책을 출간하는 중견출판사의 편집장 세 명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문제 해결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여 최일선에서 책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일을 총괄하는 편집장을 접한 것이다.
평소 필자와 두터운 교분을 나누고 있는 세 사람은 40대 남·녀와 50대 여성으로, 정치성향은 좌편향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업계에서 실력있는 우편향 편집자를 만나기 힘든 게 작금의 현실이다. 좌편향이더라도 나름 균형을 잡고 있는 편집장들이며 이들이 근무하는 곳은 어떤 정치성향도 드러내지 않는 종합출판사이다.
세 출판사 가운데 한 군데에서는 청소년 위인전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데 마오쩌둥, 호치민, 체 게비라의 평전을 낸 바 있다.
세 편집장에게 발제자가 제기한 두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었을 때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거의 비슷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세 사람의 의견은 대한민국 편집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평소 여러 편집자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와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주제에 대한 견해를 물었을 때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한 얘기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주의 사회에서 어떤 책을 내든, 그것을 참견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 둘째, 공산주의자이기에 앞서 세계 역사상 중요한 인물을 다루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셋째, 어떤 사안에 대한 해석은 필자의 몫이다.
실구매자인 젊은 부모의 정치성향이 중요
출판을 할 때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은 ‘필요한 책인가’와 ‘팔릴 책인가’이다. 특히 요즘처럼 출판 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팔릴 책인가’에 더 비중을 두기 마련이다. 발제자가 거론한 시리즈에 등장하는 김연아, 김택진, 박종철·이한열, 이태석, 류현진, 안철수, 정명훈, 박지성 등은 다분히 ‘팔릴 책인가’에 비중을 두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리스트를 작성할 때 또 하나 염두에 두는 것은 ‘갑자기 조명을 받는 인물’이거나 ‘곧 관심을 끌 것 같은 인물’이다. 시리즈물을 낼 때 이른바 ‘구색을 맞추기 위한 인물’을 집어넣는 경우도 있다. 인물을 선정할 때 공통적으로 염두에 두는 것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기 세계를 구축한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스토리와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으면서 팔릴 수 있는 인물을 선정한다는 뜻이다.
‘6‧25전쟁과 미국에 대해 터무니없는 관점을 취하고 있는 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편집자들은 “디테일을 갖고 따지면 끝도 없다. 정서가 그렇다는 것을 알리는 선에서 그렇게 썼을 수도 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한 전쟁을 하면서 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끼친 게 사실 아닌가” 등등의 소신을 밝혔다.
한 편집자는 ‘책을 사는 젊은 부모들의 성향을 염두에 두고 책을 만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젊은 부모들이 대개 ‘좌편향’이라는 점을 책 만들 때 감안한다는 것이다. 젊은 부모들이 좌편향인 것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좌파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니 그것에 대해 불만을 말하기보다 우파들이 힘을 기르고 노력해서 우편향 독자들을 확보하라’는 충고도 했다.
그는 “지금 무슨 조직이 있거나, 독자들을 교화시키거나 의식화하기 위해 좌편향 책을 내는 건 아니다. 독자층이 좌파 의식에 공감하기 때문에 상업논리에 의해 거기에 맞는 책을 내는 것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세계가 인정하는 위인?
마르크스, 호치민, 체 게바라, 마오쩌둥의 평전을 내는 이유를 물었을 때 세 편집자는 거의 “그런 한심한 질문을 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필자를 대했다.
공산주의자의 평전을 내는 것에 대해 “그 사람을 이념적 잣대로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다. 평등, 자유, 배려,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삶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라고 동일하게 말했다. “위인들은 대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면도 있다”는 사실도 부연했다.
편집자들은 “모든 책은 낼 수 있다. 못 내는 책은 없다. 또한 모든 사람이 철학과 사상이 같을 수는 없다. 독자들은 수많은 책 가운데 필요한 책을 선택해서 읽으면 된다.”고 말했다. 왜 공산주의자의 책을 내는가라는 우문 보다는 세계 인류의 철학과 사상적 흐름은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라는 뜻이었다.
공산주의 사상이 왜 발현했고 왜 실패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하며, 단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책을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 마오쩌둥, 체 게바라, 호치민이 포함된 평전 시리즈를 낸 출판사의 편집자는 “우리 평전은 모든 인물을 다 다룬다. 우리 아이들은 공산주의자의 삶은 몰라야 하나? 제한을 두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사진='세계위인전 who? 시리즈' 마오쩌둥 편 표지 |
마오쩌둥, 체 게바라, 호치민이 포함된 평전 시리즈를 낸 출판사의 편집자는 “우리 평전은 모든 인물을 다 다룬다. 우리 아이들은 공산주의자의 삶은 몰라야 하나? 제한을 두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또 “우리는 위인들의 일생을 독자들에게 전해줄 뿐 비평은 독자들의 몫이다. 글로벌 시대에 다양한 인물들을 알아야 한다.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들을 섭렵하면서 가치관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공산주의자라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독자들이 관심있는 인물이라면 여러 종류의 책을 보기 때문에 쏠릴 위험은 없다. 어떤 책이 그 사람을 미화시킨다고 해도 독자들은 알아서 걸러낼 거라고 본다. 독자들은 어리석지 않다.”고 낙관했다.
편집자들에게 평전을 쓰는 작가를 섭외할 때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지 질문했을 ‘그 인물을 가장 잘 분석할 것 같은 작가, 글솜씨가 있는 작가’를 섭외하여 ‘시리즈의 특징 정도만 설명할 뿐 내용에 대해 간섭하지는 않는다. 원고가 완성된 후 팩트 정도는 출판사에서 체크를 하지만 내용을 고치지는 않는다. 작가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미화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한 편집자는 “좌편향 책의 경우 필자가 그 내용을 써왔을 때 편집자가 읽고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출간했을 것이다. 특별히 이념 성향의 책을 낼 때는 이전의 저작들을 보고 그에 맞는 필자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다. 대신 원고는 필자의 사관에 맡긴다.”고 얘기했다.
편집자들은 거론된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세계적인 인물들이다. 사상을 떠나 뛰어난 인물이고 그 나라 입장에서 봤을 때 민족주의자들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단지 그 사람의 인생이 아닌 그 사람이 산 역사적 배경을 통해 독자들이 세계를 알아가는 것이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독자들이 공산주의자든 좌파인물이든 그들의 삶을 접할 기회를 빼앗으면 안 된다는 것과 아무도 좌파를 연구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탁월한 인물과 팔리는 책
발제자가 제시한 문구 가운데 충격적이었던 대목에 관한 의견을 세 편집자에게 모두 물어보았다.
“삼성전자 구미 공장에서는 휴대폰이 하루에 수백만 대가 생산됩니다. (…) 그런데 혹시 이들 노동자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이 직접 만든 휴대폰 하나를 슬쩍 호주머니에 넣어서 몰래 가지고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 그의 죄목은 ‘절도죄’입니다. 아니,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을 가져왔을 뿐인데 절도라니요? (…) 이것은 바로 자본주의라는 제도 때문입니다.”
세 편집자 모두 이런 내용은 있을 수 없다고 개탄했다. 한 편집자는 결코 이런 내용이 책에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전체 맥락을 다시 검토해보라는 당부까지 했다.
세 편집자와의 대화, 또한 평소 편집자들과 작가들을 접하면서 느낀 점은 결국 ‘탁월한 인물을 다룬 책이 팔리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쓴 어린이용 ‘역사를 바꾼 대통령 박정희’의 경우 친분있는 편집자가 “젊은 부모들이 박정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안 팔린다. 출간하지 말라”고 한 예언 그대로 되었다. 어린이용 안철수 책은 넘쳐나지만 박정희 대통령 서적은 거의 없는 데도 판매가 되지 않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시장이 없는데 책을 만들 편집자는 없는 것이다.
올바른 역사인식을 도울 수 있는 책을 발간해야 한다. 하지만 역시 ‘판매’라는 점이 걸림돌이 된다. 독자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 점이 연구 과제이다.
콘텐츠 개발과 감시를 동시에
지금처럼 잘못된 내용을 담은 책을 걸러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한다. 이번에 미디어펜 기사로 일부 책들이 도서관에서 퇴출되었을 때 우수도서 추천자도, 도서관 담당자도, 출판사도 경각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러이러한 내용이 들어가면 도서관에도 못 들어가고 판매도 잘 안되는구나 하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활동이 이어지면 점차 시장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미 우수도서 선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많이 거론되면서 담당 공무원들과 선정위원들이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앞으로도 책은 쏟아져 나온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어떤 책을 만들든 간섭할 수 없는 일이다. 탁월한 인물과 탁월한 역사인식을 담은 책이 나올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할 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잘못된 내용을 담은 책을 걸러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제보가 이어지고, 기사화 되고, 책이 퇴출되는 상황이 되풀이 되면 결국 편집자들도 경각심을 갖게 되고, 시장이 바뀔 것이다. 더 이상 이런 사안이 특종이 되지 않는 그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이근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