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서 꺼졌다. 세월호라는 이름의 배에 올라탔던 이들의 예기치 못했던 참사였다. 남녀노소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지만 세월호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 것은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꽃다운 나이에 바다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미디어펜은 세월호의 의미를 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살펴보고자 하는 취지로 소설가 복거일 선생과 대담을 나누었다. 복거일 작가는 세월호 유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구하면서 세월호의 본질과 변질에 대한 지적 거인으로서의 통찰력을 전해주었다. 미디어펜은 복거일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은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
희생자가 삼백 명을 넘으니 친족만 따져도 유족들은 최소한 천 명 이상이 될 것입니다. 이분들로부터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어느 얘기도 유족들 전체의 뜻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세월호 유족들은 지금 심리적으로 무척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말이 그렇지 바다 속에서 자식을 잃은 심정을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겪지 못한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게다가 그분들로서는 참 억울한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캐내서 자기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진실이라는 것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에워싼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문제이지요. 그들을 뚫고 들어가서 유족들과 얘기하면서 우리가 비교적 ‘객관적 진실’이라 여기는 것을 전달해야 합니다.
▲ 복거일 소설가 |
처음부터 나왔던 ‘세월호 음모론’ 등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사회가 유족들에게 우리의 생각을 전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의 경우 정치 보다 더 깊은 것, 일종의 문화풍토가 자리 잡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단시간에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며 합의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그분들의 심정, 처지를 이해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상황을 오히려 더 악화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전 그 점을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족들에 대해서는 너그러워야 합니다. 다만 ‘유족의 뜻’을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나서는 일부 사람들, 정치인 같은 이들이 ‘유족의 뜻’이라고 내세우는 언행은 자제해야 합니다.
- 최근 글을 통해 선생님께서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하여 세월호와 연루된 이들의 ‘도덕심 부족’*이라 지적하셨습니다. 저 또한 선생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혹자는 대한민국을 두고 ‘세월호’라 지칭하면서 세월호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일반화의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은 정말로 낮은 걸까요?
우리나라의 도덕 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창밖을 한번 내다보세요. 내다보면 공중도덕, 거리 질서가 높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 교통질서 지키지 않습니다. 보행자도 그렇고 차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도덕 수준, 공중도덕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바로미터이자 기준입니다.
교통도덕이란 것은 우리가 날마다 부딪치는 상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차를 몰고서 출퇴근할 때 몇 천대 차량과 서로 오고가며 교통흐름을 타지만, 차선을 지키지 않는 차량과 불법주차, 꼬리 물기는 여전합니다. 어지럽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는 횡단보도가 없다”고 얘기할 정도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에 공중도덕이 세워져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 분야, 기업에서도 분출됩니다. 도덕이 세워져 있지 않은 극단적인 경우가 겹쳐져서 세월호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도덕심이 발휘되는 분야가 있고 덜 발휘되는 영역이 있다. 예컨대 사주가 갤러리를 배에다 만든다는 것을 이유로 배를 증축했습니다. 세월호의 얘기입니다. 회사 돈을 유용해서 여객선을 위태롭게 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 청해진해운 직원들 아무도 지적하지 못했습니다.
▲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던 팽목항. 1년 뒤인 2015년 여전히 팽목항에는 노란 리본이 걸려있다. /사진=미디어펜 |
인연이 있는 사람은 봐주고 온갖 연줄을 따지고 인사이더를 감싸주는 그러한 중세문화, 문중과 마을을 따지고 이너서클만을 돌보는 우리 사회에 문화적으로 그런 풍토가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세월호 사고에 치명적으로 작동한 것입니다. 세월호에는 내부고발자가 없었습니다. 밖에서의 우리가 볼 때 세월호와 연관된 모두는 당연히 도덕을 지켰어야 했습니다. 선장이 선장으로서의 임무를 지켜야 하듯이 말이죠. 하지만 그는 승객들을 버려두고 탈출했습니다. 청해진해운 본사와 사고 당시 가장 위급했던 순간, 가장 긴 통화를 했던 선장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개인적인 도덕 행위를 실천하지 못했습니다.[미디어펜=김규태기자]
(“세월호의 본질과 변질”, 복거일 대담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 복거일 작가 특별기고, 한국경제신문 4월13일 기사 발췌
“세월호 1년…슬픔만 남고 '국가 개조'는 없었다” 지난해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의 침몰은 여러 요인이 겹쳐서 일어났다. 그 요인들은 본질적으로 도덕심의 부족에서 나왔다. 낡은 배를 사서 취미를 즐기려고 회삿돈으로 한 층을 더 쌓아서 배를 위태롭게 만든 해운회사의 사주, 무리한 개축을 ‘적재 화물을 크게 줄인다’는 조건으로 허가해서 자신들의 책임을 교묘하게 회피한 선박 전문가들, 과다 적재를 강요한 해운회사 실무자들, 안전 점검을 아예 하지 않고 서류만 꾸민 여러 감독기관 요원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도덕심이 부족한 선장과 선원들…. 이들 가운데 최소한의 도덕심을 지닌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 배는 많은 승객과 함께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정부는 사고를 수습하는 절차를 밟으면서 우리 사회를 보다 도덕적으로 만드는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세월호 사고가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낮은 도덕적 수준에서 나오는 갖가지 사건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사회를 보다 안전하고 맑게 만든다는 목표를 세워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법과 조직을 바꾸는 일에 매달렸다. 느닷없이 해양경찰청을 없애고 국민안전처를 새로 만들었다. 늘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며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을 목숨을 걸고 막아내는 해양경찰 조직을 단 한 번 미흡했던 책임을 물어 없앤 것은 정의롭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국민안전처를 새로 만들면 정부가 커져서 세금은 분명히 더 들지만 시민들이 더 안전해질지는 확실치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