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안보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일본의 우경화와 한일 외교 마찰, 북한의 핵보유 가능성과 남북관계 경색 등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화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안전을 보장하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도의 외교적 대응과 전략이 필요하다. 이에 한국선진화포럼(이사장 이승윤)은 23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의 정세,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주제로 제94차 월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에는 유호열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가, 주제발표는 문흥호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장,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김창수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중호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이 참여했다. 문흥호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장은 ‘한·중 전략적 협력의 현황과 과제’ 발표에서 한중관계 기본 목표와 방향으로서의 내실화를 꾀하는데 있어서 역대 정부는 전 정부 대비 한중관계 격상 과시 욕구가 강했는데 비교적 박근혜 정부는 기존 관계의 내실화에 주목한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라고 말하였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한·일 관계 현황 평가 및 전망’ 주제 발표에서 한일 관계의 악화로 인해 동북아 질서, 경제 관계, 민간 교류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정착 한일 양국은 서로를 비판할 뿐 쉽사리 관계 개선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 부정적 현실을 지적했다. 김중호 한국수출입은행 북한개발연구센터 연구위원은 ‘한반도 주변 정세와 남북관계’ 주제발표에서 북한의 경제개선 동향과 남북관계에서는 북한에서는 경제 이슈가 절대적으로 정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므로, 우리의 대북 교류·협력 역시 단순히 경제차원에서만 시도되어서는 안되며, 우리의 대북 접근법은 보다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 틀 내에서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추진할 것을 제안하였다. 아래는 김중호 한국수출입은행 북한개발연구센터 연구위원이 발표한 주제 토론문이다. [편집자주] |
1. 서론 : 한반도 주변 정세 평가
현재 동북아 관련국들(미·중·일·러·남·북)은 공통적으로 공세적인 정책입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북아 관련국들의 국제관계는 그들의 국내정치 변화에 의해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다. <표 1>에서 보듯이, 2012년부터 동북아 관련국들내에서 권력교체과정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거나 새롭게 등장한 지도자들은 대체로 새로운 비전과 정책목표를 내세우고 이전보다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정책추진을 시도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 북한 정세와 남북관계
▲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위해선 시장경제를 촉진하는 지원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재개 등도 검토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한국선진화포럼은 23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 정세, 위기인가 기회인가>라는 주제로 4월 월례포럼을 개최했다.
(1) 북한의 핵개발 동향과 남북관계
동북아 관련국들의 손익계산이 복잡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북한은 계속해서 핵카드를 흔들며 견고한 협상지위를 고수하고자 한다. 북한은 지난 세 번의 핵실험을 진행하면서 핵무기체계의 진화를 암시하여왔다. 특히 3차 핵실험 이후에는 핵무기의 경량화·소형화·다종화 기술의 획득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지난 20년에 걸친 국제사회의 대북 핵협상 노력을 조롱하고 북한 핵개발의 성과를 과시하였다.
특히, 김정은 정권은 2013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3.31)를 통해 '경제·핵 병진노선‘을 채택하였는데, 김정은 정권의 정책노선은 김일성 시대의 국방·경제 병진노선, 그리고 김정일 시대의 선군경제노선과 유사한 사상적 지향점을 갖고 있긴 하나, 핵무기 개발의 완성도가 높아져가는 상황에서 이전과는 다른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전에는 군사력 증강의 현실화를 위해 경제건설을 내세웠다면 이제는 경제건설의 현실화를 추진하기 위해 핵보유를 정당화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에게는 핵무기 보유가 마치 경제건설의 필요조건처럼 강조되고 있다.
북핵 문제는 동북아 관련국들의 갈등을 조장하는 요소인 동시에 다자협력을 실험하도록 이끄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북핵 문제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동북아지역내 다자간 안보 논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간 세력 다툼이 동북아지역에서도 전개됐기 때문에 이념상 반대편에 있는 국가와 지역안보를 협의할 기회조차 없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중동문제에 국력을 쏟던 2003년에 중국은 6자회담의 의장국이 되면서 다자협상의 ‘지휘자(conductor)’로 데뷔하였다. 그러나 북핵문제가 20년전 제자리로 돌아오기는 커녕 더 악화된 상황에서 6자회담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에 걸친 다자협상의 경험은 동북아 관련국들의 입장차이를 재확인하고 그 간격의 넓이를 잴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만하다.
북핵을 배태시킨 지역안보 구조 속에서 각국은 이익을 확대하고 상대국을 견제하기 위한 좋은 구실로서 북핵을 활용하기도 했다. 북한은 지정학적 역학관계를 이용하여 자국의 입장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핵문제라는 불씨를 계속 살려왔다. 북한의 핵능력이 증강되면 장기적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핵 도미노’ 또는 군비경쟁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재 뿐만 아니라 협상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개발이 상위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북한의 도발적 언행은 핵전쟁 수행까지 포함하기에 이르렀다. 실제 수행 능력의 보유 여부와는 별개로 북한이 핵전쟁을 언급하며 긴장 수준을 고조시킨 것은 북한의 선전선동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북한의 전쟁수행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전반적인 맥락에서 보면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선제적 위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김정은 정권이 등장하면서부터 보여준 일련의 도발적 행위들, 즉, 인공위성 발사, 3차 핵실험 단행, 헌법내 핵보유국 문구 삽입, 경제·핵 병진노선 채택 등은 우리의 북한 관찰자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2013년 부터 우리의 북한 관련 담론들 속에는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해야 한다” 등등의 단정적 목소리가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북한을 핵 야심이 있는 실패국가로 볼 것인지 아니면 핵을 보유한 깡패국가로 볼 것인지에 따라 우리의 대북정책 방향과 접근 전략은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북핵불용 및 신뢰구축’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를 길들이고 향후 남북관계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이 핵보유 능력을 강조하면서 더욱 더 한반도 긴장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북한 핵개발은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2) 북한의 경제개선 동향과 남북관계
▲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이 '원수' 칭호를 받은 날인 20일을 앞두고 19일 전투비행사 행군단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다고 노동신문이 전했다./사진=YTN캡처
북한 김정은 정권은 개혁·개방 요소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경제조치들을 도입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공식 출범 시점으로 간주되는 2012년 4월 김정은은 “더 이상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정책 포부를 밝혔다. 김정은 정권이 표방한 ‘경제·핵 병진노선’의 주요 과제는 생산력 증대와 외자유치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과거의 경제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을 다시 김정은 정권의 내각총리로 재임명하는 등 과거의 경제개혁 조치를 새롭게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농장·기업·공장 등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등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수립하고 20여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하는 등 마치 30년전 중국의 개혁개방 움직임을 연상케 하고 있다.
<표 3>에서 보듯이, 최근의 대외무역 및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할 때 북한 경제는 최악의 상태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북한 경제 지표들이 한동안 악화되었으나 김정일 정권이 출범한 1998년 이후 북한 경제는 조금씩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2012년에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표 4>에서 보듯이 북한의 주요 생산 실적 추이를 살펴보면 북한 경제가 여전히 1980년대 후반 수준조차 회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1) FAO/WFP 보고서(2013.12.)는 2013년 북한의 곡물생산량이 도정후 기준으로 503만톤 규모 추정 |
3. 결론 : 판뒤엎기인가 새판짜기인가?
▲ 북한의 최대 명절이라는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을 계기로 북한에서 김정은에 대한 충성 맹세 등 김정은 띄우기가 한창이다.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도 넉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사진=KBS 캡처
현재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는 지난 70년간 고착화된 한반도 분단구조가 변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낳고 있다. 기존 질서의 변화에 대한 우려는 새로운 질서 창출에 대한 기대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가 변화의 주역이 되는가 아니면 변화의 적용 대상이 되는가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미 100여년전 열강의 각축에 의해 촉발된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 속에서 유약한 조선이 농락당한 뼈아픈 경험은 향후 우리의 행보에 큰 지침이 아닐 수 없다. 냉혹한 국제정치 속에서 한민족이 살아남으려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통일의 여건을 갖추어야 한다. 현재 남북관계 개선의 당위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남북관계 개선의 방식에 있어서는 극명한 분열을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부유한 남한이 빈곤한 북한의 수준에 맞춰줘야 한다는 논리가 그동안 대북 지원 정서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햇볕정책 10년 기간동안 북한에서 경제개발 대신 핵개발이 추진되었고 통치집단과 주민들간 경제격차가 더욱 증대하였음을 지적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기준점이 더 이상 북한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었다. 즉,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을 남한의 수준 또는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며 이를 위해 북한의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한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개발을 지속하는 등 악화된 대외관계를 방치한 채 내부의 경제적 수요를 채우려고 내부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내부 긴장과 균열이 급속히 발생하여 정권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북한의 행동 변화로 인해 핵협상의 물꼬가 트이고 대외관계의 긴장도가 낮아진다면 북한의 경제 정상화 노력은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얻어 가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서는 경제 이슈가 절대적으로 정치 영역에서 다뤄지고 있으므로 우리의 대북 교류·협력 역시 단순히 경제차원에서만 시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대북 접근법은 보다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 틀 내에서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추진될 필요가 있다. 특히 한반도 통일의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을 적극 유도해야 하며 북한의 체제전환이 순탄하게 진행되도록 전략적인 접근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제 북한 문제는 남북 양자만의 이슈가 아니다. 양자협력과 더불어 다자협력도 병행해야만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 질서 및 구조의 변경과 더불어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유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 내부의 변화, 남북간 관계 개선, 그리고 국제협력 등 삼박자가 맞을 때에만 진정한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능하며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서 경쟁력있는 통일 한국을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과제는 종합적이며 동시 병행되어야 한다.
첫째,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내 경제개발구 개발 그리고 북중 국경지역에서의 교역·관광 등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참여함으로써 북한내 농장·기업·공장 그리고 장마당의 다이내믹이 증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도 고려하여 5·24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검토해야 할 것이다.
둘째, 북한의 선군(先軍)정치가 선경(先經)정치로 전환되도록 도와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남북간 대화 채널을 다양화하고 협력 프로젝트 협의를 활성화하여 북한의 경제 일꾼들의 입지 및 역량 강화를 도모하는 것도 포함한다.
셋째, 북한 비핵화를 위한 양자 및 다자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는 향후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안보 질서가 구축될 가능성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의미있는 시도가 될 뿐만 아니라 미래 동북아 투자 환경의 조성을 위해서도 중요한 노력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금융기구들과 함께 북한개발지원에 관한 전략협의를 강화함으로써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이 촉진되도록 국제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미 발족한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의 동북아금융협의체를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향후 AIIB 등 새로운 금융기구를 통한 지역협력을 강화하여 북한의 변화를 가속화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중반에라도 남북관계 개선을 시도하지 않을 경우 임기후반에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정치적 예단’ 보다는 남북한 모두의 선진화를 목표로 하는 중장기적인 ‘전략적 비전’에 따라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중호 한국수출입은행 북한개발연구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