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소담 전 사회안전방송 아나운서 |
“가슴이 예뻐야 여자다”라는 곡이 나온 지 10년이 됐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욕구는 쇄골 밑 두 개의 난 자리를 채우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걸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아는 법이라던데, 이제는 단장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에게서 ‘난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자, 이제 시선은 아래로 간다. 껌딱지에겐 보형물이 있고 숏다리에겐 하이힐이 있지만 과학자도 기술자도 현재로선 ‘아직’ 줄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골반 되시겠다.
배꼽에서 한 뼘 아래로 수선의 발을 내리고 그 지점에서부터 좌우로 또 한 뼘씩. 달나라 마실가는 시대가 와도 이 너비의 비약적 확장은 어쩐지 요원해 보인다. 감쪽같은 인공 가슴에 어울리는 질문이 “어디서 했니?”라면 잘록한 허리 아래 놓인 거대 골반에 어울리는 질문은, 그래서 자연히 “어머님이 누구니?”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이 곡은 대박이 났다. 박진영의 신곡 얘기다. 허리 24인치, 힙 34인치인 여자에 대한 예찬을 담은 이 곡은 (어머님이)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냐고 묻고 또 묻는다. 정확히는 어머님이 대체 누구시기에 성형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이 아찔한 힙을 주셨냐는 탄식이다. 얼굴도 가슴도 얼마든지 새로 빚어내 자연 미인이 도리어 억울해진 이 시대에 말이다.
‘널 어쩌면 좋니’라며 거대한 엉덩이 아래서 내내 괴로워하는 뮤직비디오 속 박진영의 표정은 인공미가 결코 넘볼 수 없는 생득적 아름다움이 지닌 준엄한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엉덩이 한번 보겠다고 바닥을 기는 박진영과 눈길조차 주지 않는 24-34 여인의 당당한 표정에서 결국엔 ‘진짜’가 승리한다는 정의까지 덤으로 엿볼 수 있겠다.
▲ 박진영 '어머님이 누구니' 뮤직비디오 캡쳐 |
그 가운데 이 노래가 불편한 사람들의 탄식도 들린다. 그의 노래가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춰야 한다는 강박을 양산하는 게 아니냐는, 결국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지적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외모지상주의가 사회적 문제가 된 건, 의학의 발전으로 ‘아름다움’이 단지 선천적 산물이 아니게 되어 너도 나도 외형 개조에 집착하게 됐을 때부터가 아니었던가?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는 미에 대한 천착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양산되는 이를테면 성형 중독과 같은 부작용이다.
그런고로 미의 기준이 도저히 인위적 조작이 불가능한 어딘가로 옮겨간다면, 만연한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는 오히려 완화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그런 (엉뚱한)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뭐, 골반이 움직일 수 없는 대세가 되면 골반 확대술이 발달하게 될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은 또 다른 어딘가로 옮겨갈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건 시대의 트렌드가 ‘욕망해도 쉽사리 가질 수 없는 것’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엔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은 그런 관점에서 ‘진리’일지 모른다고도 할 수 있는 걸까.
“아부지 뭐하시노”에서 “어머님이 누구니”가 될 때까지 세상만사 모든 기준은 끊임없이 변해 왔다. 그러니 이 노래가 듣기 싫은 이들이여, 트렌드는 돌고 돈다는 명제에 희망을 걸어보자. 발매된 이래 연 이은 음원차트 석권으로 당분간은 박진영의 엉덩이 타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지만 말이다. /정소담 칼럼리스트, 전 사회안전방송 아나운서